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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9년간 대통령 8명 경호한 박진이, 회고록 ‘대통령의 등 뒤 1미터’ 출간

이창선 기자

lcs2004@fntimes.com

기사입력 : 2026-08-04 15:46

모스크바·평양·테헤란 등 국내외 경호 현장 기록

29년간 대통령 8명 경호한 박진이, 회고록 ‘대통령의 등 뒤 1미터’ 출간
[한국금융신문 이창선 기자] “경호의 본질은 희생보다 위험을 막는 예방과 시스템”

29년 9개월 동안 역대 대통령 8명의 경호 현장을 지킨 박진이 전 청와대 경호관이 자신의 경험을 담은 책 《대통령의 등 뒤 1미터》를 펴냈다.

책은 1990년 청와대 경호실에 입직한 저자가 2019년까지 대통령 경호 업무를 수행하며 겪은 국내외 현장과 퇴직 후 IT·인공지능(AI), 철도 안전, 공공감사 분야에서 활동한 경험을 담았다.

저자는 대통령 경호를 총격이나 돌발 상황이 발생했을 때 몸을 던지는 일로만 설명하지 않는다. 위험 요소를 사전에 찾아 제거하고, 대통령의 이동 동선과 현장 상황을 반복적으로 점검하며, 예상하지 못한 상황에 대비한 대체 계획을 마련하는 것이 경호의 핵심이라는 관점을 제시한다.

저자는 책에서 “진짜 경호는 총알을 막는 것이 아니라 총성이 울리지 않게 만드는 것”이라고 강조한다. 위기가 발생한 뒤 대응하는 능력보다 위기가 발생하지 않는 환경과 시스템을 설계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의미다.

공학도에서 대통령 경호관으로

기계공학을 전공한 저자는 대기업에 근무하던 중 대통령 경호관이라는 새로운 길을 선택했다. 무도 고단자와 체육 특기자가 다수였던 경호 조직에서 저자는 체력이나 무술 실력만으로 경쟁하기보다 공학적 사고와 분석 능력을 자신의 강점으로 삼았다.

그가 경호 업무를 수행하며 끊임없이 던진 질문은 ‘위협이 발생했을 때 얼마나 빠르게 대응할 것인가’가 아니라 ‘어떻게 하면 위협이 발생하는 상황 자체를 막을 수 있는가’였다.

이러한 문제의식은 이후 30년 가까운 경호 생활을 관통하는 원칙이 됐다. 현장을 세밀하게 분석하고 위험 가능성을 미리 발견하는 예방 중심의 접근법이다.

책은 저자가 공학도의 길을 떠나 경호관이 되기로 결심한 과정부터 훈련소 생활, 초기 경호 업무에 적응하는 모습 등을 소개한다. 안정적인 직장을 떠나 새로운 직업에 도전한 개인적인 선택과 경호관으로서 갖춰야 했던 책임감도 함께 다룬다.

모스크바에서 평양까지…역사적 현장 뒤의 기록

책에는 소련 방문과 북방외교, 광주 일정, 쿠웨이트와 평양·테헤란 방문 등 한국 현대사의 주요 장면을 경호관의 시선으로 바라본 기록이 담겼다.

대통령의 국내외 일정은 언론을 통해 공개되지만, 경호관이 사전에 어떤 준비를 했고 현장에서 어떤 위험을 점검했는지는 외부에 드러나는 경우가 많지 않다.

저자는 대통령보다 먼저 현장에 도착해 출입구와 이동 경로를 확인하고, 군중의 움직임과 돌발 상황 발생 가능성을 분석했던 과정을 전한다. 대통령이 도착한 이후에도 공식 행사나 회담보다 주변 인물과 공간, 비상 이동 경로를 살펴야 했던 경호관의 역할을 설명한다.

1990년 소련 방문 당시에는 선발대로 현지에 도착해 대통령이 이동할 동선과 위험 요소를 점검했다. 대통령 전용기 도착 직전 소련 경호원들과 한국 기자단 사이에서 발생한 충돌을 중재한 과정도 책에 담았다.

저자는 대통령 전용기에서 대통령 내외가 모습을 드러내고 기자들이 역사적인 장면을 촬영할 수 있었던 배경에는 현지 관계자들과 사전에 쌓은 신뢰가 있었다고 회고한다.

평양 방문 당시에는 대규모 군중과 제한된 이동 환경 속에서 대통령의 안전을 확보했던 경험을 소개한다. 쿠웨이트와 테헤란을 비롯한 해외 경호 현장에서는 현지 문화와 정치적 상황, 경호 체계의 차이 등에 대응했던 과정이 등장한다.

대통령 가까이에서 바라본 ‘결정의 무게’

책은 특정 대통령의 정치적 성과나 개인적인 평가보다 대통령이라는 자리가 지닌 책임과 의사결정의 무게에 초점을 맞춘다.

저자는 대통령의 가장 가까운 거리에서 권력의 화려함보다 작은 판단 하나가 국가와 국민에게 미칠 수 있는 영향을 목격했다고 말한다. 대통령의 움직임과 일정 하나에도 여러 기관과 인력이 연결되고, 예상하지 못한 변수가 국가적 문제로 이어질 수 있다는 것이다.

이 과정에서 저자는 “권력을 본 것이 아니라 결정이 내려지는 순간의 무게를 보았다”고 회고한다.

대통령과 경호관의 관계를 보여주는 개인적인 일화도 소개된다. 한 대통령은 청와대 관저에서 열린 자리에서 경호관들을 향해 외부의 비바람 속에서도 등 뒤를 지켜주는 사람들이 있어 든든했다는 취지로 감사의 뜻을 전했다.

저자는 이 경험을 대통령과 경호관이라는 직무상 관계를 넘어 서로의 책임과 노고를 이해하게 된 순간으로 기억한다.

제복 벗은 뒤 IT·AI와 철도 안전 분야로책의 후반부는 저자가 청와대를 떠난 이후의 삶을 다룬다. 저자는 민간 IT 기업에서 근무하며 기술과 시장의 변화를 경험했고, 이후 철도 운영기관 SR의 상임감사로 활동했다.

대통령 한 사람의 신변을 보호하던 경호 경험은 조직과 시스템의 위험을 예방하는 업무로 확장됐다.

저자는 민간 기업에 진출한 뒤 대통령 경호관이라는 경력이 더 이상 업무 성과를 보장해주지 않는다는 현실을 마주했다고 전한다. 현장에서 고객을 만나고 회사의 기술을 설명하면서 새로운 조직과 시장의 문법을 배워야 했다.

IT와 AI 분야에서는 기술 자체의 성능뿐 아니라 사람의 안전과 필요를 고려해야 한다는 점을 강조한다. 기술에 대한 자부심이 시장과 이용자의 눈높이를 가릴 수 있다는 경험도 소개한다.

SR 상임감사로 재직하면서는 연간 2400만명이 이용하는 철도 시스템의 안전과 조직 운영을 살폈다. 저자는 감사 업무 역시 문제가 발생한 뒤 책임자를 찾아내는 것에 그쳐서는 안 되며, 조직이 위험을 사전에 발견하고 개선하도록 돕는 역할이 중요하다고 설명한다.

공공감사 분야에서 디지털 기술과 AI를 활용하고, 국제반부패아카데미(IACA)와 연계한 교육을 추진한 경험도 담았다. 대통령 경호 현장에서 익힌 예방과 점검의 원칙을 공공기관의 청렴·안전 관리에 적용한 것이다.

경호에서 조직 관리까지 이어진 ‘예방의 원칙’

《대통령의 등 뒤 1미터》는 총 3부로 구성됐다.

제1부 ‘도전’에서는 공학도였던 저자가 대기업을 떠나 대통령 경호관에 지원하고 훈련을 거쳐 경호 업무에 적응하는 과정을 다룬다.

제2부 ‘사명’에서는 북방외교와 평양 방문, 광주·쿠웨이트·테헤란 등 국내외 경호 현장에서 경험한 사건을 소개한다.

제3부 ‘확장’에서는 제복을 벗은 뒤 IT·AI 기업과 철도 운영기관, 공공감사 분야에서 활동하며 경호의 원칙을 조직과 사회의 안전으로 넓혀가는 과정을 담았다.

책을 관통하는 핵심 개념은 ‘예방’이다. 문제가 발생한 뒤 수습하는 것보다 위험을 미리 발견하고, 개인의 능력에 의존하기보다 시스템을 구축하며, 한 가지 계획만 믿지 않고 대체 방안을 준비해야 한다는 것이다.

저자는 이러한 원칙이 대통령 경호에만 적용되는 것은 아니라고 말한다. 기업과 공공기관의 리더, 조직의 안전과 내부통제를 담당하는 사람, 가족과 공동체를 책임지는 개인에게도 필요한 태도라는 설명이다.

책 제목에 포함된 ‘1미터’는 대통령과 경호관 사이의 실제 거리인 동시에 자신의 자리에서 책임을 감당하는 사람의 위치를 상징한다.

저자는 대통령의 앞에 서는 사람뿐 아니라 그 사람이 안전하게 역할을 수행할 수 있도록 뒤에서 시스템을 지키는 사람도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박진이는 약 30년간 대통령 경호 업무를 수행했으며, 현재 공공기관 상임감사로 재직하고 있다.

염상국 전 대통령경호실장, 김세호 전 건설교통부 차관·철도청장, 이종국 전 SR 대표이사, 배우 박상원 등이 추천사를 썼다.

씽크스마트가 펴낸 《대통령의 등 뒤 1미터》는 총 204쪽이며 가격은 1만6800원이다.

이창선 한국금융신문 기자 lcs2004@fntime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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