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황석진 동국대학교 국제정보보호대학원 교수
황석진 동국대학교 국제정보보호대학원 교수는 한국금융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이같이 밝히며 스테이블코인의 제도적 기반과 리스크관리 필요성을 강조했다. 특히 국내 제도가 AML(자금세탁방지) 규제 틀은 갖췄지만 세부 운영 규율과 신뢰 확보 장치는 부족하다며 법적 정의와 상환권 보장, 준비자산 규율 강화, 거버넌스와 커스터디 분리, 리스크 공시 표준화 등을 구체적 해법으로 제시했다.
그는 유동성·상환 리스크와 관련해 준비자산의 만기 구조와 상환 수요가 맞지 않거나 메커니즘이 지연되면 페그가 쉽게 이탈해 연쇄적인 디페깅 사태로 이어질 수 있다고 지적했다. 발행사가 준비자산을 분리 보관하지 않거나 일일 잔액 공시와 독립적 회계감사가 부실하면 신뢰가 급속히 흔들리며 뱅크런 위험으로 번질 수 있다는 설명이다.
스마트컨트랙트·브릿지 취약점은 전체 준비자산 손실로 직결될 수 있어 실전 수준의 보안 점검(레드팀 훈련), 버그바운티 프로그램, 서드파티 보안 보험 등 선제적 대비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오라클과 시장조작 리스크 역시 담보 청산이 연쇄적으로 발생해 시장 전체에 충격을 줄 수 있으며 특정 국가의 갑작스러운 규제 변화도 상환, 상장, 유통 구조 전반에 직접적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덧붙였다.
황 교수는 “스테이블코인은 단순한 디지털자산이 아니라 결제와 금융 인프라의 핵심 축으로 자리 잡아가고 있기 때문에 유동성 관리, 자산 투명성, 기술 보안, 시장질서, 법·제도 등 다층적 리스크관리가 신뢰 유지의 관건”이라고 말했다.
프라이버시와 규제 준수 간 균형도 큰 과제다. 블록체인의 투명성은 동시에 개인정보 침해 우려를 동반하는 만큼 ‘프라이버시 보존형 규제 준수’ 기술을 어떻게 제도적으로 수용할지가 향후 관건이라는 설명이다.
아울러 글로벌 규제 정합성 문제도 지적했다. 유럽연합(EU)의 MiCA, 미국의 연방·주별 법안, 아시아 각국의 상이한 규제 체계가 병존하면서 규제 차익이 발생하고, 이로 인해 글로벌 AML 체계의 통일성과 실효성이 저해되고 있다는 것이다.
특히 스테이블코인과 디지털자산을 둘러싼 규제와 시장 대응 방식은 국가별로 뚜렷한 차이를 보인다.
한국은 현재 가상자산사업자(VASP)를 중심으로 한 AML 프레임워크를 갖추고 있지만 스테이블코인에 대한 법적 정의, 상환권 보장, 준비자산 관리, 감사 공시 등은 여전히 분절적으로만 다뤄지고 있다. 전자금융거래법과 디지털자산기본법이라는 이원적 법 체계를 어떻게 접목해 정합성을 확보할지가 가장 중요한 과제로 꼽힌다.
황 교수는 “해외 주요국들은 각기 다른 우선순위 예측 가능성(EU), 다양성과 혁신(미국), 소비자 보호(일본), 유연한 규율(싱가포르)을 바탕으로 제도를 설계해 왔다”며 “반면 우리나라는 아직 제도 설계의 초기 단계에 있으며 AML 중심 규제를 넘어선 종합적이고 일관된 스테이블코인 제도화가 시급하다”고 말했다.
먼저 법적 정의와 상환권을 명확화다. 원화 스테이블코인의 법적 성격을 전자화폐형 등으로 분류하고, 투자자 보호를 위해 즉시 상환권(T+0)을 법제화해야 한다는 것이다. 상환 수수료나 지연 페널티도 상한을 규정해 신뢰성을 높여야 한다고 강조했다.
준비자산 규율 강화도 필요하다. 황 교수는 “준비자산을 현금, 은행 예치금, 단기 국채 등으로 제한하고, 듀레이션 불일치로 인한 위험을 줄이기 위해 만기 제한을 설정해야 한다”며 “준비자산을 집합투자나 유동화 형태로 운영하는 것은 금지하고 매일 잔액 공시와 월간 보증 및 감사보고를 의무화함으로써 투명성을 높여야 한다”고 제언했다.
또한 거버넌스와 커스터디(수탁) 기능을 분리해야 한다. 그는 “발행, 운용, 수탁 기능을 동일 기관이 겸하는 것을 제한하고, 관련 당사자 간 이해충돌을 방지하는 장치를 마련해야 한다”며 “준비자산은 일정 비율 이상을 국내 금융기관에 보관하도록 규정해 해외 이탈이나 외환 리스크를 최소화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리스크 공시 표준 마련도 시급하다. 발행자는 유동성 커버리지 비율, 상환 대기열 조건, 스트레스 테스트 결과 등을 정기적으로 공시해 투자자가 위험을 명확히 인식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황 교수는 “국내 제도는 스테이블코인을 단순히 가상자산으로 규율하는 수준에서 벗어나 법적 지위·상환권 보장, 준비자산 건전성, 거버넌스·커스터디 분리, 리스크 공시까지 포함하는 종합적 관리 체계를 갖춰야만 시장 신뢰와 국제적 정합성을 동시에 확보할 수 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정책 당국에는 기능중립성과 명확한 가이드라인, 감독 집행 원칙에 기반한 규제 체계 설계를 강조했다. 준비자산 요건·분리보관·정기감사·실시간 보고 의무의 법제화, 규제 샌드박스의 최소 안전기준 설정, 국제 공조 체계 마련이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금융권에도 온·오프램프 리스크관리와 실무적 감시 역량을 대폭 강화해야 한다고 말했다. KYC와 온체인 리스크 스코어를 결합한 리스크 기반 접근(RBA)을 도입하고, 지갑 평판·화이트리스트·거래행태 분석을 표준화해 의심거래를 사전에 차단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내부적으로는 스테이블코인 뱅크런·유동성 쇼크 시나리오를 포함한 스트레스 테스트와 자본·유동성 대비를 시행하고, 온·오프램프 프로세스에 대한 실시간 모니터링·거래동결·포렌식 절차를 마련해야 한다고 당부했다. 결제·청산 인프라 연계 시에도 기술적·운영적 상호검증(통합테스트)과 공급망(오라클·브릿지·커스터디) 리스크 점검을 통해 전이 위험을 최소화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구체적으로 RWA(실물자산) 토큰화와 스테이블코인의 수렴이 가속화되면서 국채·MMF·은행예금 등 전통자산의 토큰화가 본격화될 경우 스테이블코인은 단순 결제를 넘어 자산운용·유동성 인프라로 기능하게 된다고 내다봤다.
또한 프로그램형 상환이 도입되면 온체인 규칙에 따라 즉시(T+0) 혹은 조건부 상환이 자동 실행돼 유동성 관리와 투자자 신뢰 모델이 근본적으로 재설계될 것으로 보인다. 아울러 프라이버시 보존형 규제 준수 기술은 AML·KYC 요건과 개인정보 보호 사이의 균형을 가능하게 해 스테이블코인의 제도권 채택을 촉진할 전망이다.
모듈러 보안 체계 강화는 지갑(MPC·Account Abstraction), 브릿지(라이트클라이언트·다중 검증), 오라클(다중 데이터 소스) 등 계층별 보안기준을 상향해 단일 실패 지점의 전이 위험을 최소화한다. 합성 결제 레일의 확산은 CBDC와 민간 스테이블코인 간 상호운용을 실험하며 공공·민간 결제 인프라가 융합되는 새로운 결제 생태계를 열 것으로 보인다. 마지막으로 실시간 공시·감사기술은 준비자산, 상환 내역, 유동성 지표를 거의 실시간으로 증명·공개함으로써 시장의 투명성과 신뢰를 높이는 핵심 인프라가 될 가능성이 크다고 내다봤다.
우한나 한국금융신문 기자 hanna@fntime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