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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의 자산 버블 형성 [김성민의 일본 위기 딥리뷰]

김성민 교수(전. 카이스트 금융전문대학원 교수)

smkim54@

기사입력 : 2025-08-18 1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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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의 자산 버블 형성 [김성민의 일본 위기 딥리뷰]
1980년대 후반 일본의 버블 경제는 현대 경제사에서 관측된 거품 사례 가운데서도 규모와 파급력 측면에서 매우 이례적이었다고 평가된다.

1993년 일본 경제백서에는 1980년대 후반의 버블 경제와 그 후유증에 대해서 다음과 같이 서술하고 있다. “1980년대 후반 일본 경제는 눈부신 호황을 구가했다. 주식과 부동산 등 자산 가격이 급등하고 기업의 수익은 사상 최고 수준을 기록했으며 고용과 소득 상황도 양호한 흐름을 보였다. 그러나 이러한 활황은 실물경제의 생산성 향상이나 기술혁신 등 지속이 가능한 성장요인보다는 주로 금융완화와 저금리로 인한 과잉 유동성, 자산 가격의 상승 기대 등에 기반하고 있었다. 이러한 과열된 경제 상황은 뒤늦게 이른바 버블경제로 인식되었으며 1990년대 초 자산 가격이 급격히 하락하면서 일본 경제는 장기적인 침체기에 돌입하게 되었다.”

일본 경제백서가 지적하듯이 외형상으로는 1980년대 후반 일본 경제의 펀더멘털은 매우 견실해 보였기 때문에 당시에는 누구도 이것을 버블경제로 판단하기는 매우 어려웠을 것으로 생각된다. 버블 시절 재무성 은행국장이었던 와세다 대학의 니시무라 요시마사는 “그 당시 일본 사회 전반이 버블이라는 현실을 제대로 인식하지 못했다. 공무원, 언론, 정치권, 그리고 나 자신도 예외가 아니었다. 그것이야말로 사태를 악화시킨 핵심 원인이었다.”라고 회고했다.

버블 경제에 대응해 정책당국이 직면하는 현실적 난제 가운데 하나는 자산 버블의 존재를 사전에 식별하는 일이 극도로 어렵다는 점이다. 특히 1980년대 후반 일본처럼 경제 전반에 미래에 대한 낙관론이 팽배했던 시기에는 당시 이용 가능한 모든 정보를 종합하더라도 버블 발생 여부를 판단하기란 한층 더 어려웠을 것이다. 시라카와 마사아키 전 일본은행 총재는 이러한 시기의 특징으로 버블의 초기 조건에 해당하는 비정상적으로 높은 낙관론과 신용·대출의 급격한 팽창을 지목하였다.

오키나, 시라츠카, 시라카와 등 일본은행 소속 세 명의 이코노미스트는 버블경제 여부를 판정하기 위해서는 우선 버블 경제가 지니는 특성을 규명한 뒤 이러한 특성이 현재의 경제 상황에 부합하는지를 평가하는 재량적 판단에 의존할 수밖에 없다고 지적하였다. 이들은 버블경제의 핵심 특성으로 (1) 자산 가격의 급격한 상승, (2) 경제활동의 과열, (3) 통화량 및 대출의 급격한 확대를 제시하였다.

버블 경제를 규정짓는 첫 번째 특징은 자산가격이 단기간에 비정상적으로 가파른 상승세를 보인다는 사실이다. 1980년대 전반기의 일본 주식시장은 1980년대 후반의 폭발적인 상승에 비해 비교적 완만하고 안정된 흐름을 보였다. 그러나 이 시기는 일본 자본시장과 기업구조의 체질이 서서히 바뀌어 가던 전환기로 이후 자산 버블이 형성될 수 있는 기반이 마련되었던 시기라고도 볼 수 있다.

1980년대 후반 특히 1985년 9월의 플라자 합의 이후 일본의 주식시장은 유례없는 상승세를 보였다. 닛케이 225 지수는 플라자 합의 이전인 1985년 9월 20일의 12,660 엔에서 1987년 8월 말에는 26,000 엔까지 치솟았으며, 이후 상승세를 이어가 1989년 말에는 플라자 합의 이전 대비 3.1배 높은 38,915 엔으로 정점을 찍었다. 1980년대 후반 일본의 주가는 기업 이익 증가율에 비해 3배를 웃도는 속도로 상승세를 보였다.

이러한 비정상적인 주가 상승은 단순한 호황기의 자연스러운 결과가 아니라 완화적 통화정책, 과열된 자산 시장, 그리고 경제 시스템의 구조적 특성이 맞물린 결과이었음을 잘 보여준다. 한편 이러한 주가의 급등은 기업들의 자본비용을 낮춰 GDP 대비 기업들의 투자지출 비중을 높이는데 핵심적인 역할을 했다.

▲플라자 합의 전후 일본 닛케이 225 지수 추이: 1980~1989

▲플라자 합의 전후 일본 닛케이 225 지수 추이: 1980~198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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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0년대 후반 광범위하게 상승한 주가와 달리 토지가격 급등은 대도시 상업지에 집중되어 특정 지역에 편중되는 모습이 나타났다. 1985년부터 1990년까지 도쿄, 요코하마, 나고야, 교토, 오사카, 고베 등 6대 주요 도시의 지가지수는 약 200% 상승했다. 1986~1987년 동안 도쿄의 상업용 토지가격은 139% 급등하였고 이 상승세가 다른 대도시로 전이되면서 주거용 지가 또한 동반 상승하였다.

1980년대 후반 일본의 토지가격 버블은 전국적으로 동일하게 나타난 것이 아니라 특정 대도시권을 중심으로 한 지역 불균형적 양상이 두드러졌다. 특히 도쿄의 토지가격은 1987년부터 1988년까지 불과 1년 만에 세 배로 급등하였으며 이러한 가격 수준은 국제 비교에서도 극단적인 수준에 해당한다고 볼 수 있다.

예를 들어 “도쿄를 팔면 미국을 살 수 있다”는 당시 통용된 유행어는 과장된 표현이 아니라 현실을 상당 부분 반영한 비유였다. 실제로 도쿄 황궁(면적 약 1.3 제곱마일)의 토지가격은 미국 캘리포니아 주 전체의 토지가격과 유사한 수준에 달했으며 면적당 가격으로 환산할 경우 약 100만 배의 격차를 보였다. 또한 인구 약 3만 9천 명이 거주하는 도쿄 지요다구의 토지가격 총액이 캐나다 전체의 토지가격과 맞먹는 수준이었다.
▲일본 지가지수 추이: 1989~1999

▲일본 지가지수 추이: 1989~1999

이에 비해 지방 중소도시와 농촌 지역의 토지가격은 상승폭이 미미하거나 정체되어 대도시와 지방 간의 지가 격차가 역사적으로 전례 없는 수준으로 확대되었다. 일본 국토청 통계에 따르면 1985~1990년 사이 도쿄 상업용 토지가격은 연평균 27.5% 상승한 반면 비도시 지역의 상승률은 1% 미만에 그쳤다. 이러한 지역별 토지가격 격차는 부의 불평등 심화와 지역경제의 구조적 취약성 확대라는 부정적 파급효과를 초래하기도 했다.

대부분의 자산 버블에서는 부동산 가격과 주식 가격이 동반 상승하는데 일본의 사례도 이러한 일반적 패턴을 따랐다. 부동산과 주식 가격이 함께 상승하는 경로 중 하나는 상장 주식 가운데 부동산 회사·건설사·은행 등 부동산과 밀접한 산업의 비중이 높아 부동산 가격 상승이 주가 상승으로 이어지는 연결고리다. 이와 함께 부동산 가격 상승으로 자산이 늘어난 개인들이 자산 포트폴리오의 위험분산 차원에서 주식 매입을 늘리게 되는 반면 주식 상승으로 재산이 늘어난 개인들은 주식 투자를 늘려 위험을 분산하는 연결고리를 들 수 있다.

버블 경제의 두 번째 특성은 경제활동의 과열이다. 일본 경제는 1985년 9월 플라자 합의로 인한 엔화의 급격한 강세 여파로 잠시 경기침체를 겪었으나 1986년 11월을 저점으로 반전하여 1991년 2월까지 4년 3개월간 확장 국면이 이어졌다. 이 확장세는 1960년대 이후 가장 긴 경기 확장기로 이 기간 동안 실질 GDP와 산업생산은 각각 연평균 5.5%, 7.2%의 높은 성장률을 기록했다. 당시 실질 GDP 성장률의 장기 추세가 3.5%이었다는 점을 감안한다면 5.5%의 성장률은 경제활동이 과열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이러한 빠른 경제성장은 GDP의 약 20%를 차지하는 기업의 설비투자가 주도했으며 주택투자와 내구소비재 판매 역시 호조를 보인 데 힘입은 것이었다.

버블 경제의 세 번째 특성인 통화와 신용 증가를 보면 1983년까지 경기침체에 따라 하락 추세를 보였던 M2+CD와 은행대출 증가율은 1984년부터 경기회복에 따른 기업 투자 및 수출 증가로 인한 대출 수요의 확대와 일본은행의 저금리 기조 유지 등으로 상승세로 반전되었다. 플라자 합의 이후 엔화의 급격한 강세에 따른 경기둔화에 대응해 일본은행은 금리 인하를 통해 통화정책 기조를 대폭 완화했다. 이로 인해 M2+CD 증가율은 1986년부터 상승세를 보이기 시작했으며 1987년 4~6월에는 전년 동기 대비 10%를 상회했다.

이와 함께 금융자유화에 따라 대기업들이 은행 대신 자본시장에서 직접 자금을 조달하게 되는 등 영업환경 변화에 대처해 은행들이 공격적으로 영업을 확대하면서 대출 등 신용이 과도하게 팽창하기 시작했다. 은행들은 부동산, 건설, 비은행 금융기관에 대해 대출을 집중적으로 확대했다. 1985년 3월부터 1989년 3월까지 국내 은행들의 부동산 대출은 연평균 25% 증가하면서 20조 엔에서 49조 엔으로 급증했다.

▲플라자 합의 전후 M2+CD 및 은행대출 증가율 추이: 1980~1989

▲플라자 합의 전후 M2+CD 및 은행대출 증가율 추이: 1980~198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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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키나, 시라츠카, 시라카와는 앞서 제시한 세 가지 버블경제의 특성을 고려할 때 일본의 자산버블 형성 시점을 1987년으로 보는 것이 타당하다고 주장하였다. 그들에 따르면 1985~1986년 동안 자산가격 상승이 가속화되었으나 플라자 합의 이후 엔화 초강세로 인한 경기침체가 지속되었다. 1987년에 접어들면서 일본 경제는 확장 국면으로 전환되었고 이에 따라 통화량과 대출의 증가세가 더욱 가속화되었다.

일본은행 또한 1987년부터 자산버블의 형성 가능성에 대해 우려를 표명하기 시작했다. 이미 1986년 봄부터 과도한 통화팽창에 대한 경계심을 드러냈던 일본은행은 1987년 5월 발간한 조사통계월보에서 “통화공급 증가분의 상당 부분이 투기적 거래에 사용됨으로써 통화유통속도가 둔화되고 있으며 이는 금융기관의 공격적인 대출 행태에 의해 뒷받침되고 있다”고 분석하였다.

이어 “일본은행은 디플레이션 쇼크가 금융기관 등으로 광범위하게 확산되는 것을 우려한다”는 입장을 밝힘으로써 자산버블이 초래할 수 있는 부채-디플레이션(Debt-Deflation) 가능성까지 경고하였다.

김성민 교수(전. 카이스트 금융전문대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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