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최근 한국투자증권(대표 정일문) 등 증권사에서 잇따라 전산장애 문제가 발생하고 있다. 사진 = 통로이미지 주식회사(대표 이철집)
한국투자증권(대표 정일문닫기



1분 1초에 따라 수익률이 크게 달라질 수 있는데도 특정 증권사의 경우, 길게는 1시간 이상 먹통 현상이 지속됐다.
하반기 기업공개(IPO‧Initial Public Offering) 시장 훈풍이 예상되는 가운데 투자자들은 똑같은 전산 문제가 반복되는 건 아닌지 노심초사하고 있다. 현재 증권사들의 디지털 혁신 현황은 어떻게 돼가는 걸까?
MTS 등 전산장애 민원은 줄지 않고 있다. 금융투자협회(회장 서유석닫기

서버 하드웨어 고장으로 접속 오류가 있었던 이베스트투자증권(대표 김원규)의 경우, 전산장애 관련 민원이 지난 3월에만 1250건 접수됐다. 같은 달 DB금융투자(대표 곽봉석) 역시 바이오인프라(대표 이상득) 상장 첫날 전산장애로 1만3803건 민원이 들어왔다.
DB금융투자 측은 당시 “바이오인프라 상장일이라 고객들의 동시 접속이 평상시보다 10배 이상 폭증해 일부 서비스 지연이 있었다”고 사과문을 올렸다. 이후 고객 민원 접수를 거쳐 보상 절차도 진행했다.

가장 최근 모바일 사설 인증 과정에서 전산 문제가 터졌던 한국투자증권은 서버실 향온 항습기 고장을 이유로 밝혔다. 온도 제어가 되지 않아 서버가 마비됐다는 것이다. 회사는 즉각 사과와 함께 재발 방지 대책을 공지했다. 내부 배상 기준과 앞서 발생한 전산장애 사례들을 토대로 배상 금액을 책정해 14영업일 이내에 처리하겠다고 알렸다.
카카오페이증권의 경우, 지난 3일 밤 10시 30분부터 40분간 전산 서비스가 지연됐다. 카카오페이증권 측은 불편을 겪은 투자자들을 대상으로 일주일간 민원을 접수했다. 한 달 전엔 토스증권이 화근이었다. MTS 일부 계좌에서 보유종목 수익률이 1000% 또는 –99%로 표기됐다. 이러한 오류는 약 30분간 이어졌다.
하반기 쏟아지는 IPO를 증권사 디지털 시스템이 감당할 수 있을까?

특히 금융당국에서 ‘새로운 먹거리’라 보고 강력하게 추진 중인 토큰 증권 발행(STO‧Security Token) 사업은 디지털 플랫폼, 즉 증권사의 탄탄한 MTS가 필수 요소다. 이르면 내년 STO 시장이 본격 개화한다. IT 인력 확충과 예산 증대에 서두르지 않으면, STO 시장이 성장하기 전 투자자 신뢰를 잃을 수도 있다.
윤유동 NH투자증권(대표 정영채닫기

증권사들은 어떤 디지털 혁신을 진행하고 있을까?
우선 전산 운용비를 늘렸다. 금융투자협회에 따르면 협회에 등록된 61개 증권사의 전산 운용비는 올 1분기 2232억원으로 집계됐다. 지난해 같은 기간 거둔 1997억원보다 11.7% 더 투자한 것이다. 국내 주요 증권사 10곳으로 좁히더라도 결과는 같다. 국내 주요 증권사 10곳은 지난해 1분기 113억원 대비 8.8% 증가한 124억원을 전산 운용비에 썼다.
MTS 시스템이 취약하다고 비판받는 중소형 증권사도 전산 운용비를 1년 전보다 확대한 상태다. 신영증권(대표 원종석‧황성엽) 등 13개 중소형 증권사는 총 512억원을 전산 운용비에 사용했다. 이는 전년 동기(456억원) 대비 12.3% 늘어난 규모다.
분기가 아닌 연간 단위로 보면 2022년 한 해 동안 전산 운용비에 가장 많은 돈을 투자한 증권사는 키움증권(대표 황현순)이었다. 금융투자협회가 지난 3월 공시한 ‘전자공시 서비스’에 따르면, 키움증권은 지난해 광고선전비를 줄이는 대신 전산 운용 비용에 919억원을 지출했다. 업계에서 가장 많은 돈을 MTS 구축에 쓴 것이다. 2021년 전산 운용비는 764억원으로 삼성증권(대표 장석훈닫기

키움증권 관계자는 “어려운 시장 환경에서 사업을 확장하고자 무리수를 두기보다는 내실을 다지면서 기본기부터 챙기는 선택을 했다”며 “그동안 눈에 당장 보이진 않더라도 꼭 필요한 설비 투자에 망설이지 않은 결과”라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치열한 증권사 간 해외 주식거래 유치 경쟁 속에서도 키움증권이 작년에 이어 올해까지 2년 연속 외화증권 거래대금 1위를 달성한 것은 결국 거래 중개 본질인 안정적인 서버와 거래 환경을 제공한 것”이라며 “고객이 불편함 없이 거래를 이어가야 시장에서 살아남을 수 있다는 걸 증명했다”고 덧붙였다.
IT 인력을 보강하고 MTS를 개편하는 움직임도 활발하다. 세계적인 종합 강판 제조 기업 ‘넥스틸’ 등을 상장 주관하는 하나증권(대표 강성묵)은 서버 과부하에 발 빠르게 대처하고자 IT 전문 인력으로 구성된 대응 팀을 발 빠르게 구축했다.
LG CNS(대표 현신균) 공동 주관사인 신한투자증권(대표 김상태)은 청약 시 단기간 유동적으로 대응할 수 있는 클라우드(Cloud‧자원 공유) 서비스를 도입했다. MTS 서버 안정화를 위해서다. 이어서 지난 5월엔 오랜 기간 고객 수요를 분석한 결과물로 새로운 MTS ‘신한알파 3.0’을 선보이기도 했다. 앞서 하이투자증권(대표 홍원식)과 현대차증권(대표 최병철) 역시 각각 신규 MTS ‘iM하이’와 ‘내일’을 출시하면서 고객 편의를 높였다.
AI 연계에 공들이는 증권사도 있다. 미래에셋증권(대표 최현만·이만열)이다. 지난해 연말 챗봇 ‘m.Talk’ 도입을 완료했다. 챗봇은 증권사 주요 업무에 대한 고객 궁금증을 24시간 365일 언제 어디서나 빠르게 해결할 수 있도록 돕는 인공지능 상담 서비스다.
특히 생소하거나 어려운 증권 용어에 대해 고객 표현이 각각 다른 점을 반영한 점이 인상적이다. 간단한 단어를 문의해도 추천 질문을 다양하게 제시하기 때문에 쉽게 이용할 수 있다. 질문에 대한 답변과 함께 MTS 업무처리 메뉴가 연동되게 함으로써 고객이 해당 업무를 직접 처리하는 게 가능하다.
미래에셋증권 관계자는 “미래에셋증권은 모바일 애플리케이션(Application) 내 AI 기반 초개인화 고객 서비스를 제공하는 등 금융 IT 혁신을 통한 고객 경험 향상을 위해 끊임없이 노력해 왔다”며 “앞으로도 탁월한 자산관리 역량을 보유한 핀테크(Fintech‧금융+기술) 등 AI 전문 기업과 공고한 협력체계를 구축해 플랫폼 경쟁에 대처할 것”이라고 말했다.
과연 증권업계는 하반기엔 전산장애 없이 투자자들과의 신뢰를 구축해 나갈 수 있을까? 상반기 문제점을 돌아봐야 디지털 혁신도 가치 있을 것이다. 빠르게 변화는 디지털 시대에 어떤 증권사가 시장을 선점할지 하반기 증권가가 주목된다.
임지윤 기자 dlawldbs20@fntime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