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 불편을 가장 먼저 알아보고 도움의 손길을 보탠 사람은 당시 중학생이던 아들 박주형 군이었다. “엄마가 너무 힘들어 하는데, 왜겨울만 되면 세탁기가 멈추는지 원인을 알고 싶었어요.” 그 때부터 박 군은 집 베란다에 놓인 세탁기를유심히 관찰하며 해법을 고민하기 시작했다.
원인은 단순했다. 세탁이끝난 뒤 배수관에 남아 있는 ‘잔수(殘水)’가 한파에 얼어 배수 자체를 막은 것. 자연히 해결책은 ‘녹이는’ 데 집중되기 마련이다.. 뜨거운 물을 붓거나, 드라이어로 호스를 데우거나. 최근에는한 대형 전자업체에서 ‘결빙 방지 모드’를 내놓기도 했지만그 마저도 열을 이용해 얼어버린 물을 녹이는 방식이다. 하지만 박 군의 생각은 남달랐다. “애초에 물을 배수호스 안에 남기지 않으면 얼 일도 없다”는 발상이었다.
박 군이 떠올린 해법은 의외로 기계공학의 기본 원리에 가까운 간단한 것이었다. 세탁기의 회전 에너지를 이용해 공기를 압축하고, 그압축공기를 배수관으로 순간 분사해 잔수를 밀어내는 방식이다. 가장 좋은 해결책은 열이 아니라 ‘공기’였던 것. 박 군은학교에서 배운 파스칼의 법칙, 링크 구조, 공압 개념을 세탁기에대입해 문제를 풀어냈다. 윤 씨는 “저는 생활 속 불편함을이야기한 거고 기술 구현은 아이가 다 해냈다”고 말했다.
“녹이지 말고 비워라”…중학생의 발명, 특허가 되다
박 군의 아이디어는 특허 출원으로 이어졌다. 윤 씨와 박 군은 변리사의 도움을 받아 ‘세탁기의 배수호스 이물질제거용 장치 및 이를 구비한 세탁기’란 명칭의 특허를 출원해 2019년 4월 12일 정식 등록됐다. 엄마의불편함을 풀기 위해 고안한 중학생의 발명이 ‘정식 특허’가된 순간이었다.
박 군은 사실 초등학교 때부터 발명에 두각을 보여온 학생이다. 강남구 지원을 받아 소수 인원만 참여하는 발명 교육 프로그램에 선발되기도 했고, 각종 교내 발명 활동과 탐구 프로젝트를 통해 재능을 키워 왔다. 윤씨는 “아들이 늘 생활 속 불편을 그냥 넘기지 않았다”며 “엘리베이터, 대중교통 좌석, 가전제품까지늘 ‘왜 이럴까’를 물어 꼭 뭔가를 발명해 일부는 특허 출원까지해냈다”고 전했다.
박 군의 이런 경험은 상급 학교 진학으로 이어졌다. 박 군은 올해 공학계에서 세계적으로 손꼽히는 미국 일리노이공대(IIT) 기계공학과에진학했다. 중학교 때 출원한 세탁기 특허를 비롯해서 응급 구호용 접이식 임산부 좌석시스템 등 여러 가지발명품들이 그의 진로를 일찌감치 잡아준 셈이다.
삼성도 못푼 ‘마지막 한 방울’
오래 전 개발된 이 기술이 다시 주목 받는 것은 최근 들어 길게 이어지는 데다 거세지기까지 한 한파 때문이다. 대개 베란다에 설치해둔 세탁기에서 결빙·결로 문제가 잇따르며 소비자 불만이 늘고 있다. 삼성전자를 비롯한대기업들도 결빙 방지 기술을 적용하고 있지만 대체로 열을 활용한 방식이어서 한계가 적잖다. 호스 내부에물이 남아 있는 한 완전한 해결은 어렵기 때문이다.
윤 씨는 “열로 말리는방식은 시간이 오래 걸리고 구조적으로 한계가 있다”며 “세탁기가지닌 회전력을 활용해 공기를 만들고 그 공기로 배수관을 비워버리면 간단하다”고 설명했다. 이 특허는 겨울철 결빙 방지 뿐 아니라 사계절 곰팡이·악취·세균 억제 효과까지 겨냥하고 있어 유용성이 높다.
윤 씨 모자는 이 특허가 개인의 아이디어 차원에 머물지 않기를 바라고 있다. 윤 씨는 “이런 기술 해법은 어려운 게아니지만 오래 전에 나온 특허로 같은 방식을 쓰지 못하는 게 아닐까 싶다”며 “시제품 수준에서 가능성을 확인했을 뿐인 만큼 누군가 기술을 구매해 기업 차원에서 더 안전하고 실용적으로 발전시켜줬으면좋겠다”고 밝혔다. 수 년 전에도 한 기업에서 기술 매각제안을 해왔지만 당시에는 박 군의 진학 문제 등이 얽혀 성사되지 않았다.
매서운 추위가 길게 이어지고 전세계적으로도 기상이변이라고 할 정도의 폭설과 한파가 일상이 된 상황이다. 이런 때엔 세탁기 하나 멈춘게 누군가에게는 며칠을 완전히 망치는 사건이 되기도 한다. 동대문 의류 디자이너 엄마의 고충에서 출발해중학생 아들의 발명으로 이어진 이 특허는 그래서 더 현실감이 크다. 박 군의 특허는 기술이 거창한 연구실에서만이 아니라 생활의 작은 모퉁이에서도 시작된다는 것을 잘 보여준다.
장종회 한국금융신문 기자 jhchang@fntime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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