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그러나 어느 정도 통계가 집적돼 자체적인 요율개발이 가능한 대형사에 비해 상대적으로 통계가 부족한 중소형사들의 경우 자사요율을 만들기도 어렵거니와 참조요율을 사용할 경우 가격경쟁력에서 밀려 대형사가 시장을 독식하는 등의 부작용을 우려하고 있다.
◇ 협의요율 폐지…‘자유·판단·경험요율’로 대체
24일 금융감독당국 및 보험업계에 따르면 금감원은 대형손보사들을 중심으로 한 TF를 구성해 몇 차례의 회의를 갖고 의견을 수렴, 지난 8일 각사 상품담당자들을 소집해 협의요율을 폐지하고 대체할 새로운 요율체계를 전달했다.
일반보험의 기업성 물건들은 재보험이 필수인데 이때 이용되는 요율은 크게 협정요율(물건에 따라 일정수준으로 정해 놓은 요율)과 협의요율(구득요율)이 있다. ‘재보험자 협의요율’이란 손보사들이 고액의 보험금을 담보한 기업보험 인수시 재보험사가 인수 가능한 요율을 제시하는 것을 기준으로 보험료를 책정하는 요율을 말한다. 이러한 협의요율 비중은 전체 일반보험의 80% 이상으로 중소사들의 경우 대형사에 비해 협의요율의 의존도가 훨씬 높다.
금감원은 보험사들이 협의요율에 계속 의존할 경우 자체적인 능력을 배양하지 못하는 점을 지적해 스스로 가격을 결정할 수 있도록 기본역량을 갖추는 것을 목표로 지속적으로 협의요율 폐지를 추진하고 있다.
금감원은 협의요율 대신 △보험료 기준 5000만원 이상의 물건의 경우 별도의 근거자료를 필요로 하지 않는 ‘자유요율’을 사용하도록 하고 △5000만원 미만 물건은 위험손해율, 사업비 등 기초자료를 구비해 ‘판단요율(요율을 내기 위한 통계가 부족한 경우 재보험사나 컨설팅사와 협의, 언더라이터 등을 통해 요율을 산출)’을 사용토록 했다. 또한 △자체적으로 만드는 자사요율 혹은 개발원의 참조요율을 이용한 ‘경험(참조)요율’이라는 세가지 체계로 협의요율을 대신한다는 방침이다. 즉 자유요율과 판단요율 모두 참조요율을 통해 요율을 만들거나 자체적인 힘으로 자사요율을 만들어 사용하라는 것이다. 금감원은 2016년 시행을 목표로 잡고 있다
금감원 관계자는 “보험사가 자체가격을 산출하는 능력을 배양해야 하는 것은 당연하다”며, “재보험자 협의요율 축소는 이미 오래전부터 이야기가 됐던 부분으로 최근 실무자들이랑 협의를 거쳤으며, 법개정 등을 위해서는 금융위와 협의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손보업계 관계자는 “당국이 자체적인 요율을 개발해 쓰라는 취지나 지침에는 공감하지만 요율을 개발하자면 소요되는 인력이나 시스템이 굉장히 많이 필요한데 2016년에 맞추기 위해서는 물리적으로 어려운 부분이 많아 중소사를 비롯해 대형사들 역시 많은 부담을 갖고 있다”고 말했다.
대형사 한 관계자는 “자사요율을 쓰기 위해서는 충분한 계약건수가 있어야 하고 통계가 충분하다고 해도 계약건들의 특성을 반영해 요율을 산출하기 위한 전산화가 갖춰져야 한다”며, “대형사는 그나마 나을지 몰라도 중소사들은 굉장히 많은 고충을 겪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진행과정에서 요율산출 능력부족이나 시스템 부재 등의 디테일한 문제들을 단기간에 어떻게 보완해 나갈지 의문”이라며, “자사요율을 만들기 위해서는 요율 측정의 명확한 근거가 마련돼야 하는데 이도 현재 미흡한 상태로, 이러한 공통의 기준을 어떻게 마련할 것인가도 문제”라고 지적했다.
중소형사 관계자는 “현재 큰 방향만 정해진 상태로 구체적인 논의가 더 있다고는 하지만 금융위에 이미 보고가 들어갔기 때문에 금융위에서 승인할 경우 준비되지 않은 채 일이 일사천리로 진행될까 우려된다”고 말했다.
◇ 중소형사 극구 반대…“대형사 위주로 시장 재편될 것”
중소사들이 이처럼 우려의 목소리가 높은 이유는 자사요율을 개발할 여건이 부족한데다, 참조요율(업계 전체 데이터를 기반)을 사용할 경우 가격이 높아질 수밖에 없어 대형사들에 경쟁력에서 밀려 그나마 보유했던 일반보험 물건마저 뺏길 우려가 있기 때문이다.
업계 관계자는 “협의요율 사용은 결국 보험료를 낮추려는 게 큰 이유인데, 자사요율을 낼 수 없는 상태에서 참조요율 만으로는 경쟁력을 갖기 어렵다”며 “아무리 이전의 물건을 통해 비슷하게 요율을 낸다고 해도 여력이 높은 대형사들이 가격덤핑을 할 경우 중소사들로서는 당해낼 재간이 없을뿐더러 대형사들 위주로 시장이 독식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결국 우량한 좋은 물건들을 중심으로 대형사들이 시장을 독식하면 추후 손해율 상승으로 보험료가 올라도 가격경쟁이 되지 않아 계약자들에게도 피해가 갈 것”이라며, “그때에는 중소사들이 다시 시장에 뛰어들 여력도 없을 것”이라고 말해 일반보험 시장혼탁이라는 부작용이 예상되고 있다.
금감원 관계자는 “중소사들이 인력도 적고 계약도 많지 않아 대형사들에 비해 여력이 부족한 것은 사실”이라면서도 “제일 중요한 것은 보험사들의 요율산출 능력 제고로, 보험사들 역시 자체적으로 요율을 산출해야 한다는 당위성에 대해 부정하기는 어려울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요율을 산출하려면 시간과 나름의 인프라가 있어야 하기 때문에 내년 당장 시행한다는 것은 아니고 장기적으로 보고 있다”며, “완전히 통계만을 기반으로 하지 않아도 자체적으로 판단하거나 재보험사, 컨설팅회사 등과 협의하고 언더라이터 등을 통해 어느 정도 요율 판단이 가능하다”고 말했다.
◇ 금융위 “폐지, 왜?” 금감원과 엇박
한편 금감원의 적극적인 추진의지와 반대로 금융위원회에서는 협의요율 폐지에 의문을 제기하며 신중한 입장을 보이고 있다.
금융위 보험과 관계자는 “금감원에서 업계 TF 등을 통해 어느 정도 결과물이 나온 것 같은데 더 살펴봐야할 부분이 많은 것 같다”며 “업계 내에서도 의견이 갈리고 있어 충분한 의견수렴이 됐는지 여부도 판단되지 않으며, 차후 부작용 등에 대해서도 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이어 “협의요율을 손보업계가 오랫동안 문제없이 사용해 왔는데 폐지하고 새로 개편해야할 이유가 있는지 모르겠다”며, “업계 내에서도 회사마다 의견이 다르고 또 상품, 언더라이팅 업무 쪽에서도 다 의견이 다른데다, 특히 중소사들의 경우 덤핑 등의 부작용으로 시장혼탁 가능성을 제기하고 있어 신중히 검토해봐야 할 문제”라고 말했다. 이와 함께 금감원이 목표로 하고 있는 2016년 시행에 대해서도 가능한지 여부에 의구심을 내비쳤다.
◇ 삼성 vs 非삼성?
삼성화재는 대형사들이 대부분 자사요율을 내는데 문제가 없을 것이란 입장이지만 대형사들은 중소사와 마찬가지로 자사요율을 만드는 것에 대해 대부분 부담을 느끼고 있다. 손보업계 한 관계자는 “논의가 진행 중이라곤 하지만 이미 큰 틀은 금감원에서 만들어 놓고 진행되는 것으로 중소사들을 비롯해 삼성화재를 제외한 여타 대형사들도 자사요율을 사용하는데 있어 부담을 느끼고 있는데 업계 의견을 수렴해 시행하고 있다는 자체가 말이 안된다”고 토로했다.
대형사 한 관계자는 “일반보험은 복잡하고 구간별로 담보도 달라 사실상 중소사 뿐 아니라 대형사들 역시 자사요율 개발에 부담을 가지고 있는 것은 마찬가지”라며, “2016년 시행시기를 맞출 수 있을지 걱정”이라고 말했다. 이어 “당국의 취지나 방향은 공감하나 상황이 여의치 않은데도 불구하고 당국이 밀어붙일 경우 부작용이 커질 수 있어 제도가 명문화 되는 시점에 예상되는 업계의 고충이나 부작용들을 얼마나 잘 보완할 수 있는 안이 마련되느냐가 중요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 제2의 RG사태 우려
일각에서는 자사요율 사용시 제2의 RG보험 사태가 발생할 가능성도 있다고 지적하고 있다. 국내 참조요율이나 자사요율을 해외 재보험사들이 어느 정도 신뢰할 수 있느냐가 문제로 지적되는 것. RG보험(선수금이행 보증보험)은 조선사가 약정일까지 선박을 건조해 계약자에게 인도하지 못할 경우 피해액을 보상해주는 보험인데, 지난 2000년대 후반 조선경기 하락과 원자재비용 증가 등으로 선박건조를 완성하지 못하는 사고가 몇건 연달아 터지면서 당시 신용등급이 떨어지는 재보험사에 출재했던 원보험사들이 재보험금을 회수 못 해 큰 손실을 입은 사건이 있었다. 몇몇 보험사들은 이로 인해 경영상 치명적인 타격을 받기도 했다.
이처럼 자사요율을 사용했을 경우 해외 유수 재보험사들에 요율에 대한 신뢰를 얻지 못할 경우 결국 부실한 재보험사들을 찾을 수밖에 없고 이 경우 사고가 발생하면 제2의 RG보험사태가 벌어질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는 것.
업계 한 관계자는 “여력이 있는 대형사들의 경우 보험료를 먼저 제시하고 나중에 재보험사를 찾기도 하지만 사고가 터지면 한건으로도 타격이 클 수 있기 때문에 중소사들의 경우 반드시 재보험사들을 잡고 보험을 인수하게 되는데, 자사요율을 사용하면 재보험사를 잡는 것이 쉽지 않을 것으로 보이며, 보험을 인수한다고 해도 이후 재보험사들을 잡지 못하거나 신용도 높은 재보험사들이 수재를 하지 않을 경우 제2의 RG사태는 예견된 사고”라고 말했다.
금융위 관계자는 “RG사태 이후 일정 신용도를 갖지 않은 재보험사들의 경우 거래를 하지 못하도록 하고 있기 때문에 제2의 RG사태 같은 일은 벌어지지 않을 것이며, 요율차이가 급격하게 벌어지지 않을 경우 재보험사 쪽에서도 수재를 할 것”이라면서도 “협의요율 폐지 후 향후 시장에서 어떤 변화가 일어날지는 예상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손보업계 재보험 담당 관계자는 “한 회사에서 재보험을 받는다 치더라도 이를 다시 재재보험을 통해 위험을 분산하는데, 과연 다시 해외출재가 가능할 것이냐는 고민해봐야 할 문제”라고 말했다. 외국계 재보험사 관계자 역시 “자사요율을 사용한다고 해서 무조건 재보험을 받지 않는다는 것은 아니겠지만 실제 위험을 적정하게 반영한 요율인가에 대해서는 꼼꼼히 따져봐야 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김미리내 기자 pannil@fntime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