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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 칼럼] 해묵은 유통업법이 만든 침묵의 승자

박슬기 기자

seulgi@fntimes.com

기사입력 : 2026-01-19 05:00 최종수정 : 2026-01-19 08:19

기울어진 유통업법이 쿠팡 키운 꼴
급변하는 환경 맞춘 법 개정 시급

▲ 박슬기 생활경제부 차장

▲ 박슬기 생활경제부 차장

[한국금융신문 박슬기 기자] 해가 바뀐 지금, 유통업계의 화두는 여전히 쿠팡이다. 다만 쿠팡을 둘러싼 대화의 결은 이전과는 조금 달라졌다.

지난해까지만 해도 관심의 초점은 개인정보 유출 사고 이후 쿠팡이 어떤 타격을 입을지, 김범석닫기김범석기사 모아보기 의장이 국회 청문회에 출석할지 여부에 맞춰져 있었다.

하지만 최근 들어서는 분위기가 바뀌었다.

쿠팡의 책임 여부를 넘어 ‘이 상황을 만든 구조적 원인이 무엇인가’라는 근본적인 질문이 오가기 시작했다. 이 주제를 놓고 이야기를 이어가다보면 결국 하나의 결론에 닿는다. 바로 수년째 손대지 못한 해묵은 유통업법이다.

최근 만난 유통업계 한 관계자는 “쿠팡의 독주와 그에 따른 무소불위의 태도 역시 결국 제도가 만든 결과”라고 말했다. 3370만 명의 개인정보 유출이라는 초유의 사태를 두고 기업의 책임을 묻는 와중에 제도 이야기가 먼저 나온 이유다.

현행 유통산업발전법은 2012년부터 대형마트에 대해 월 2회 의무 휴업과 자정부터 오전 10시까지 영업 제한을 적용하고 있다. 오프라인 영업이 끝난 이후에는 온라인 배송 역시 금지된다. 전통시장과 골목상권 보호를 명분으로 도입된 규제다.

문제는 이 법이 시행된 지 14년이 지나가고 있는 점이다. 그 사이 소비 환경은 오프라인에서 온라인으로 급격히 변화했고, 새벽배송과 당일배송은 일상이 됐다. 그럼에도 법은 14년 전 그것에서 나아가지 못한 상태다.

지난해 11월 일몰을 앞두고 국회는 제도 전반에 대한 재검토 대신, 일몰 기한을 2029년까지 4년 연장하는 선택을 했다. 이대로라면 대형마트 규제는 20년에 가까운 ‘장기 규제’가 된다.

해묵은 유통업법의 결과는 분명했다.

대형마트는 법의 테두리 안에서 움직일 수밖에 없었고, 온라인 전환과 배송 경쟁에서는 출발선에조차 서지 못했다. 산업과 소비 트렌드가 빠르게 바뀌는 동안, 오프라인 유통은 규제에 발이 묶였다.

법이 따라오지 못하는 사이 이커머스는 급속히 성장했다. 유통업법이 대형마트의 발목을 잡는 동안, 온라인 플랫폼은 사실상 무주공산에 가까운 시장에서 몸집을 키웠다. 쿠팡의 성장은 단순히 한 기업의 전략적 성공만으로 설명하기 어렵다. 제도가 만든 비대칭 경쟁 구조가 쿠팡의 성장을 뒷받침했다.

다만 이번 개인정보 유출 사태에 대한 책임은 분명히 쿠팡에 있다. 개인정보 보호를 소홀히 했고 사회적 책임에 둔감했다면 그에 따른 비판과 제재는 피할 수 없다.

이는 쿠팡뿐만 아니라 어떤 기업에도 동일하게 적용되는 원칙이다. 그런데 기업의 책임만을 따져서는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다. 지금의 시장질서를 만든 근본 원인까지 짚지 않으면 비슷한 사태는 반복될 수밖에 없다.

그 원인 중 하나가 유통업법이라는 데에도 집중해야 한다. 유통업계를 둘러싼 기울어진 운동장은 현재 진행형이다. 대형마트는 영업시간과 휴무일, 배송까지 법으로 제한받는 반면, 온라인 플랫폼에는 그와 유사한 규제를 찾기 어렵다. 같은 유통시장에서 경쟁하지만 출발선이 다른 셈이다. 오프라인 유통은 규제라는 울타리 안에 묶여 있고, 이커머스는 제도 밖에서 몸집을 키웠다. 공정한 경쟁을 이야기하기 어려운 구조다.

작금의 비대칭 구조는 제도가 소비자와 시장을 특정 방향으로 밀어버린 결과다. 대형마트가 새벽배송과 즉시배송 경쟁에 뒤처진 것은 전략의 실패라기보다 애초에 선택권조차 주어지지 않은 영향이 크다. 규제는 경쟁을 제한했고, 그 틈에서 온라인 플랫폼은 사실상 독주했다.

이는 수치로도 확인된다. 국가데이터처에 따르면 지난해 1~3분기 대형마트의 소매판매액은 27조4500억 원으로 집계됐다. 매장 면적 3000㎡ 이상 점포의 판매액을 합산한 수치로, 이마트·롯데마트·홈플러스 등 국내 주요 대형마트가 모두 포함된다. 반면 같은 기간 쿠팡의 매출은 36조 원을 넘어섰다. 국내 대형마트 전체를 합친 규모보다도 쿠팡 한 곳의 매출이 10조 원 가까이 많은 셈이다.

2022년만 해도 상황이 이 정도까진 아니었다.

당시 대형마트 매출은 약 35조 원으로, 쿠팡(약 27조 원)을 8조 원 앞섰다. 그러나 2024년을 기점으로 양측의 위치는 뒤바뀌었고, 이후 격차는 더욱 빠르게 벌어지고 있다.

그럼에도 정치권은 줄곧 이 문제를 외면해왔다. 유통업법은 수차례 개정 필요성이 제기됐지만 이해관계자들의 충돌 속에서 번번이 미뤄졌다. 그에 따른 결과는 구조 개편이 아닌 일몰 연장으로 나타났다. 변화하는 산업 환경에 맞춘 제도 개선 대신 ‘현상 유지’라는 가장 쉬운 길을 택한 셈이다.

당연히 대가가 뒤따랐다. 규제의 사각지대에서 성장한 플랫폼은 시장 지배력을 키웠고, 그에 비례해 사회적 책임 논란도 커지고 있다. 기업의 문제로만 치부하기에는 제도가 남긴 흔적이 제법 크다. 유통업법이 만든 침묵의 승자는 쿠팡일지 모르지만, 그 대가는 결국 소비자와 시장 전체가 떠안게 됐다.

지금 필요한 것은 특정 기업을 겨냥한 규제가 아니다. 같은 시장에서 경쟁하는 사업자들이 최소한 같은 출발선에 설 수 있도록 제도를 재설계하는 일이다. 누군가의 발목을 잡으면서, 누군가는 아무 제약 없이 달리게 해서는 공정한 경쟁도, 책임 있는 성장도 기대하기 어렵다. 해묵은 유통업법이 만든 침묵의 승자를 더 이상 방치한다면, 다음 논란 역시 기업만의 문제가 아닌 정책의 부작용으로 되돌아올 것이다. 이제 책임을 묻는 것을 넘어, 원인을 바로잡을 때다.

박슬기 한국금융신문 기자 seulgi@fntime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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