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성수1구역 '바른 조합을 위한 모임'이 대의원들에게 보낸 편지. /사진제공=바른 조합을 위한 모임
5일 공개된 고발장에는 조합장이 이사회에서 확정한 마감재 기준 일부를 단독으로 변경해 대의원회를 통과시켰으며, 이 과정에서 특정 업체와의 수의계약을 유도했다는 내용이 담겼다. 이러한 변경 내용은 입찰안내서에도 그대로 반영됐다. 당초 이사회에서 확정했던 마감재는 세라믹이었지만, 비밀리에 외산 엔지니어드스톤으로 교체됐다는 설명이다.
일반적으로 두 자재는 동일 면적 기준으로 가격 차이가 두 배 이상 나는 것으로 알려져 있으며, 품질 면에서도 차이가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조합의 공사비 예정가격은 수정되지 않았다. 실제 적용 물량을 고려하면 조합장이 받을 수 있는 불법 이익은 수십억 원에서, 많게는 수백억 원대까지 불어날 수 있다는 분석도 제기된다.
문제는 조합장이 마감재를 바꿨다고 해서 불법 이익을 혼자 챙길 수 없다는 점이다. 마감재 지정과 선정은 조합 권한이지만, 실제 설치 비용은 시공사 공사비에 포함되기 때문에 시공사의 협조 없이는 금전적 이익으로 이어질 수 없다. 이 때문에 조합과 특정 시공사가 사전에 결탁했다는 의혹이 더욱 힘을 얻고 있다는 전언이다.
실제로 성수1구역에 힘을 쏟던 3개 시공사 중 2개 회사는 입찰지침의 공정성 문제를 이유로 조합에 수정 공문을 보내고, 현장설명회에 불참했다. 이후 조합원들은 경쟁입찰이 성사될 수 있도록 입찰지침 수정을 요구하며 대의원회 재개최 발의서를 제출했다.
그러나 이 과정에서도 조합장과 홍보업체 대표가 홍보요원 수십 명을 동원해 새마을금고 지하층과 조합 사무실에서 대의원들을 상대로 집중 전화를 걸어 회유 작업을 벌였다는 의혹과, GS건설 직원들이 과일 세트를 들고 대의원들을 접촉해 서면결의서를 부결 처리하라고 노골적으로 요구했다는 의혹까지 불거지며 논란은 더욱 확산됐다.
조합원들의 불신과 반발 역시 확산되고 있다. 한 조합원은 “조합장이 특정 시공사를 밀어붙이기 위해 입찰지침까지 왜곡했다면, 이번 대의원회에서 바로잡지 못하는 순간 대의원들 역시 공범이 될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 같은 반발은 업계 관계자들의 비판으로도 이어졌다. 한 관계자는 “성수1구역은 금품과 접대가 난무하던 과거 재개발사업의 구태를 보여준다”며 “관할 구청은 사실상 손을 놓고 있으며, 서울시 차원의 개입 없이는 공정성을 회복하기 어려워 보인다”고 덧붙였다.
또 다른 관계자는 “조합장이 영세 업체로부터조차 수억 원을 받았다면, 시공사와의 거래에서는 훨씬 큰 불법 자금이 오갔다는 신호일 수 있다”며 “사실로 드러날 경우 사업 자체가 원점으로 돌아갈 가능성이 크다”고 경고했다.
현 조합장에 대한 고발 외에도 가칭 '바른 조합을 위한 모임'은 조합원들에게 보내는 성명서를 통해 “조합장의 무능과 조합의 여러 문제점으로 인해 서울시와 구청에서 건축심의가 반려된 상황”이라며, "황 모 조합장은 당선 초기부터 골프 접대와 향응을 제공받는 맛에 빠져 조합일은 뒷전이고, GS건설 홍보직원과 애인처럼 붙어 다니며 황대대접을 받고 사리사욕에 눈이 멀었다"고 주장했다.
또한 "철거업체와 결탁해 철거업체 직원이 이사 및 대의원들을 가가호호 방문해 선물 공세를 하는 사실이 포착돼 고발 예정"이라며, "전자 입찰이라 비리가 없다고 하지만 입찰 전 특정 업체를 기준으로 배점표를 만들고 동정업체 들러리를 세워 이사회의와 대의원회의에 안건을 통과시켜 사실상 특정업체가 선정되게 하는 시공사, 철거, 지장물, 기반시설, 석면철거 등 모든 이권을 선점하기 위한 업체 선정을 중단하라"고 경고했다.
성수1구역은 이미 특정 시공사와의 결탁 의혹과 불공정 지침 논란으로 내홍을 겪어왔다. 여기에 조합장 고발까지 겹치면서 사업 추진은 한층 불투명해졌다.
권혁기 한국금융신문 기자 khk0204@fntime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