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우리 단지에 '노치원'는 안 돼"…여의도·개포의 거센 반발
서울 재건축의 상징적 단지인 여의도 시범아파트는 한때 이른바 ‘노치원(노인+유치원)’ 논란의 중심에 섰다. 1971년 준공된 여의도 최고령 단지인 이곳은 서울시 신속통합기획 1호 사업으로 선정되면서 용적률 최대 400%, 최고 65층 인센티브를 약속받았다.서울시는 용적률 상향 등 혜택의 대가로 공공기여 시설인 노인 주간돌봄시설(데이케어센터) 설치를 요구했고, 일부 소유주들이 ‘노치원’이라 부르며 강하게 반발하면서 갈등이 촉발됐다. 당초 주민들은 ‘노인문화시설’ 정도로 이해했다가, 치매·노인성 질환자를 돌보는 데이케어센터로 구체화되자 “기피시설”이라며 반발해 서울시·신탁사와의 갈등이 1년 이상 이어졌다. 그러나 전자투표 등 여론 수렴 결과 조건부 수용 의견이 과반을 넘기면서, 시범아파트 재건축은 데이케어센터 설치를 포함하는 방향으로 다시 속도를 내고 있다. 이후 현재 여의도 시범아파트는 총 27개 동, 1584가구 규모의 단지로, 재건축을 통해 2493가구로 대형 재건축이 추진되고 있다.
강남구 개포동의 현대2차 아파트 역시 비슷한 진통을 겪었다. 이곳 또한 노인복지시설 건립 문제를 두고 지자체와 대립해 왔다. 결국 갈등 끝에 노인요양시설 대신 임대주택을 포함한 기타 기반시설을 조성하는 방식으로 가닥을 잡았으나, 이 과정에서 사업 일정은 당초 계획보다 크게 지연됐다. 강남권 재건축 조합 관계자는 "공공을 위한 기여라는 취지에는 공감하지만, 주민들의 주거권과 충돌하는 시설을 강요하는 것은 과도하다"고 주장했다. 결국 개포현대2차 재건축은 정비계획 변경을 통해 ‘노인복지시설 기부채납을 삭제하고 공공임대주택 공급 방향으로 전환한 것으로 정리됐다.
◇ '4조원 대어' 강서 CJ 부지도 '진통'
기부채납 갈등은 주택 재건축뿐만 아니라 대규모 복합개발 사업에서도 나타난다. 당시 사업비만 4조원에 달하는 강서구 가양동 CJ 공장부지 개발사업이 대표적이다. 2023년 2월, 당시 강서구청은 소방시설 협의 미비 등을 이유로 돌연 기획설계 인가를 취소했다.업계에서는 실질적인 중단 배경으로 ‘기부채납 규모에 대한 불만’을 꼽는다. 서울시와 시행사가 개발이익의 12.3%를 기부채납하기로 합의했으나, 기초지자체 차원에서 지역 기여도가 낮다고 판단해 제동을 걸었다는 분석이다. 이는 민간 개발사업에서 지자체의 요구사항이 늘어날수록 사업의 불확실성이 커진다는 비판이 나오는 대목이다.
◇ "학교 지어라, 돈 내놔라"…교육청 요구에 비명 지르는 건설업계
재개발·재건축 단지들이 겪는 또 다른 고충은 교육청의 기부채납 요구다. 현행법상 대규모 단지가 들어서면 학교 용지를 확보하거나 건축비를 부담해야 한다. 문제는 교육청이 학령인구 감소를 이유로 신설에는 인색하면서도, 기존 학교의 증축이나 고가의 특화 시설 설치를 과도하게 요구한다는 점이다.지난해 9월 대한주택건설협회는 주택건설사업 추진 과정에서 교육청이 개발사업자에게 과도한 기부채납을 요구하는 관행이 개선되지 않고 있다며 이에 대한 대책 마련을 교육부에 건의했다고 밝힌 바 있다. 흔히 주택건설사업자는 사업계획승인 신청 전에 교육청과 학생 배정을 사전에 협의하고, 승인 신청 시 교육청 협의서를 제출해야 한다. 이 과정에서 교육청이 학교수용 관련 사항을 학교 측과 직접 협의하도록 하는 경우, 학부모회·총동문회 등이 과도한 증축 등 기부채납을 요구하는 일이 빈번하게 발생한다는 주장이다.
이에 주건협은 ‘학교시설 기부채납 기준’을 조속히 마련할 것을 촉구했다. 구체적으로는 교육부 중앙투자심사위원회에 학급수 등 학교시설 기부채납 조정 기능을 부여해, 입주시점의 실제 학생수를 반영해서 기부채납 수준을 조정하도록 하는 개선안을 제시했다.
건설업계는 공사비 급등과 금리 인상으로 사업성이 악화된 상황에서, 수백억원에 달하는 학교 관련 비용까지 떠안는 것은 고스란히 분양가 상승과 조합원 분담금 폭탄으로 이어진다고 말했다.
◇ 서울시, 새로운 기부채납 매뉴얼 배포했지만…균형점 찾을까
기부채납을 둘러싼 갈등이 확산되면서 서울시의 고민도 깊어지고 있다. 기부채납은 공공성을 확보하기 위한 필수 장치이지만, 요구가 지나치면 재건축 사업 자체가 중단돼 주택 공급에 차질을 빚기 때문이다.부동산 전문가들은 기부채납 항목의 다변화와 합리적인 산정 기준이 필요하다고 조언한다. 한 전문가는 "무조건적인 시설 기부보다는 지역 특성을 고려한 유연한 설계가 필요하다"며 "주민들이 기피하는 시설을 들여올 때는 그에 상응하는 추가적인 인센티브를 제공하는 등 정교한 보상 체계가 작동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서울시는 과도한 기부채납 요구가 재건축 사업의 걸림돌로 작용하지 않도록 ‘기부채납 공공시설 통합관리 세부운영 매뉴얼(설명서)’을 배포했지만, 현장에서는 아직 실질적인 기준으로 자리 잡지 못하고 있다. 업계에서는 재건축 현장이 다시 정상 궤도에 오르기 위해서는 ‘공공의 이익’과 ‘사유 재산권 보호’ 사이의 균형점을 명확히 제시하는 보다 분명한 정책적 결단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조범형 한국금융신문 기자 chobh06@fntime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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