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개 은행은 11일 저녁, 창립 이래 최초의 공동 집회를 통해 정부의 기관이전 시도를 정면으로 비판하고 나섰다.
지역균형발전과 부산 금융중심지 육성이라는 명분이 있는 반면, 기업·금융회사·전문인력이 수도권에 집중된 상황에서 정책금융기관까지 물리적으로 분산할 경우 금융 경쟁력과 업무 효율성이 떨어질 수 있다는 우려도 커지고 있다.
“정책금융 심장 쪼개기” 초유의 국책은행 3사 공동집회
산업은행·기업은행·수출입은행 노동조합은 지방 이전이 단순한 본점 소재지 변경을 넘어 정책금융의 경쟁력 자체를 약화시킬 수 있다고 반발하고 있다.3사 노조는 11일 저녁 산업은행 본점 앞 대로변에서 공동집회를 갖고, “금융산업은 인력과 정보, 자본이 한곳에 모일수록 경쟁력이 높아지는 '고부가가치 집적 산업'”이라며, 핵심 금융기관을 지역별로 기계적으로 분산하는 것은 글로벌 금융산업의 흐름에도 역행한다고 주장했다. 국책은행 3사가 공동으로 집회에 나선 것은 이번이 처음 있는 일이다. 전 사무금융노조 위원장을 맡았던 김현정 더불어민주당 의원도 참석해 자리를 지켰다.
퇴근시간을 넘긴 훌쩍 시간에도 노조 추산 2000여명에 달하는 집회 인파가 몰렸다. 이 자리에서 노조는 세 국책은행이 담당하는 정책금융의 특수성을 일반 공공기관과 구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산업은행은 국민성장펀드와 첨단전략산업기금 등을 통해 국가 전략·첨단산업을 지원하고, 기업은행은 중소기업·소상공인 금융을, 수출입은행은 수출금융과 경제안보·금융외교 등을 담당하고 있다. 3사 노조는 지방이전을 두고 "정책금융의 심장을 인위적으로 쪼개는 것"이라며 첨단산업과 중소기업을 둘러싼 자금 공급 생태계 자체가 흔들릴 수 있다고 역설했다.
이에 따라 각 노조는 정부에 국책은행 강제 이전 검토 중단과 함께 △1차 공공기관 이전 효과에 대한 분석 △당사자 의견 수렴 △금융산업의 특수성을 반영한 통합 금융 집적화 전략 마련 등을 요구했다. 정부가 이를 받아들이지 않을 경우 가능한 수단을 동원해 이전에 대응하겠다는 입장도 밝혔다.
현장에서 만난 한 국책은행 관계자는 “기관 이전은 그냥 회사 하나를 옮기는 게 아니라 수백, 수천 명의 ‘인생’을 옮기는 일”이라며, “그냥 가라고 해서 가는 식의 이전은 무책임하고 명분도 없는 폭력적인 처사”라고 강조했다.
스스로를 지방 출신이라고 밝힌 또 다른 국책은행 관계자는 “예나 지금이나 고향에 내려가면 논밭이 거의 전부고 마땅히 갖춰진 병원이라던가 번화가도 없어서 정착하기 쉽지 않다”며, “기관들의 지방이전을 논하기 전에 지방에 의료·교육 등 필수인프라를 먼저 갖춘다면 역으로 기관들이 들어가려 하지 않겠나”라며 생각을 밝혔다.
현장에서 발언에 나선 기업은행 직원은 “작년에 결혼한 신혼부부인데, 일터가 옮겨지면 자녀계획부터가 송두리째 흔들릴 것”이라며, “삶의 터전을 지키기 위해서라도 지방이전을 결사적으로 막아내야 한다”고 주장했다.
국책은행 지방이전, 20년 묵은 논쟁 다시 수면 위로
국책은행 지방이전 논쟁의 뿌리는 20여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참여정부는 수도권 집중 완화와 지역의 자립적 성장거점 조성을 목표로 2003년 공공기관 지방이전 기본구상을 내놓고, 2005년 10개 혁신도시 조성과 공공기관 이전계획을 확정했다. 이후 2019년 말까지 수도권 소재 153개 공공기관이 혁신도시와 세종시 등으로 이전을 마쳤다.
당시에도 금융기관은 논쟁의 중심에 있었다. 특히 산업은행은 2005년 지방이전 계획에서 수도권 잔류기관으로 분류됐다. 당시 정부는 산은을 '동북아 경제중심 조성에 필요한 기관'으로 판단해 서울에 남겼다. 금융시장과 기업, 정부기관 등이 수도권에 집중된 상황에서 정책금융기관까지 분리하는 데 따른 비용을 고려한 결정이었다.
20년 가까이 지나면서 논리는 뒤집혔다. 윤석열 정부는 2022년 산은 부산 이전을 국정과제로 추진했고, 국토교통부는 2023년 5월 산업은행을 부산 이전 공공기관으로 공식 지정했다. 이번에는 금융 관련 기관이 이미 모여 있는 부산으로 산은을 이전하면 기관 간 연계와 협업을 통해 시너지를 낼 수 있다는 것이 정부의 판단이었다. 과거에는 '서울의 금융 집적효과'가 잔류의 근거였다면, 이후에는 '부산의 금융 집적효과'가 이전의 근거가 된 셈이다.
다만 실제 본점 이전은 국회 문턱을 넘지 못했다. 현행 한국산업은행법은 본점을 서울특별시에 두도록 명시하고 있다. 중소기업은행법과 한국수출입은행법 역시 각각 기업은행과 수출입은행 본점을 서울에 두도록 규정한다. 산은뿐 아니라 기업은행과 수출입은행까지 지방으로 옮기려면 결국 관련 법률을 고쳐야 한다.
2차 이전, '기관 나눠주기' 대신 산업과 묶는다
잠잠했던 논쟁에 다시 불을 붙인 것은 정부의 2차 공공기관 이전이다. 정부는 지난달 발표한 '2026년 하반기 경제성장전략'에서 올해 하반기 2차 공공기관 이전계획을 확정하고 2027년부터 선도기관을 중심으로 실제 이전에 착수하겠다고 밝혔다. 수도권 잔류기관을 최소화하는 동시에 '5극3특' 성장전략과 연계해 유사 기능을 집적 배치한다는 게 기본 원칙이다.단순히 공공기관 몇 곳을 지역별로 나눠주는 데 그치지 않고 지역의 주력산업과 공공기관 기능을 결합해 새로운 산업생태계를 만드는 것이 이번 정책의 핵심 명분이다. 정부의 5극3특 전략 역시 권역별 성장엔진과 인재양성, 산학연 혁신거점을 결합해 규모의 경제를 만들겠다는 구상이다.
부산이 산은뿐 아니라 기업은행과 수출입은행까지 원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부산시는 지난 2월 산업은행·기업은행·수출입은행·한국무역보험공사를 비롯한 금융·해양 관련 기관 40곳을 이전 희망기관으로 정부에 제출했다. 최근에는 이 가운데 산은·기은·수은·무보 등 금융기관을 핵심 유치 대상으로 압축해 정책금융 기능 집적에 힘을 싣고 있다.
부산에는 이미 한국거래소와 한국자산관리공사, 한국주택금융공사, 한국예탁결제원, 주택도시보증공사 등 금융기관이 모여 있다. 여기에 대형 정책금융기관까지 더해지면 기존 금융공기업과 해양·조선·물류산업을 연결하는 금융 클러스터를 구축할 수 있다는 것이 이전 찬성 측의 논리다.
업무경쟁력 악영향부터 이전 실효성 리스크까지
이전 반대 측은 물리적인 거리 자체보다 '금융 네트워크의 분리'를 가장 큰 비용으로 꼽는다. 대기업과 증권사, 자산운용사, 회계·법무법인 등 기업금융 관련 기관 상당수가 수도권에 남아 있는 상황에서 본점만 지방으로 이동할 경우 출장과 의사결정 비용이 오히려 커질 수 있다는 것이다.
공공기관을 지방으로 옮기는 것만으로 수도권 집중을 완화할 수 있느냐는 의문도 제기된다. 11일 예금보험공사 노동조합이 공개한 연구용역 결과에 따르면 1차 공공기관 지방이전이 본격적으로 추진됐음에도 전체 인구에서 수도권이 차지하는 비중은 2010년 49%에서 2019년 50%로 오히려 높아졌다.
혁신도시로 이동한 인구 가운데 수도권에서 유입된 비중도 43%에 그쳤고, 나머지 57%는 같은 광역권 등 주변 비수도권 지역에서 옮겨온 것으로 분석됐다. 수도권 인구를 지방으로 끌어내리겠다는 당초 정책 목표와 달리 상당 부분은 혁신도시가 주변 중소도시의 인구를 흡수하는 데 그쳤다는 의미다.
이 같은 이른바 '빨대효과'가 장기적으로 더 뚜렷해지고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산업연구원에 따르면 공공기관이 본격 이전한 2014~2017년에는 수도권에서 혁신도시로 인구가 유입되는 효과가 나타났지만 이후 규모가 급격히 줄었고, 2023년부터는 오히려 혁신도시에서 수도권으로 인구가 순유출되기 시작했다.
혁신도시가 성장하는 과정에서도 주변 비수도권 지역에서는 인구 유출이 발생했으며, 혁신도시에서 거리가 먼 지역일수록 유출 효과가 더 크게 나타났다. 2025년 이후에는 같은 광역시·도 내부에서 혁신도시로 들어오던 인구마저 순유출로 전환됐다는 분석이다.
이는 2차 공공기관 이전, 특히 국책은행 이전에서도 단순한 '본점 주소 이전' 이상의 정책 설계가 필요하다는 주장에 힘을 싣는다. 산은·기업은행·수출입은행을 지방으로 옮기더라도 관련 기업과 금융회사, 전문인력, 산업 기반이 함께 이동하지 않는다면 직원들의 수도권 왕래가 늘거나 장기적으로 다시 수도권으로 인력이 이탈하는 현상이 나타날 수 있다.
'두 집 살림' 되면 비용만 늘어날 수도
조직 운영비용도 풀어야 할 문제다. 산업은행이 과거 진행한 정책금융 역량 강화 컨설팅에서는 본점을 부산으로 옮긴 뒤에도 수도권의 정책금융 수요에 대응하기 위한 스마트워크센터와 권역센터 등이 필요하다는 방안이 제시됐다. 당시 분석에서는 이전 이후 총 364명의 인력을 추가해야 한다는 추산도 나왔다. 지방 이전 이후 서울 기능을 상당 부분 유지해야 한다면 사실상 '두 집 살림'에 따른 비용이 발생할 수 있다는 의미다.
더 큰 변수는 사람이다. 산은의 부산 이전 논의가 본격화했던 시기 자발적 퇴직자가 크게 증가한 전례가 있다. 산은의 자발적 퇴직자는 2020년과 2021년 30~40명대에서 2022년 97명, 2023년 87명으로 늘었다. 지방 이전이 퇴직 증가의 유일한 원인이라고 단정할 수는 없지만, 이전 논의와 젊은 전문인력 이탈이 동시에 나타났다는 점에서 기업은행과 수출입은행에도 부담 요인이 될 수 있다.
국책은행의 전문인력 이탈은 일반 공기업의 인력 감소보다 파장이 클 수 있다. 기업구조조정과 프로젝트파이낸싱(PF), 투자금융, 해외 프로젝트 금융 등은 장기간의 거래 경험과 전문성이 축적돼야 하는 분야다. 이전 과정에서 핵심 인력이 대거 빠져나갈 경우 지역 정착에 필요한 신규 인력을 확보하는 데 시간이 걸리고, 그 사이 정책금융 집행 역량이 약해질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
다만 이 같은 논리가 지나치게 서울 중심적이라는 반론도 존재한다. 금융기관과 전문인력이 서울에 몰려 있기 때문에 금융기관은 계속 서울에 있어야 한다는 주장을 받아들이면 금융산업의 수도권 집중은 영구적으로 깨기 어렵기 때문이다. 이미 부산으로 이전한 금융공공기관에 추가 정책금융기관을 집적해 새로운 시장과 인력 생태계를 만드는 것 자체가 이전 정책의 목적이라는 것이다.
장호성 한국금융신문 기자 hs6776@fntime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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