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실 기업구매카드는 어음거래 성격을 띠고 있어 처음부터 카드사업과는 맞지 않았다. 그럼에도 한때 카드사간 외형 확대 경쟁이 격화되면서 취급 비중이 20% 가까이 성장하기도 했지만 지난 2013년 9월부터 물대를 포함한 기업 간 거래(B2B)를 법인카드 실적에서 제외됐고, 수익성까지 낮아 애물단지로 전락하게 됐다.
다만 대기업 계열 카드사는 그룹 계열사와 협력사 등을 지원하기 위해 이 사업을 전략적으로 영위하고 있고, 특히 삼성카드와 롯데카드는 알토란같은 성과를 거두고 있어 이목을 집중시키고 있다.
◇ 기업구매카드 한때(2013년) 반짝 실적으로 끝나나
기업 간 거래의 투명성을 제고하기 위해 도입된 기업구매전용카드 시장이 한때 살아나는 듯했다 다시 ‘부진의 늪’에 빠진 것으로 나타났다. 금융감독원 금융통계정보시스템에 따르면 신한카드, KB국민카드, 삼성카드, 현대카드, 우리카드, 하나카드, 롯데카드 등 전업계 카드사 7곳의 지난해 기업구매카드 취급액은 47조3011억 원으로 전년(48조720억 원) 보다 7709억 원 줄어든 것으로 집계됐다. 전체 신용카드 이용실적(신용판매+현금서비스: 564조5463억 원)에서 8.4%의 비중을 차지했지만, 이는 전년(8.6%)에 비해 0.2%p 낮아진 것이다. <표 참조> 1년 만에 다시 하락세로 돌아선 것.
이와 관련 카드업계 관계자는 “지난 2006년 전체 신용카드 실적에서 19.7% 비중을 차지했던 것을 정점으로 줄곧 내리막길”이라고 말한 뒤 “다만 지난 2013년 우리카드 분사와 롯데그룹 계열사 증가 등으로 반짝한 것 같다”고 덧붙였다.
그러나 우리카드가 기업구매카드 업무가 신용카드 본업과 성격이 맞지 않다는 이유로 지난해부터 대주주인 우리은행으로 이관했고, 이후 신규 취급을 중단했다.
이와 관련 우리은행 양일동 법인영업부장은 “지난 2013년 4월 우리은행으로부터 카드사업 부문을 따로 떼어내 전업사로서 출범이 당초 계획보다 빠르게 진행되면서 계정에서 분리하지 못해 기업구매카드 실적을 안고 분사하게 됐다”며 지적한 뒤 “하지만 기업구매카드가 어음이기 때문에 본업과 맞지 않아 지금은 취급하지 않고 있다”고 강조했다.
실제 이 카드사의 지난해 기업구매카드 취급액은 2932억 원으로 1년 전(9056억 원)과 비교하면 6124억 원(67.6%)이나 급감했다. 따라서 전체 신용카드 실적에서 차지하는 비중도 0.8%로 전년(2.6%) 보다 1.8%p 하락했다. <그래프 참조>
신한카드도 지난해 4조1326억 원의 취급액을 기록했지만 이는 전년 보다 4100억 원 감소했으며, 취급액 비중도 1년 전 보다 0.4%p 빠진 3.6%을 기록했다. 모(某) 카드업계 고위 관계자는 “신한카드를 제외하며 대부분의 은행계 전업 카드사들이 이 사업을 접는 쪽”이라고 전했다. 열악한 수익성도 문제다. 기업구매카드는 카드사가 밴(VAN)사를 통해 수수료를 얻는 구조가 아니다. A와 B 기업간의 대금거래에 카드사가 자금회전을 돕는 중계자 역할을 할 뿐이다.
A사가 B사로부터 물건을 받고 30일 내지 90일짜리 어음을 발행하면 카드사는 B사에 당초 어음만기일 보다 빠른 시일(3~5일) 안에 대금을 입금해주고, 약간의 수수료를 붙여 A사에 청구하는 식이다. 그러나 수수료 규모가 워낙 작다. 카드사별로 다르긴 하지만 통상 대금의 0.5% 수준이다.
◇ 삼성·롯데카드 등 일부 기업계 카드사만 관심(?)
이처럼 은행계 카드사들의 외면으로 실적이 줄어들고 있지만 삼성· 롯데카드 등 일부 기업계 카드사는 정부의 장려정책과 그룹 계열 및 협력사 지원 등을 목적으로 이 사업을 계속 영위하고 있다. 우선 지난해 가장 많은 실적을 기록한 삼성카드는 전자어음 활성화와 법인카드시장 공략을 강화하는 과정에서 기업구매카드 취급액이 덩달아 좋아졌다.
지난해 이 카드사의 기업구매카드 취급액은 14조6601억 원으로 1년 전(12조6078억 원)과 비교하면 2조523억 원이 늘었다. 전체 신용카드 실적(80조3158억 원)에서 차지하는 비중도 18.2%로 전년 보다 1.5%p 커졌다. 전업 카드사 가운데 이 사업의 비중이 가장 높은 롯데카드도 그룹의 M&A노력 덕분에 그룹 관계사가 늘어나면서 취급액 증가로 이어졌다.
지난해 기업구매카드 취급액은 12조1816억 원으로 전년(11조4324억 원)과 비교해 7492억 원 늘었다. 이로 인해 취급액 비중도 1년 전(22.4%) 보다 1.8%p 높아졌다.
그러나 기업계 카드 3사 중 나머지 카드사인 현대카드는 전년(3조5026억 원) 보다 무려 2조2657억 원 감소해, 1년 사이에 취급액이 64.7%나 빠졌다. 기업계 카드 한 관계자는 “한동안 외형확대를 위해 기업구매카드에 공을 들였지만 최근 이 사업에서 손을 떼는 분위기”라며 “그룹사 지원을 위해 실적을 늘렸던 현대카드도 여기에 동참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특히 일부 은행계 카드사는 모(母) 은행으로 이관하면서 기업구매자금대출 등 다른 형태로 전환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져 논란이 일고 있다. 이와 관련 기업계 카드사 한 관계자는 “기업구매자금대출 상품이 기업구매카드와 비슷해 모 은행 쪽으로 이동시키고 있다”며 말한 뒤 “‘하지만 얼마 전 국정감사에서 해당 상품의 금리가 중소기업대출 금리(5.81%) 보다 높아 논란이 바 있었다”고 지적했다.
사실 구매전용카드로도 불리는 기업구매카드는 기업 간 거래에서 납품업체와 구매업체 간에 어음이나 외상거래로 대금을 결제하던 방식에서 벗어나 카드로 결제하는 새로운 거래 체계로 지난 1999년 4월 도입됐지만 이후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수익성이 낮고 업계 불황까지 겹치면서 애물단지로 전락하고 있다.
은행계 카드사 고위 관계자는 “카드사가 협력업체에 물품이나 용역대금을 결제할 때 현금결제나 기업구매카드 사용을 확대하도록 금융당국이 지도하고 있지만 일부 카드사의 경우 여전히 우월적 지위를 이용해 결제대금을 자사 신용카드로 결제하고 높은 가맹점 수수료까지 받고 있다”고 지적했다. 과거 한때 기업구매카드는 현금화하기 쉽다는 이유로 인기가 높았다. 기업들이 이 카드를 이용하면 법인세ㆍ소득세 등의 세액공제 혜택도 주어졌다.
여신금융협회 관계자는 “지난 2007년 공정거래위원회는 기업구매카드나 외상매출채권담보대출 등 어음대체 결제수단으로 하도급대금을 지급할 때 결제기한이 법정기일(60일)을 넘기면 7%의 수수료를 주도록 고시하는 등 기업구매카드 활성화에 노력했다”고 설명했다.
또한 일부 카드사의 경우엔 계열사 간 거래를 자사 카드로 결제한 취급액을 법인카드 실적에 포함, 산정하면서 시장점유율 확대의 도구로 활용하기도 했다. 가령 B2B 실적이 많았던 삼성카드, 롯데카드 등 기업계 카드사는 법인카드 실적으로 잡아 카드시장 점유율 산정기준에 포함시킨 반면 기업 간 거래가 적은 은행계 전업카드사들은 이를 배제해 이를 둘러싼 양측 간의 신경전은 해묵은 얘깃거리다.
그러다가 지난 2013년 9월부터 ‘법인신용판매’ 실적에 포함됐던 B2B 실적이 기업구매전용카드 실적으로 분리되면서 그 동안 비합리적이던 시장점유율 산정이 원래의 모습을 되찾게 됐다.
〈 기업구매전용카드 이용실적 및 비중 추이 〉
(단위 : 억원, %)
주1) 신용카드 이용실적 : 일시불+할부+현금서비스
주2) 2010년부터 하나SK카드, 2011년부터 KB국민카드 포함
주3) 통합 하나카드 출범으로 외환카드 포함
* 자료 : 금융감독원(금융통계정보시스템)
김의석 기자 eskim@fntime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