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카드사의 잡수익으로 처리되는 신용카드 소멸 포인트를 저소득층 지원 등 보다 공익적 목적으로 사용할 수 있도록 해 기업의 사회적 책임 실천 및 기부와 나눔 문화가 사회 전반에 확산되도록 하겠다는 것. 하지만 이는 또 다른 문제가 될 수 있다. 사실상 ‘강제 기부’의 성격을 띠도록 관련 법안을 개정하고 있는 것이어서 세부 추진 과정에서 시장의 반발이 만만치 않을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이다.
또한 항공사, 통신사, 유통업체 등 많은 업종들이 고객에게 포인트를 제공하고 있는 상황에서 유독 신용카드 소멸 포인트만 의무적으로 기부하려는 움직임은 형평성에도 맞지 않다.
게다가 신용카드의 소멸 포인트 기부 움직임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라 해마다 반복되고 있다는 점에서 단순히 포퓰리즘을 의식한 정치권의 편의주의적인 발상이 아니냐는 볼멘소리도 나온다.
◇ 정치권, 의원 입법 발의 통해 소멸되는 신용카드 포인트 일괄기부 추진
최근 정치권에서 유효기간 내에 사용하지 않아 소멸되는 신용카드 포인트를 카드사가 일정기간 합산해 일괄 기부토록 하는 법안이 잇따라 발의되고 있다. 대표적 주요법안을 살펴보면 카드사가 회원이 기부 요청한 포인트와 유효기간이 끝나 소멸 예정인 포인트에 대해선 신용카드 포인트 관리재단에 기부하도록 한다는 것이다.
이 법률안의 제안 취지는 카드 소멸 포인트의 공익적 활용을 통해 사회 전체적인 효용을 높일 수 있다는 것.
현행법으로도 기부가 가능하지만 일일이 카드사 홈페이지에 가서 등록을 하고 별도의 애플리케이션을 다운받아야 하는 등 소비자들이 겪는 불편한 점을 최대한 줄이고 원스톱 방식으로 정리한 것으로 풀이된다.
이들은 카드사들이 소멸되는 포인트로 사회공헌 사업을 벌이겠다고 했지만 제대로 지켜지지 않고 있어 여신전문금융업법 개정안 발의에 나서게 됐다고 밝혔다.
국회 정무위원회 소속 새누리당 김을동 의원이 금융위원회로부터 제출받은 자료를 보면 최근까지 적립된 신용카드 포인트는 약 2조 2000억 원이 넘고, 최근 5년간 소멸된 카드 포인트 금액은 총 5000억 원에 달하는 반면 포인트 기부액은 총 75억 원으로 전체의 약 1.26%에 불과했다.
실제 신한카드, KB국민카드, 삼성카드, 현대카드, 우리카드, 롯데카드, 하나카드, 비씨카드 등 8개 카드사의 포인트 소멸액은 2010년 877억 원, 2012년 997억 원, 2014년 1097억 원으로 꾸준히 증가하고 있음에도 카드사의 소극적 안내와 인식부족 등으로 포인트 기부 제도의 기부실적이 저조하며, 포인트 기부상품도 다양하지 못한 실정이다.<그래프 참조>
이와 관련 새누리당 김을동 의원은 “카드업계가 여신금융협회를 통해 매년 약 200억 원의 사회공헌 기금을 조성키로 하고 지난 2011년 4월에 신용카드사회공헌위원회를 발족했으나, 집행실적은 10%에 불과했다”며 “금융위원회가 관심을 갖지 않는 사이 카드사들이 약속을 어기고 수익만 챙긴 것”이라고 지적했다.
일례로 신용카드업계의 사회공헌 기금은 2011년도에 딱 한 번 200억 원 조성한 이후 지난 4년간 한 푼도 조성하지 않았다.
김 의원은 “카드사의 기부가 1회성으로 그치지 않고 사회공헌 사업이 지속 가능할 수 있는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며 “사회와 경제가 어려울수록 기부를 통한 나눔 문화가 절실하며 노블리스 오블리주의 실천은 우리 금융권이 먼저 앞장서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어 “소멸 예정인 신용카드 포인트를 자동 기부할 수 있도록 하면 기업의 사회적 책임 실천, 카드 이용자의 권리 보장, 소액 기부문화 정착 등 ‘1석3조’의 효과가 있다”며 “재단을 설립해 소멸 포인트의 기부, 관리, 운용을 맡기면 기부자의 신뢰와 참여를 높일 수 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현재 유효 기간 내에 사용되지 않은 소멸 예정 포인트를 관리 재단을 통해 기부할 수 있도록 하는 내용을 담은 여신전문금융업법 개정안은 7개에 달하며, 모두 법안심사소위원회에 상정되고 있는 상태다.<표 참조>
여야 모두 이견이 없어 법안 통과가 유력하다는 게 시장 관계자들의 전언.
◇ 카드사만 의무 기부 그리고 백화점 등 타 업권과 형평성 어긋나 ‘지적’
그러나 정치권에서 얘기하는 신용카드 소멸 포인트 의무 기부가 또 다른 논란을 낳을 수 있다는 지적이다.
무엇보다 신용카드 가맹점 수수료 인하 등으로 내년 수익성 하락이 예상되는 가운데 이 같은 법안들이 무더기로 통과될 경우 카드업계는 상당한 타격이 불가피하다.
이에 따라 이들 업계는 별도 전담팀을 꾸려 국회에 대응하는 등 분주하다.
특히 이들은 아직 신용카드 소멸 포인트의 소유권에 대한 광범위한 사회적 공감대가 형성되지 않은 상태에서 정치권이 독단적으로 법제화를 통해 공익화를 추진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고 주장한다.
즉 ‘권리는 권리를 가진 사람에 의해서만 행사되고 포기될 수 있다’는 법리에 따르면 소멸되는 카드 포인트를 카드사가 모아서 기부하려면 포인트를 가졌던 신규·기존 고객의 동의를 모두 구해야 된다.
여신금융협회 한 관계자는 “신용카드 포인트는 고객이 카드사로부터 돈을 주고 직접 구매한 것이 아니라, 카드사가 판매 촉진 용도로 고객에게 제공하는 형태이기 때문에 포인트는 카드사의 부가서비스로 볼 수 있다”고 말한 뒤 “설령 포인트를 개인의 재산으로 인정해도 단순히 소비자가 쓰지 않았다는 이유로 채권으로 취급해 기부 재단으로 넘기는 것은 문제의 소지가 있다”고 꼬집었다. 포인트가 재산으로 인정된다면 심지어 상속이나 증여까지 가능해져 고객의 동의 없이는 포인트를 기부할 수 없기 때문이다.
또한 ‘기부와 나눔의 문화 확산’이라는 공익적인 취지에도 불구하고 유독 카드사 포인트만 의무 기부하는 것은 형평성에 어긋나는 것이 아니냐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금융업계 한 관계자는 “소비자들의 저항이 불 보듯 뻔한 통신ㆍ유통 등의 포인트 적립 서비스(마일리지)는 쏙 빼고 카드 소멸 포인트만 자동 기부하려는 것은 정치권의 편의주의적인 발상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냐”고 말했다.
또 다른 관계자도 “공익적인 취지를 살리기 위해선 항공사나 이동통신사, 정유사 적립 포인트 등 다른 업종의 마일리지도 함께 의무 기부하는 방안을 생각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때문에 시장 일각에서는 유독 민감한 카드사들의 포인트에만 날카로운 잣대를 들이대 포퓰리즘을 의식한 정치권의 행동이라는 지적도 제기된다.
사실 카드업계는 자체적인 사회공헌기금 조성 및 운영을 통해 소멸 포인트를 사회에 환원하기 위해 지속적으로 노력해왔다. 소멸 포인트를 재원으로 해 200억원의 사회공헌기금을 조성했으며 지난해 영세 가맹점의 카드 단말기를 IC 단말기로 무료 교체해주기 위해 1000억 원의 사회공헌기금도 마련했다.
아울러 이 법안은 실효성이 낮다고 제기한다. 과거와 달리 요즘 카드 고객들은 꼼꼼하게 자신의 포인트를 사용하면서 현재 카드사별 포인트 소진율은 90% 수준에 달한다.
이와 관련 여신금융협회 한 관계자는 “그 동안 카드사들이 소멸 포인트를 최소하기 위해 포인트 사용처 및 기부처 확대, 잔여 포인트에 대한 문자메시지(SMS) 고지 강화, 고객 탈퇴 이후 포인트 환급 등을 적극적으로 시행하고 있다”고 전한 뒤 “그 결과 2003년 이후 소비자들의 신용카드 포인트 사용 경험률은 계속 늘어나 올해 2분기에는 88.3%에 달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게다가 롯데카드의 경우 아예 카드 포인트 사용 유효기간을 없앴기도 했다. 소비자가 그동안 쌓은 포인트를 평생 동안 사용할 수 있도록 한 것이다.
이 때문에 향후 기부되는 카드 소멸 포인트가 생각보다 적을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카드업계의 한 관계자는 “이미 정치권과 사회단체 등의 다양한 요구에 따라 포인트를 인터넷쇼핑몰 등에서 현금과 똑같은 용도로 사용할 수 있고, 세금 납부 기능까지 갖추는 등 카드 포인트의 사용처를 꾸준히 넓혀왔다”며 “카드사들이 보유 포인트를 기반으로 다양한 공동 마케팅을 진행하고 있는 상황에서 사실상 공공 기능에 강제 기부하라는 정책은 부담스럽다”고 말했다.
김의석 기자 eskim@fntime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