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이성규 기자
이제라도 제도적으로 ‘코리아 디스카운트’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면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귀를 의심할 수밖에 없는 소식을 들었다. 물적분할이라도 주주 보호가 가능하다면 중복상장을 허용한다는 것이다.
거래소는 ‘중복상장’이 왜 논란이 되는지 모르는 것일까. 아니면 모르는 척하는 것일까. 중복상장은 말 그대로 한 시장에서 두 기업 평가에 대한 자본이 겹치는 것으로 그 규모만큼 자연스럽게 디스카운트가 발생한다.
따라서 같은 ‘주주보호’라도 중복상장 여부에 따라 밸류 격차가 발생하게 된다. 거래소가 ‘주주보호’를 중복상장 조건으로 제시한 것에 대해 실망한 이유다.
거래소 입장에서 생각해보면 납득이 되는 부분도 있다. 상장은 기업 성장과 재무구조 개선을 위한 빅이벤트다. 설령 중복상장 이슈가 불거져도 해당 기업이 유치한 자본을 기반으로 성장하는 것이 전체 경제 측면에서도 이득이다. 그 관문을 담당하는 거래소가 무조건 중복상장을 차단하는 것도 옳지 않다.
하지만 중복상장 이면에는 ‘수익’이 존재한다. 거래소는 상장 기업을 대상으로 연간 상장 유지 수수료와 신규 상장 수수료를 수취한다. 이밖에도 거래 수수료, 인프라 서비스 수수료 등도 있다.
이중 상장 수수료는 기업 수, 시가총액, 발행주식수에 비례한다. 중복상장 없이 모회사만 상장돼 있고 자회사 가치가 모두 반영되는 경우와 물적분할 등 쪼개기 상장을 비교해 보자. 거래소 입장에서 모든 경우의 수를 고려해도 후자가 유리하다.
연간 상장 유지 수수료는 모회사만 상장 시 1개 기업 수수료, 모회사 자회사 상장 시 2개 기업 수수료를 받는다. 또 쪼개기 상장 시 단 한 번이지만 신규 상장 수수료가 발생한다. 거래수수료와 정보 등 판매수익 역시 쪼개기 상장이 이득이다.
중복상장으로 모회사 매도, 자회사 매수 등 차익거래가 활성화되면서 거래소는 추가적으로 수익을 올릴 수 있다.
즉 중복상장은 기업 밸류를 낮추는 요인이지만 거래소에는 중요한 수익원이다. 중복상장 주체는 대부분 국내 주요 그룹 계열사로 그 규모만큼이나 거래소 입장에서는 매력적인 ‘고객사’다.
사실 이는 거래소만의 문제라고 보기 어렵다. 거래소는 지난 2015년 민간기업 전환 이후 증권사들이 주요주주로 포진해 있다. 거래소가 상장 규정 관련 독립성을 갖고 있다고 해도 상장 주관업무를 담당하는 증권사들의 영향에서 완전히 벗어나기 어렵다. 거래소를 중심으로 이해관계자들의 ‘수익’을 간과할 수 없다는 것이다.
특히 거래소의 민간기업 전환 이후 신규상장들이 급격히 늘기 시작했고 대기업 계열사들의 중복상장 비율도 높아졌다. 투자자들은 ‘거래소-증권사-기업’이라는 삼각트리오에 대항하면서 부를 늘리기는커녕 오히려 쪼그라들었다.
기업공개(IPO) 시장에서 증권사와 기업은 이익 집단이고 한편이다. 또 투자자와는 정확하게 대치점에 있다. 반면 거래소는 다르다. 심사부터 최종 상장까지 사실상 독립적인 권한을 갖고 있기 때문에 그 결과에 대해서도 책임감을 가져야 한다.
상장 기업이 많을수록 거래소에는 긍적적이다. 그리고 거래소는 ‘숫자’ 측면 유의미한 성과를 거뒀다. 그러나 거래소가 가진 권한만큼 한국 주식시장의 질적인 발전에 기여했다는 생각은 들지 않는다.
지금도 많은 국내 투자자들이 해외 시장 찾고 있다. 거래소는 국내 투자자를 다시 불러들일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 또 해외투자자가 먼저 찾을 수 있는 시장 문화도 만들어야 한다. 조건부 중복상장 허용이 이러한 취지에 부합하는 것인지는 여전히 의문이다.
중복상장을 무조건 반대한다는 뜻은 아니다. 그동안 국내 증시가 비정상적 수준의 밸류에서 거래됐다면 이를 충분히 정상화하는 과정과 시간도 필요하다. 거래소가 그 동안 기업 입장을 고려했다면 이제는 투자자 입장을 더 생각해야 한다. 기울어도 한참 기울어진 국내 증시가 균형을 찾을 때까지 말이다.
이성규 한국금융신문 기자 lsk0603@fntime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