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재계에서는 올해 유독 3·4세가 경영 전면에 대거 등장한 것에 대해 2세에서 3세로의 ‘세대교체’를 이유로 들고 있다. 또 지난해 한진그룹 3세 조현아 전 대한항공 부사장의 ‘땅콩 회항’ 사건으로 재벌가 자제들에 대한 비판적 여론이 들끓자 보류했던 3·4세의 승진을 올해 단행한 측면도 있다.
3·4세들이 승진잔치를 벌인 것과는 달리 올해 인사바람은 어느 때보다도 매서웠다. 퇴임임원은 대폭 늘어나고 승진임원은 줄었다. 경기불황에 따른 실적 부진으로 재계 전반에서 진행된 구조조정 작업은 많은 샐러리맨들을 길거리로 내몰았다. 이런 상황에서 재계 안팎에서는 과연 3·4세를 전면으로 내세운 인사를 실시한 것이 옳은 결정이었는가에 대해 의견이 분분하다.
◇올 인사 특징은 재벌 3·4세 승진
신세계그룹은 이명희닫기



현대중공업 최대주주인 정몽준 아산재단 이사장의 장남 정기선닫기

한화그룹 김승연닫기


GS그룹은 4세들이 대거 승진했다. 허준홍(40) GS칼텍스 법인사업부문장과 허윤홍(36) GS건설 사업지원실장이 상무가 된 지 3년 만에 나란히 전무로 승진했고, 허서홍(38) 부장은 GS에너지 전력·집단에너지 사업부문장을 맡으며 상무로 승진했다. 창업주 넷째 허신구 GS리테일 명예회장의 아들인 허연수닫기

이웅열 코오롱그룹 회장의 장남인 이규호닫기

박용만닫기

◇3·4세, ‘오너십’으로 위기돌파 노려
한국에서 재벌은 ‘대기업 총수 가족’이라는 인식이 지배적이다. 한국의 대기업 지배 구조는 대기업 오너 일가가 회사의 소유권과 경영권을 독식하는 형태로 나타난다. 대기업 창업주의 후손들이 지분과 경영권 모두를 물려받는 것은 한국의 독특한 재벌 문화로 분류된다. 오너가 경영하는 것을 당연시 여기는 한국에서 ‘오너십’은 한국 경제에 많은 공을 세워 ‘사업보국’이라는 용어를 낳기도 했다. 1940~50년대 무에서 유를 창조한 창업주, 그 뒤를 이어 사업을 정상궤도에 올려놓은 2세대, 현 3·4세로의 경영권 이동 수순은 책임경영으로 안정적인 그룹 지배체제를 확립해 발전과 성장을 이끌어온 경쟁력이 되었다는 평가다.
3세 시대를 본격화 하고 있는 삼성과 현대차는 3·4세 승진으로 기업들이 지향하는 오너십의 표본을 보여준다. 이건희 회장의 와병으로 삼성그룹의 실질적 수장의 역할을 맡고 있는 이재용닫기

정의선닫기

현재 3·4세들이 맞이한 경영 환경은 녹록치 않다. 세계적인 경제 저성장 기조와 중국을 위시한 글로벌 기업들의 맹공격으로 기존의 밥그릇 지키기조차 어려운 상황이다. 이재용 부회장과 정의선 부회장을 비롯한 재벌 3·4세들은 ‘오너십’으로 무장한 책임경영을 통해 위기국면을 돌파하려고 하고 있다.
◇능력검증 절차 없이는 ‘오너리스크’
하지만 무분별한 오너경영은 ‘오너리스크’를 낳을 수 있다. 견제 없는 재벌가의 황제경영은 3·4세의 경영능력 문제를 심화시킨다. 본래 한 기업의 경영자를 선출할 때에는 주주가 이사회를 뽑고, 이사회가 최고 경영진을 선임하는 과정을 거친다.
그러나 현재 한국에서 주주총회는 형식에 불과해 재벌들이 2~5%의 적은 지분으로 기업 전체를 지배하는 구조를 지니고 있다. 세습경영으로 3·4세들의 입사 후 임원 승진 기간은 평균 3.5년. 일반 사원으로 직장에 들어가 임원이 되기까지 통상 20년 이상 걸린다는 점을 감안하면 이들의 승진은 위화감을 조성하기에 충분하다. 경영능력을 검증받기도 전에 임원으로 고속승진을 하다 보니 이들을 바라보는 시선이 곱지만은 않다. 능력은 없는데 후계자라는 이유 하나로 회사 내에서 막강한 권한을 행사하다가는 자칫 회사를 위기로 몰아갈 수도 있다.
현대중공업은 현재 수조원의 적자를 내고 긴축경영을 하고 있는 상황에서 오너 3세인 정기선 전무가 상무 승진 1년 만에 다시 승진했다. 이규호 코오롱인더스트리 경영진단실 부장 또한 차장으로 입사한 지 3년 만에 임원자리에 올랐다. 이들의 고속 승진에 대해 사내외에서 설왕설래되는 분위기다. 빨라지고 있는 재벌 3·4세 경영체제가 어떤 결과를 가져 올 지는 속단하기 이르다. 이번에 대거 승진한 재벌 3·4세가 어떻게 하느냐에 달렸다. 이들이 오너리스크를 줄이면서 침체된 기업에 새로운 활력을 불어넣고 새로운 판로 모색의 시발점이 되어야만 한국경제가 회복될 것이라는 점은 분명하다. 국민들이 이들에게 주목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김지은 기자 bridge@fntime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