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탄핵인용]'영애' 박근혜 대통령은 어떻게 나락으로 떨어졌나](https://cfnimage.commutil.kr/phpwas/restmb_allidxmake.php?pp=002&idx=3&simg=20170310112359175213fnimage_01.jpg&nmt=18)
이로써 박근혜 대통령은 박정희 전 대통령의 딸로서, 또 대한민국 18대 대통령으로서 오랜 기간 생활했던 청와대 관저를 비워주게 됐다.
박 대통령은 6·25전쟁 중인 1952년 2월 2일 대구에서 육군 소령인 박정희 전 대통령과 교사 출신인 육영수 여사의 2녀1남 중 장녀로 태어났다. 아버지 박 전 대통령은 1961년 5·16쿠데타로 정권을 잡은 후 1963년 2월 제5대 대통령으로 취임했다. 이때부터 박 대통령은 18년간 영애로 청와대에서 어린 시절을 보냈다.
모범생이었던 박 대통령은 성심여중·고교 6년 내내 반에서 1등을 했고 서강대 전자공학과를 이공학부 수석으로 졸업했다. 그 후 1974년 프랑스로 유학을 떠났다가 같은해 광복절 경축행사장에서 모친 육영수 여사가 문세광에 의해 암살당하자 급히 귀국길에 올랐다. 그 후 22세부터 그는 퍼스트레이디 대행 역으로 모친의 빈자리를 채웠다.
그 후 1979년 10월26일 부친인 박 전 대통령마저 자신의 심복이던 김재규 중앙정보부장이 쏜 총에 맞아 서거했다. 그는 서울 신당동 사저로 돌아간 뒤 18년간 방송 등 언론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1997년 박 대통령은 이회창 한나라당 대선 후보 지지 선언과 함께 선거운동에 뛰어들었다. 하지만 이 후보의 패배로 정권이 교체되고 한나라당은 야당이 됐다.
그가 46세 된 1998년 4월, 박 대통령은 대구 달성 국회의원 보궐선거를 통해 정치권에 직접 뛰어들었다. 당시 야당인 한나라당 후보로 출마해 집권여당 후보를 꺾고 초선의원으로 국회에 입성하는 데 성공했다.
부총재 시절이던 2002년 2월 이회창 총재가 자신이 내놓은 '총재직 폐지, 당권·대권 분리'등 당 개혁안을 수용하지 않는다며 탈당, 한국미래연합을 창당했다. 2002년 5월에는 북한을 방문해 김정일과 단독 면담을 나누기도 했다.
그 후 이회창 총재가 개혁안을 대폭 수용하자 2002년 대선을 앞두고 한나라당으로 재합류했다.
그해 한나라당 이회창 후보가 여당 후보인 노무현 전 대통령에게 대선에서 패배하면서 박 대통령에게도 기회가 왔다. '차떼기 사건' 수사와 노무현 대통령 탄핵 역풍까지 겹치며 한나라당이 최악의 위기 상황에 빠진 것.
박 대통령은 2004년 4월 총선을 앞둔 3월 전당대회에서 당 대표로 선출돼 한나라당의 구원투수로 나섰다. 천막당사 설치, 천안 연수원 매각 등 승부수를 통해 121석을 얻어 개헌 저지선을 확보하는데 성공했다.
이후 대표 재임 2년3개월 동안 지방선거와 각종 재·보궐선거에서 열린우리당을 상대로 '40대 0'의 완성을 거두며 '선거의 여왕'이라는 타이틀을 얻었다. 2006년 서울 신촌로터리 지방선거 유세 도중 테러를 당해 오른쪽 뺨이 11cm 찢어졌다. 그럼에도 병원에서 "대전은요?"라고 선거 판세를 물어보는 등 자신의 몸보다 당을 먼저 생각한다는 이미지를 각인시키며 지지층을 결집시키는데 성공했다.
그 후 2007년 당내 대선후보 경선에 출마해 이명박 후보와 경쟁했지만 패하고 비주류로 밀려났다. 2008년 총선을 앞두고 이 대통령과 정면 충돌하며 공천에서 측근들이 대거 낙천되는 아픔을 겪었다.
그러자 정당 사상 유례없이 개인의 이름을 쓴 '친박연대'가 등장했다. 이때 박 대통령은 "나도 속고 국민도 속았다"며 이들을 간접 지원했다.
2011년 말 한나라당이 서울시장 보선 패배, 디도스 공격 파문으로 위기에 빠지자 박 대통령은 또다시 비상대책위원장으로 당 전면에 등장했다. 당명을 '새누리당'으로 바꾸며 개혁에 나섰고 2014년 4월 총선에서 민주통합당을 누르고 152석의 과반 확보에 성공했다.
이후 박대통령은 당내 대선후보 경선에서 84%의 압도적 지지율로 1위를 차지하며 새누리당 대선 후보가 됐다. 이후 같은 해 12월 대선에서 문재인 민주당후보를 누르고 18대 대통령으로 당선됐다. 청와대를 떠난지 34년만에 '영애'에서 대통령의 자격으로 청와대에 재입성하게 된 것. 한국 최초의 여성 대통령 탄생이자 최초의 부녀 대통령이었다.
그러나 박 대통령은 임기 4년차인 올해 오래 인연을 맺어온 최순실과 그 일가의 국정농단 사태에 휘말리면서 결국 불명예스러운 퇴진을 하게 됐다.
13년간의 어린 시절은 국가 최고지도자의 딸인 영애로, 20대의 절반은 퍼스트레이디 대행으로, 46~60세에는 새누리당 5선 의원으로, 61~64세는 대한민국 제18대 대통령으로 지낸 박 대통령의 인생유전이 참담한 결말로 끝나게 됐다.
김민경 기자 aromomo@fntime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