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 6월 산업경쟁력 관계장관회의에서 정부가 제시한 한국수출입은행(이하 수은)의 국제결제은행(BIS) 자기자본비율 목표치다. 지난 3월 기준 수은의 BIS 비율은 9.9%까지 떨어졌다. 10%선이 깨졌다는 점에서 수은은 자본건전성 논란의 한복판에 놓였다. 지난 5월말 KDB산업은행이 한국항공우주산업(KAI) 지분 5000억원을 수은에 현물 출자한 만큼 이달 중 발표될 예정인 2분기(4~6월) 기준 수은의 BIS 비율은 10%대는 회복할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일반 상업은행과 동일한 잣대로 수은의 BIS 비율을 적용하는 데는 논란거리도 있다. 수은과 같은 공적수출신용기관(ECA)을 운영하는 62개국 가운데 BIS 비율 규제를 적용하는 나라는 한국을 비롯 5곳에 그쳐서다. 대부분 수출신용기관들이 수신기능이 없어 예금자 보호를 위한 측면도 비껴가 있다. 수은 BIS 비율 규제도 국제통화기금(IMF) 시절부터 적용된 것이다. 또 BIS 비율을 높이려면 “‘위험한’ 정책금융 부문에 손을 대지 않으면 된다”는 본말이 전도된 결론에 이른다는 지적도 나온다.
일각에서는 최근 지속적인 수출부진과 보호무역주의 확대 분위기 속에 세계무역기구(WTO)가 허용하는 ‘사실상 보조금’을 지원할 수 있는 수은을 제대로 활용하지 못할까 우려하는 목소리도 있다.
15일 한국금융연구원의 ‘우리나라 공적수출신용기관 기능 재정립과 장기발전방향’ 보고서에 따르면, 수은은 정책금융기관으로서 민간 부문이 기피하는 위험을 인수한다는 점을 감안해 건전성 감독기준을 민간 금융기관과 차별화하여 적용할 필요가 있다는 정부 정책대응 방안이 제시됐다. 수은이 주로 생산기간이 길고 자금 유동성 문제가 생길 수 있는 조선·해운업, 해외건설 플랜트 수주 등에 대출과 보증지원을 해왔고 위험가중자산이 증가했기 때문이다.
수은의 자본적정성 IR 자료에 따르면, 2011년에 73조3981억원 규모였던 위험가중자산은 2012년(76조5524억원), 2013년(84조1169억원)에도 꾸준히 규모가 커졌고 2014년엔 100조원을 넘겼으며 지난해에는 118조4377억원까지 급증했다. BIS 비율을 높이려면 자기자본을 확충하거나 위험가중자산을 줄여야 하는 상황인 것이다.
하지만 수은이 건전성 지표를 개선하기 위해 일반 상업은행과 똑같은 행동을 하는 게 적절한 지 여부는 따져볼 필요가 있다. 최근 구조조정 여파로 시중은행의 여신 회수가 두드러지면서 금융당국은 정상 기업이 피해를 보지 않도록 ‘옥석가리기’를 해달라고 주문한 바 있다. 현대중공업은 지난 5월 말 SK E&S에서 액화천연가스(LNG) 운반선 2척을 수주했지만 은행권에서 선수금환급보증(RG) 발급을 꺼려 수주가 무산될 뻔 했다.
이때 주채권은행인 KEB하나은행과 수출진흥과 수주확대 차원에서 수은이 각각 한 척씩 RG를 내줬고 현대중공업은 신규 수주를 할 수 있었다. 선주가 계약시 조선사에 준 선수금을 지급보증하는 RG는 수은의 자본건전성을 악화시킨 주요인으로 꼽힌다.
19개월 연속 내림세를 보이는 수출 부진과 글로벌 무역경쟁에서 ECA인 수은의 역할은 적지 않다. ECA는 WTO의 금지보조금 대상에서 제외되어 유일하게 중장기 수출금융을 제공할 수 있어서다.
주요국들은 공적수출신용의 금리, 상환기간 등 금융조건을 규정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수출신용협약’을 전제로 ECA를 통해 경쟁적으로 수출을 지원하고 있다. 국제적으로 협의된 규칙(rule) 틀 안에서 자국에 보조금을 지원하는 셈이다. 미국은 일몰됐던 자국의 수은(USEXIM) 면허를 지난해 말 재인가 한 바 있다. 자칫 자국만 수은을 없앴다가 국제무역 경쟁에서 불리할 수 있다는 전략적 판단이 반영된 것으로 풀이된다. 우리나라 수은과 체계가 유사한 일본의 국제협력은행(JBIC)의 경우 금융청에서 BIS 비율 규제를 감독받지 않는다.
물론 조선·해운업 여신 부실로 불거진 수은의 수익성 평가, 리스크 관리는 지속적으로 해결해야 할 과제로 꼽힌다. 국회예산정책처의 ‘2015 회계연도 공공기관 결산평가’ 보고서에 따르면, 수은은 산업 익스포저(위험노출액) 관리 취약, 지급보증 심사 때 사업성 평가 미비 등의 요인으로 조선업체들을 구조조정에 이르게 했고 선도적으로 추가 부실을 막지 못했다는 비판을 받고 있어서다.
기획재정부 관계자는 “우리나라 수은은 재정이 지원하는 비중이 10% 안팎 수준이고 주로 해외차입을 통해 경영하므로 BIS 비율 적정성 규제 측면이 있다”며 “앞으로 구조조정 상황이 악화될 경우에 대비해 건전성 측면을 지켜봐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정선은 기자 bravebambi@fntime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