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 권혁기 건설부동산부 부장
지난달 27일 중대재해처벌법이 시행된 이후 한 달이 지났지만, 그 사이에만 건설과 제조업 등 사업장에서 40여명의 근로자가 사망하는 사고가 발생했다.
중대재해처벌법은 국내에서 시행되고 있는 법률 1554건 중 ‘처벌’이란 단어가 들어가 있는 20개 법률 중 하나다. 이름부터 중대재해 예방보다는 책임과 처벌에 중점을 뒀다는 느낌이 든다. 물론 예방을 위해 불가피하게 처벌이 필요하다고 강조하지만, 공공기관의 감독과 감시보다 시공사에 책임을 전가하고 있다는 반응도 나오는 게 사실이다.
건설업계에서 크고 작은 사고가 발생하는 이유 중 하나는 ‘약속’이다. 실제로 건설업계에서 계약에 있어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 중 하나는 공사기한(공기)을 맞추는 것이다.
한국에서 ‘약속’은 어떤 의미일까? 윤태호 작가가 그린 인기 웹툰 ‘미생’에서는 이런 장면이 나온다.
웹툰 '미생' 한 장면.
만화에서 언급된 것처럼 한국 건설업계는 세계에서도 알아준다. 그러나 ‘기일을 철저히 지키고’라는 부분에서 최근 발생한 건설업계 중대재해가 떠오르는 것은 기분 탓만은 아닐 것이다.
아직 조사가 진행 중이지만 화정동 사고는 인재(人災)로 귀결될 가능성이 크다. 사고 요인 중에는 공기를 맞추기 위한 무리한 공사 진행 등이 꼽힌다.
시공사 측은 공기보다 빠르게 진행되고 있었기 때문에 무리하게 단축할 이유가 없었다고 해명했지만, 한파주의보 속에서도 공사가 강행됐다는 제보와 민원도 다수 있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이러한 공기지연 문제는 건설업계에서 빠질 수 없는 이슈다. 건설사들은 프로젝트 완료라는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노력하지만, 공기지연이 발생하면 지체상금(遲滯償金·계약상대자가 정당한 이유 없이 계약상의 의무를 기한 내에 이행하지 못하고 지체한 때에는 이행지체에 대한 손해배상액의 예정성격으로 징수하는 금액)을 물어야 할 수 있다. 보통 공사기간을 초과하면 1일 단위로 계산해 공사대금에서 감액하게 된다.
지체상금을 회피하거나 공기지연과 관련해 손실을 만회하기 위해 분쟁으로 이어지기도 하는데, 이러면 시간적으로나 경제적으로 추가적 손실이 발생하기 때문에 건설사들 입장에서는 공기지연을 꺼려할 수밖에 없다.
고속도로건설 등 공공기관과 계약에서도 지체상금이 발생할 수 있지만 민간보다 좀 더 유연한 편이다. 실례로 지난 2014년 기록적인 폭설로 영동지역 공공건설공사에 대한 공기연장이 신청됐고, 이를 수용하면서 지체상금 등 각종 페널티도 면제됐다.
관급공사는 5/10000을 지체상금요율로 정하고 있다. 민간공사는 표준도급계약서에 따라 1/1000을 요율로 하는데 체결한 계약의 특수조건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 민간공사는 관급공사보다 지체상금요율이 크지만 발주자에게 우월적 지위가 있어 시공사로서는 어쩔 수 없이 이를 받아들이는 편이다. 또 공기지연에 따른 지체상금 외에도 손해를 배상청구할 수 있어 이는 무리한 공사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 또 원도급사와 하청업체 사이에도 지체상금이 있어 일선 현장에서는 공기를 맞추기 위해 부단히 노력하게 된다.
‘약속’을 지키는 일은 매우 중요하다. 한국 건설사들이 약속을 잘 지켜왔기 때문에 해외에서도 각종 수주에 성공할 수 있었던 이유 중 하나임에는 분명하다. 계약에 따른 공사 기한을 맞추는 것은 기본적으로 중요하지만 ‘약속’ 때문에 ‘안전’이 선택사항이 돼서는 안된다. 안전은 선택이 아닌 필수다.
이를 위해서는 건설업계 내외부적으로 사회적 합의를 통해 지체상금요율에 대한 개선이 필요하다. 또 무리한 공사 진행은 총체적인 부실공사를 강요할 수 있다는 점을 발주자도 인식해야 한다. 이는 큰 사고로 이어지고, 이로 인해 발주자와 시공사 모두 손해를 끼칠 수 있다. 빈대 잡으려다 초가삼간을 태우는 격이다.
중대재해법으로 인한 처벌이 중요한 게 아니다. 서로 상식적인 수준에서 양보하며 ‘안전’을 최우선으로 하는 사회가 되는 것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닐 것이다.
권혁기 기자 khk0204@fntime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