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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발 기간 절반”에 취한 사이 게이머들은...[기자수첩]

김재훈 기자

rlqm93@fntimes.com

기사입력 : 2026-08-10 00:00

AI발 양산의 시대…신규 IP 성공은 감소
효율성에 머물지 말고 ‘재미ʼ 재투자해야
“AI 덕분에 개발 기간이 반으로 줄었습니다.”

▲ 김재훈 기자

▲ 김재훈 기자

[한국금융신문 김재훈 기자] 최근 게임업계 취재 현장에서 가장 흔하게 듣는 말이다. 인공지능(AI) 기술이 빠르게 이식되면서 그래픽 에셋 생성부터 코드 작성, QA, 번역까지 개발 공정 전반 효율성이 비약적으로 상승했다.

주요 게임사들이 3D 모델링이나 보이스 생성용 AI 솔루션을 구축하면서 개발 비용과 시간은 획기적으로 줄었다. 그 결과 하루가 멀다고 시장에 새로운 IP(지식재산권) 게임들이 쏟아져 나온다. 그야말로 ‘AI발(發) 양산의 시대’다.

하지만 역설적이게도 시장에 출시되는 신규 IP 게임 양은 증가했지만, 시장 반응은 냉담하다. 출시되는 게임 수에 비해 유저들 눈길을 사로잡는 신규 IP 성공작은 가뭄에 콩 나듯 드문 게 현실이다.

시장 조사 기관 뉴주(Newzoo) 보고서에 따르면 글로벌 PC·콘솔 게이머 전체 플레이 시간 절반 이상이 평균 연식 6년을 넘긴 상위 20개 장수 라이브 게임에 묶여 있다.

모바일 게임 시장도 마찬가지다. 모바일 전문 분석 업체 센서타워 등 앱 분석 플랫폼 데이터에 따르면 글로벌 모바일 매출 상위권은 왕자영요, 로블록스 등 출시 5~10년을 넘긴 기존 흥행작과 검증된 원작 PC IP 기반 리메이크작들이 견고한 장벽을 치고 있다.

취재 현장에서 만난 한 개발자는 스팀 연간 출시 게임 수가 AI 도입 이전 연간 1만4000개 수준에서 도입 이후 6만 건에 이르러 매년 최고치를 경신하고 있다고 전하면서도, “이용자들의 플레이 타임이나 매출 순위 등에서는 상위 20개 중 60% 이상을 기존 유명 IP를 활용한 시리즈나 리마스터작이 독식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 현상이 시사하는 바는 명확하다. AI를 통한 ‘개발 효율성’이 곧 ‘게임의 성공’을 보장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AI로 시장에 유통되는 게임이 증가한 만큼 경쟁작 증가로 신규 IP 흥행이 더 어려워졌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이를 반대로 생각해 보면 신규 IP라도 비슷하고 익숙한 게임들만 출시된다는 뜻이다. 쏟아지는 비슷비슷한 신작 속에서 게이머들이 느끼는 피로감만 커졌을 뿐이다.

게임업계 일각에서는 숏폼 콘텐츠(릴스, 숏츠 등)에 게이머들을 빼앗기고 있다며 환경 탓을 하기도 한다. 그러나 본질은 단순하다. 숏폼보다 더 몰입감 있고 확실한 ‘재미’를 제공하면 유저는 돌아온다.

AI를 통해 제작 속도와 비용 절감에만 열을 올릴 것이 아니라, 게임 본연의 가치인 ‘어떻게 하면 유저를 즐겁게 만들 것인가’에 대한 고민이 선행돼야 하는 이유다.

그렇다면 AI는 게임의 재미라는 본질에 어떻게 기여할 수 있을까. 단순히 사내 개발 도구로만 AI를 다루는 수준을 넘어 유저에게 새로운 인게임 경험을 제공하는 방향으로 시선을 돌린 사례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결국, AI는 수단일 뿐이다. 흥행을 결정짓는 열쇠는 여전히 인간 창작자 영역과 고유한 감성에 남아 있다는 사실을 명심해야 한다. AI로 아낀 시간과 비용은 치밀한 스토리 구축, 독창적 세계관 설계, 정교한 밸런싱 등 ‘본질적 재미’를 깊게 파고드는 데 재투자돼야 한다.

대표적으로 크래프톤 사례가 있다. 크래프톤은 AI를 단순한 생산성 도구가 아닌 새로운 이용자 경험을 제공하는 인게임 콘텐츠로 녹여내는 시도를 이어가고 있다. 엔비디아와 협력해 발표한 AI NPC 기술 ‘CPC(Co-Playable Character)’나 배틀그라운드 AI 동료 ‘펍지 앨라이(PUBG Ally)’가 좋은 예다.

게임 특화 소형 언어 모델(SLM)과 딥러닝을 결합해, 고정된 스크립트대로 움직이는 기존 NPC를 넘어 플레이어와 실시간 음성으로 소통하고 유연하게 협력하는 AI 팀원을 선보였다. 이를 통해 이용자는 인간 플레이어뿐만 아니라 AI와 함께 팀을 이루거나 경쟁까지 가능하다.

김창한 크래프톤 대표는 최근 실적발표 컨퍼런스콜에서 “앨라이가 재미 요소와 품질 측면에서 긍정적 반응을 얻어 고무적”이라며 “새 기술인 만큼 프로덕트 가능성이 확인됐고 이용자 반응과 피드백을 통해 업그레이드된 버전을 개발 중”이라고 밝혔다.

이어 “이를 서비스 프로덕트화했을 때 새로운 재미를 추구할 것인지, 나아가 수익화까지 가능할지 내부 검토 중”이라고 덧붙였다.

또한, 크래프톤 산하 렐루게임즈 신작 ‘미메시스’처럼 유저 행동과 음성을 학습해 모방하는 딥러닝 NPC로 긴장감을 선사하거나, 인생 시뮬레이션 게임 ‘인조이(inZOI)’에서 유저가 업로드한 이미지를 즉시 3D 오브젝트로 변환하는 기능을 도입한 것도 AI가 단순 절감을 넘어 ‘새로운 재미 요소’가 된 대표 사례다.

AI 기술은 게이머 마음을 사로잡는 마법의 지팡이가 아니다. 기술이라는 무기를 쥐었을 때 비로소 창작의 깊이를 더해야 한다. 속도전과 비용 절감이라는 늪에서 벗어나 게임 본질로 돌아갈 때, 시장을 뒤흔들 진짜 새로운 IP가 탄생할 수 있다.

김재훈 한국금융신문 기자 rlqm93@fntime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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