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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의석의 단상] 고군분투 IBK 수장, 장민영의 지난한 100m

김의석 기자

eskim@fntimes.com

기사입력 : 2026-02-13 05:00 최종수정 : 2026-05-18 20:40

노조 저지에 막혀 본점 100m 앞 멈춰 선 리더십
시중은행과 경쟁하는 IBK, 규제는 공기업 잣대
당국 설득 나선 행장… 타협 넘어 ‘제도 재설계’로

[김의석의 단상] 고군분투 IBK 수장, 장민영의 지난한 100m
[한국금융신문 김의석 기자] 2월 9일 아침, 서울 중구 을지로2가. 차가운 공기를 가르며 본점 회전문으로 향하던 장민영닫기장민영기사 모아보기 IBK기업은행장의 발걸음이 다시 멈춰 섰다. 노조 저지로 본점 출근 시도가 무산된 두 번째 날이다.

지난 1월 23일 취임한 장 행장은 임기 22일 차를 맞았지만, 여전히 본점 집무실 문턱을 넘지 못하고 있다. 대신 본점에서 불과 100m 떨어진 임시 사무공간에서 업무를 이어가고 있다. 이 100m의 물리적 거리는 지금 기업은행이 마주한 노사 갈등과 구조적 모순의 깊이를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그가 넘어야 할 산은 노조 농성만이 아니다. 수십 년간 공공기관을 옥죄어 온 낡은 제도의 벽, 그리고 그 너머에 놓인 ‘국책은행의 역설’이다.

1989년 입행 이후 30여 년을 쉼 없이 달려온 내부 출신 행장에게 이 100m는 여정의 마지막 관문과도 같다. 조직을 누구보다 잘 알면서도 정작 책상 앞에는 앉지 못하는 이 아이러니는 단순한 노사 갈등을 넘어, 급변하는 금융 환경과 고착된 공공기관 규제 사이의 간극이 빚어낸 구조적 모순을 극명하게 보여준다.

장민영 신임 IBK기업은행장은 1989년 입행 이후 리스크관리그룹장, IBK자산운용 대표이사 등을 거쳐 2026년 기업은행장으로 선임되었다.

장민영 신임 IBK기업은행장은 1989년 입행 이후 리스크관리그룹장, IBK자산운용 대표이사 등을 거쳐 2026년 기업은행장으로 선임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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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조의 주장은 감정이 아니라 숫자에 기반한다. 지난해 말 기준 IBK기업은행의 미사용 보상휴가는 44만여 일, 미지급 시간외수당은 약 780억 원 규모로 추산된다. 총액인건비제 아래 직원들은 늘어나는 업무를 감당하기 위해 초과근무를 이어가며 휴가를 쌓아왔지만, 인력 부족으로 정작 사용할 기회조차 얻지 못했다. “국가가 임금을 체불하고 있다”는 노조의 규탄을 단순한 선동으로만 치부하기 어려운 이유다.

문제의 뿌리는 총액인건비제라는 경직된 틀에 있다. 공공기관의 방만 경영을 막기 위해 도입된 제도지만, 시중은행과 경쟁해야 하는 IBK기업은행에는 사실상 족쇄로 작용해 왔다. 중소기업 대출 확대와 위기 대응 자금 집행 등 정책금융의 역할은 커지고 있지만, 이를 뒷받침할 인건비 구조는 제자리다. 업무는 늘고 보상은 묶인 환경에서 인재 중심의 금융산업이 제대로 작동하기는 어렵다.

IBK기업은행은 ‘상장사이자 공공기관’이라는 이중적 지위를 지닌다. 시장에서는 실적과 주가로 평가받으며 주주에게 배당을 약속하지만, 내부 운영은 공기업 기준에 묶여 있다. 성과는 시장에서 요구받지만 보상은 제도에 갇힌 구조 속에서 인사 운영의 활력은 떨어지고 핵심 인재 이탈 우려만 커지고 있다.
이는 결국 정책 수행력 약화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 중소기업의 버팀목이 돼야 할 국책은행의 동력이 흔들리면, 경제 위기 국면에서의 대응 능력 역시 약화된다. 제도의 불합리성이 사회적 비용으로 전이되는 순간이다.

중소기업 지원이라는 정책적 본업 수행과 시장 경쟁을 동시에 감당하고 있으나, 경직된 규제(총액 인건비·정원 통제)로 인해 조직 내 인력 부족 및 보상 미흡 문제가 고질화되고 있다.

중소기업 지원이라는 정책적 본업 수행과 시장 경쟁을 동시에 감당하고 있으나, 경직된 규제(총액 인건비·정원 통제)로 인해 조직 내 인력 부족 및 보상 미흡 문제가 고질화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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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민영 행장은 이 난국을 돌파하기 위해 스스로 ‘제도 개편의 선봉’을 자처했다. 임시 공간에 머물면서도 현장을 챙기며 해법 마련에 분주하다. 최근 이억원닫기이억원기사 모아보기 금융위원장의 지방 방문에 동행하고, 공식·비공식 석상에서 정책 당국을 설득하는 행보가 이를 뒷받침한다. 이는 단순한 갈등 봉합용 제스처가 아니다. 방대한 데이터와 논리를 토대로 총액인건비제의 유연화와 합리적 조정을 요구하며 제도의 근본적 수술을 촉구하고 있는 것이다. 봉합이 아닌 체질 개선, 즉 정책금융 운영 구조의 재설계다.

만약 이 시도가 결실을 본다면 파장은 금융공기업 전반으로 확산될 가능성이 크다. 이미 기업은행 노조에 지지 의사를 밝힌 한국은행을 비롯해 산업은행·수출입은행 등 동일한 틀 안에 있는 주요 기관들에 적지 않은 시사점을 남길 것이기 때문이다. 나아가 ‘상장형 공공기관’에 대한 별도 분류 체계를 마련하고 경영 자율권을 확대해야 한다는 논의 역시 탄력을 받을 것으로 보인다.

정부의 기류도 변화의 조짐을 보인다. 최근 대통령 보고 자료에도 제도적 경직성에 대한 문제 제기가 담긴 것으로 전해진다. 미지급 수당의 합리적 처리와 초과근무 관행 개선은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시대적 과제다.

결국 리더십의 본질은 구성원에게 ‘노동의 가치가 존중받고 있다’는 신뢰를 심어주는 데 있다. 공공성과 경쟁력은 대립하는 개념이 아니다. 이를 조화시키는 일은 현장에 맞는 자율성과 책임을 부여하는 데서 출발한다.

설 명절이 다가온다. 밤낮없이 현장을 지켜온 IBK기업은행 임직원들이 해묵은 갈등의 실타래를 풀고 지친 마음을 덜 수 있기를 바란다. 장민영 행장이 마침내 본점 정문을 당당히 통과하는 날, 그가 걸어온 100m는 단순한 출근길을 넘어 대한민국 공공금융이 한 단계 도약했음을 상징하는 이정표가 될 것이다. 낡은 제도의 그늘을 걷어내고 국책은행의 역할을 새롭게 정립하는 ‘상생의 봄’을 기대한다.

김의석 한국금융신문 기자 eskim@fntime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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