
인공지능(AI)이 증권업계 리서치 업무의 전 과정을 빠르게 대체해 가면서, 애널리스트의 입지가 더욱 좁아지고 있다. NH투자증권이 '올댓 인공지능(A.I) 리포트” 서비스를 출시해 선전하는 모습. 사진=nh투자증권
특히, 객관성·속도·범위 측면에서 AI가 기존 애널리스트보다 우위를 보이자, 리서치 직군의 미래에 대한 두려움마저 커지고 있다.
■ 리서치에 뿌리내린 ‘매수 편향’…애널리스트 무용론 원인
3일 증권가에 따르면 국내 증권사 리서치에서 ‘매수’ 의견이 지나치게 높았던 것은 어제 오늘 일이 아니었다. 자본시장연구원에 따르면, 2020년대 발표된 리포트 중 무려 93%가 매수 의견이었다. 반면 ‘매도’ 의견은 단 0.1%에 불과해, 사실상 사라진 수준이었다.
일각에선 "애널리스트 리포트는 투자자 보호보다 상장사와의 관계 유지를 위한 수단에 불과하다"는 비판까지 따랐다.
한 증권사 관계자는 “기업과의 이해관계에 얽힌 구조적 한계 탓에 실제로 매도 의견을 내는 것이 매우 어렵다”며 “주주 항의나 내부 압박이 뒤따를 수도 있어 애널들 입장에선 매도 의견을 내놓는 일에 소극적일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이같은 현실은 애널리스트의 전문성과 독립성에 대한 신뢰마저 떨어뜨리고, 리서치의 실효성마저 의심받게 만들었다.
■ AI 리서치, ‘무색무취의 객관성’으로 무장
AI 기반 리서치가 이같은 증권가 리서치의 구조적 문제를 돌파할 대안으로 급부상하고 있다. 한국투자증권은 2020년 ‘AIR(AI Research)’ 시스템을 도입해, 매일 수만 건의 글로벌 데이터를 분석해 자동 리포트를 생성했다. 이 시스템은 주가 흐름, 재무 건전성, 업종 경쟁력 등 다양한 요소를 기계적으로 종합 분석해 인간의 주관적 개입 여지를 줄였다.
미래에셋증권도 2022년부터 AI 리포트를 운영하고 있다. 기존에 5시간 이상 걸리던 리포트 작성이 5~15분으로 단축되었다. KB증권, NH투자증권 등도 생성형 AI를 활용한 실적 속보와 요약 리포트를 일반 투자자에 제공 중이다.
AI는 특히 중소형주, 신규 상장 기업 등 ‘리서치 사각지대’를 빠르게 분석할 수 있어 정보 접근의 형평성까지 끌어올리고 있다.
■ “AI가 리서치를 더 잘한다”…애널리스트 위기론 고조
AI 리포트는 단순 보조 도구를 넘어 기존 애널리스트 중심 구조를 재편하는 수준까지 이르렀다. 분석 속도, 정보량, 객관성 면에서 인간 애널리스트를 앞서면서 '애널리스트 무용론'에 다시 불이 붙었다.
한 금융투자업계 관계자는 “AI는 편향 없이 방대한 데이터를 처리하고, 과거 수치에 기반한 예측 정확도도 점점 높아진다”며 “기존 애널리스트가 제공하던 리서치 가치가 위협 받고 있다”고 평했다.
실제, AI는 ▲감정적 요인의 배제 ▲상장사와의 이해관계에서 자유로운 리포트 생성 ▲24시간 가동 ▲비용 절감 등 다수의 장점을 바탕으로 인간 애널리스트의 업무를 빠르게 대체하고 있다.
■ 해석은 여전히 사람의 영역?…협업이 해법 될까
AI의 한계도 분명히 존재한다. 정량적 분석에는 강하다. 하지만, 기업 문화나 경영진 성향, 업계 분위기 등 비정형적이고 맥락이 중요한 정보에는 취약하다는 단점을 지닌다. 이같은 이유로 현재까지 “AI가 쓰고, 사람이 감수하는” 협업 구조가 유지되고 있다. 실제, 미래에셋증권 등은 AI 리포트에 ‘AI 기술로 작성되었으며, 금융투자분석사의 검수를 받음’이란 문구를 명시하고 있다.
하지만 이같은 협업이 언제까지 지속될지 여전히 불투명하다. AI 기술이 발전할수록 애널리스트의 역할은 더욱 줄 수밖에 없고, 단순 검수 업무조차 AI가 수행하게 될 날도 멀지 않았다는 이야기도 나온다.
■ "애널리스트, AI와의 경쟁 피할 수 없다"
증권 리서치 산업이 AI 도입을 통해 전환기를 맞은 가운데, 애널리스트는 이제 새로운 존재 이유를 증명해야 할 시점에 봉착했다.
단순히 반복 업무와 수치 분석은 AI에게 넘기고, 인간만이 해석할 수 있는 ‘맥락의 통찰력’과 ‘현장성’을 얼마나 강화하느냐가 애널리스트로서의 생존의 열쇠가 될 수 있다.
증권업계 관계자는 “AI가 증권 리서치에서 ‘보조자’의 위치를 넘어서 ‘주체’로 부상중인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며 “애널리스트가 더 이상 과거의 명성이나 권위가 유지되기 어렵게 된 만큼 새로운 역할을 찾아야 할 시점이다”고 강조했다.
김희일 한국금융신문 기자 heuyil@fntime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