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고 남들보다 늘 먼저 시장을 예측하고, 성과를 위해 치열한 하루하루를 살았던 김 전 이사장은 어느새 누구보다 부지런한 농사꾼이 됐다.
손수 가꾼 농작물로 마음에 맞는 사람들과 밥 한끼 먹는 행복을 알게 됐다는 그는 이제 흙 위에서 남은 인생 2막 향해 찬찬히 걸어나갈 생각이다.
증권사 대표시절부터 꾸준했던 귀촌 라이프
시작은 이미 십수 년 전부터였다. 키움증권 대표이사 시절, 시간에 쫓기듯 사는 삶이 고되게 느껴지면서 뭔가 새로운 삶의 돌파구를 찾기 위함이었다.
일반적으로 사람들이 많이 하는 골프나 등산 등의 취미를 안 가져본 것도 아니나, 그걸로는 뭔가 부족함을 느꼈던 김봉수 전 이사장은 자연스레 자신의 고향을 떠올렸다.
“원래 시골에서 낳고 자란 ‘촌놈’이라 언젠가는 다시 자연에서 살고 싶다는 마음이 있었어요. 그러다 아예 귀촌을 결심하게 된 거죠. 고향에 11평짜리 소박한 통나무집을 짓고 ‘분저울 캐빈’이란 이름도 붙여줬어요. 2006년부터 주말이면 짬나는 대로 찾아와 농사를 지었습니다.”
그렇게 시작된 김 전 이사장의 귀촌 라이프는 사실 즐거움의 연속이다. 캐빈 앞 1,500평가량의 밭에 철마다 다른 작물을 심고 키우고 수확하다 보면 하루가 어떻게 흘러가는지 모를 정도다. 대표적으로 봄에는 하지감자를, 여름에는 김장배추와 무를 심어 겨울을 준비한다고.
“감자는 보통 3월 중순경에 심는데, 구황작물이라 심은 후 2달이면 수확이 가능해요. 그럼 8월쯤 다시 배추와 무를 심는 거죠. 문제는 수확이에요. 땅 규모가 있다 보니 배추만 해도 1,500포기 정도 되거든요. 저희 부부가 할 수 있는 차원이 아니더라고요. 그래서 키움증권 대표 시절엔 키움증권 직원들이, 거래소 이사장 시절엔 거래소 직원들의 도움을 많이 받았어요. 물론 수확한 농작물은 직원들 손이 서운하지 않게 그득 들려줬죠.”
최근에는 키움증권 봉사단인 ‘키움과 나눔’에서 여름 가을로 수확을 도와주고 있다. 수확물의 일부는 지역 내 고아원과 양로원에 나눠주는 일도 빼놓지 않는다.
함께 먹는 밥 한끼의 즐거움
김봉수 전 이사장을 귀촌의 즐거움에서 헤어나오지 못하게 하는 이유는 또 있다. 간간이 자신이 있는 괴산을 찾아오는 지인들 덕분이다.
처음 ‘분저울 캐빈’을 지었을 때부터 건너건너로 소식을 들은 증권사 CEO들이 부부동반으로 함께 이곳을 찾곤 했다. 찾아오는 사람은 많은데 어울릴 수 있는 공간이 적다 보니 2017년 통나무집 옆에 새롭게 집을 짓고, 기존 캐빈은 게스트하우스처럼 사용 중이다.
“사람은 누구나 자연과 함께하고 싶은 욕구가 있잖아요. 그런데 막상 제가 시골에서 밭을 가꾸며 산다 하니 ‘잘됐다’ 싶었던 것 같아요. 아무래도 비슷한 일을 하던 동종업계 사람들이 많다 보니 저와 비슷한 답답함을 느낄 수밖에 없겠죠. 그냥 종종 이곳을 찾아 땀 흘리고 함께 밥 한끼 하는 일이 그들에게 어느 정도의 위로가 되지 않았을까요? 제가 그런 것처럼요.”
아예 땅 한 켠을 얻어 주말농장처럼 그들만의 농사를 짓는 이들도 있다. 현재는 딸과 사위를 포함해 5쌍의 부부가 김 전 이사장과 함께 농작에 참여 중이다. 저마다 다른 작물을 심어 교환하는 재미도 쏠쏠하다.
귀농귀촌, 일단 살아보고 정착 고민하는 자세 필요
누구나 그렇듯 은퇴 후 자신에 삶에 대한 두려움은 있는 법이다. 김 전 이사장도 당연히 그랬다. 귀촌을 결심하면서도 온전히 농사만을 짓겠다는 마음보다는 지역에서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을 찾겠다는 생각도 있었다.
하지만 한 해 두 해 시간이 흐르면서 그는 어떤 목표보다는 삶을 즐기는 법들을 배워가고 있다고 했다.
“처음엔 단순하게 조금은 삭막해진 정신세계를 순화시켜야겠다는 생각으로 내려왔던 것 같아요. 그런데 갈수록 자연과 친해지는 일이 너무 행복하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더라고요. 마음의 여유가 생겼다고 할까요. 최근엔 서예와 한시 공부도 함께하고 있는데, 제 인생 2막은 심신이 조금 더 풍요로운 삶이 될 것 같아 설렙니다.”
하지만 그는 귀농이나 귀촌이 보여지는 것만큼 쉬운 일은 아니라는 점은 강조했다. 특히 농사를 생업으로 하려는 사람이라면 한번 더 고민하고 검토하는 노력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말은 쉽게 했지만, 저도 여전히 농작물을 제대로 키워 수확하는 일은 쉽지 않습니다. 농약을 많이 쓰지 않다 보니 수확물이 형편없을 때도 있거든요. 고추의 경우에는 병충해에 약해 2~3년에 한 번은 농사를 망친다고 봐도 무방하죠. 그러니 무작정 귀농 혹은 귀촌을 하겠다고 뛰어드는 건 위험할 수 있습니다. 일단 자신이 정착할 지역을 고심해 선정하고, 어느 정도의 기간 동안은 임대로 살아보는 것이 좋습니다. 그런 다음 농사에 대한 자신감도 붙고 농촌 생활도 적응됐다 싶을 때 자신의 땅이나 집을 마련해도 늦지 않아요. 처음부터 욕심내기보다는 서서히 만들어가는 성취감을 느껴보시라 얘기해주고 싶네요.”
아침에 눈을 뜨면 오늘은 또 어떤 자연의 모습들이 자신을 반겨줄까 기대하며 흙으로 나선다는 김봉수 전 이사장. 그 어떤 거창한 계획을 세워둔 이들보다도 김 전 이사장의 내일이 더 행복하게 빛날 것으로 예상되는 건 어쩌면 당연지사다.
※ 본 기사는 한국금융신문에서 발행하는 '재테크 전문 매거진<웰스매니지먼트 6월호>'에 게재된 기사입니다.
김민정 기자 minj@fntime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