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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7년 11월 일본 금융위기의 기점: 산요증권 파산과 은행간 자금시장의 기능 붕괴 [김성민의 일본 위기 딥리뷰]

김성민 교수(전. 카이스트 금융전문대학원 교수)

smkim54@

기사입력 : 2025-12-22 14: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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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7년 11월 일본 금융위기의 기점: 산요증권 파산과 은행간 자금시장의 기능 붕괴 [김성민의 일본 위기 딥리뷰]
1990년대 중반까지 일본 금융기관들은 부동산과 주식 가격의 급락으로 대규모 부실채권이 누적되면서 구조적 취약성이 점차 심화되었다. 그러나 정부는 부실 금융기관에 대한 공적자금 투입을 지연하는 한편 규제 유예와 회계·자산 평가 기준의 완화를 통해 부실 문제를 관리·은폐하는 방식으로 대응하였다. 이로 인해 금융 시스템은 외형상으로는 안정을 유지했지만 은행의 대차대조표는 점차 악화되었고 자기자본 기반은 지속적으로 잠식되었다.

이처럼 구조적 취약성이 누적된 상태에서 1997년 하시모토 내각이 추진한 재정 긴축 정책은 금융 시스템의 부담을 한층 가중시켰다. 재정 긴축은 경기 둔화 기대를 강화시키며 주가 하락과 엔화 약세를 초래하였고 이는 은행의 자기자본비율을 직접적으로 압박하는 요인으로 작용하였다. 자본 여력이 약화된 은행들은 대출을 축소할 수밖에 없었으며 그 결과 신용 공급이 위축되고 금융기관의 영업 기반은 더욱 훼손되었다. 이러한 내부적 취약성 위에 1997년 하반기 아시아 금융위기라는 외부 충격이 가세하면서 일본 금융시장의 불안 심리는 급속히 증폭되었다.

이와 같은 여건 속에서 1997년 11월에 발생한 일련의 금융 사건들은 일본 금융 시스템이 더 이상 잠복 부실을 은폐하거나 점진적으로 완화할 수 없는 단계에 도달했음을 분명히 보여준 분기점이었다. 버블 붕괴 이후 장기간 지속되어 온 규제 유예와 완화된 회계·자산 평가 관행은 금융기관 대차대조표에 축적된 부실을 일시적으로 가려왔지만 11월에 이르러 그러한 은폐 구조는 한꺼번에 붕괴하였다. 그 결과 금융 불안은 증권사에서 대형 은행 나아가 일본채권신용은행과 같은 장기신용기관으로 연쇄적으로 확산되었는데 이는 일본 금융 시스템의 구조적 취약성뿐 아니라 기존 정책 대응 프레임워크의 근본적 한계를 동시에 노출시켰다.

이러한 금융 불안이 체제적 위기로 가시화되는 과정에서 직접적인 촉발 계기가 된 사건은 11월 3일 산요증권의 구조조정 개시 발표였다. 고객 자산 규모가 약 2.7조 엔에 달하는 중형 증권사였던 산요증권은 재무성의 감독을 받는 금융기관이었으나 예금보험제도의 보호 대상에는 포함되지 않는 제도적 사각지대에 놓여 있었다. 재무성은 같은 날 산요증권의 영업 중단을 결정하였고 산요증권은 도쿄지방재판소에 기업재편성법에 따른 재편성 절차 개시를 신청하였다. 법원은 즉각 보호 조치를 명령하며 산요증권의 영업을 정지시켰다. 이는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일본에서 증권사가 법적 절차를 통해 공식적인 보호를 신청한 최초의 사례로 금융시장에 시스템 리스크(systemic risk)가 현실화되었음을 드러냈다.

이 사건은 단순한 중형 증권사의 파산을 넘어 금융 시스템 전반에 대한 신뢰를 근본적으로 흔드는 결정적 계기로 작용하였다. 시장 참여자들 사이에서는 “이 정도 규모의 증권사조차 파산한다면 대형 증권사나 주요 은행 역시 안전하다고 보기 어렵다”는 인식이 빠르게 확산되었다. 그 결과 사건 발생 후 불과 며칠 만에 주요 은행과 대형 증권사들까지 신용 경색과 유동성 압박에 직면하였고 금융 불안은 개별 기관의 문제를 넘어 점차 시스템 리스크의 양상을 띠기 시작하였다.

그러나 금융 불안을 새로운 국면으로 몰고 간 결정적 충격은 산요증권의 영업 정지가 단기 자금 시장 특히 은행 간 콜 시장으로 직결되었다는 점이었다. 영업 정지 다음 날인 11월 4일 산요증권은 은행 간 시장에서 발생한 무담보 콜머니 채무 87억 엔에 대해 채무 불이행을 선언하였다. 이는 전후 일본 금융사에서 은행 간 단기 자금 시장에서 발생한 최초의 디폴트 사례로서 금융시장 전반에 즉각적이고 강한 충격을 가하였다.

비록 87억 엔이라는 부도액 자체는 시장 전체 규모에 비추어 절대적으로 큰 수준은 아니었지만 그 상징적 의미와 파급 효과는 매우 컸다. 이 사건은 단기 자금 시장의 대여자들로 하여금 거래 상대방 금융기관의 신용 위험을 재평가하도록 만들었으며 그 결과 은행 간 콜시장에서의 자금 공급은 급격히 위축되었다. 이러한 신용 경색은 단기 자금 시장에 국한되지 않고 금융 시스템 전반으로 빠르게 확산되면서 심각한 유동성 위기를 촉발하는 계기가 되었다.

산요증권 사태로 인한 충격은 단기 유동성 시장에 국한되지 않고 자산 시장 전반으로 빠르게 파급되었다. 주식시장은 즉각적으로 반응하여 닛케이 225 지수는 11월 7일 하루 만에 4.2% 급락하며 한때 16,000선 아래로 하락하였다. 이는 산요증권의 파산이 단순한 개별 기업의 문제가 아니라 금융시장 전반에 잠재되어 있던 시스템 리스크를 현실화시키며 자산 가격 전반에 하방 압력을 가했음을 분명히 보여준다.

정책당국의 초기 인식은 이러한 시장의 반응과 동떨어져 있었다. 나카소 히로시 전 일본은행 부총재에 따르면 산요증권의 콜시장 디폴트 직후 일본은행은 해당 사태가 금융 시스템 전체로 확산될 가능성을 과소평가하고 있었다. 일본은행은 증권회사가 일반 은행과 달리 핵심적인 지급결제 기능을 수행하지 않는다는 점을 근거로 그 파산이 시스템 전반에 미치는 영향은 제한적일 것이라고 판단하였다. 실제로 산요증권의 디폴트 규모는 전체 콜 거래 규모에 비해 상대적으로 소규모였으며 이로 인해 사태 발생 직후 며칠 동안 콜시장은 외형상 큰 동요 없이 유지되는 모습을 보였다.

그러나 시간이 경과하면서, 산요증권의 콜시장 디폴트가 전후 일본 금융사에서 처음 발생한 사건이라는 사실이 점차 두드러지게 부각되었다. 이러한 인식의 전환은 금융기관의 행동 양식을 근본적으로 변화시켰다. 대여자들은 차입 상대방의 신용도 즉 거래 상대방 위험(counterparty risk)에 대해 극도로 민감하게 반응하기 시작했으며 문제의 핵심은 부도 금액의 크기가 아니라 “어떤 금융기관도 디폴트할 수 있다”는 선례가 최초로 형성되었다는 점에 있었다.
이와 같은 신뢰의 붕괴는 은행 간 콜시장을 중심으로 단기 자금시장 전반에 즉각적이고 심각한 충격을 초래하였다. 거래 상대방에 대한 불신이 확산되면서 콜 거래를 비롯한 초단기 환매조건부 채권(Repo) 거래 등 주요 자금시장의 유동성 중개 기능은 사실상 마비되었다. 금융기관들은 상호 간 자금 대차를 회피하게 되었고 그 결과 은행과 증권사 사이의 단기 금융 거래는 급격히 위축되었다.
이러한 거래 위축은 단기 금리의 급등과 시장 변동성의 확대를 동반하며 악순환을 형성하였다. 자금 조달에 어려움을 겪은 금융기관들은 위험 노출을 최소화하기 위해 대출 자금을 회수하는 동시에 가장 안전한 피난처로 인식되던 일본은행의 당좌예금 계정에 자금을 집중적으로 예치하기 시작하였다. 그 결과 단기 자금시장에서 대규모 자금 이탈이 발생하였고, 이는 금융 시스템 전반의 유동성 부족을 심화시키며 위기를 더욱 증폭시키는 요인으로 작용하였다.

이와 같은 콜 시장의 기능 마비는 산요증권 사태를 계기로 신용 리스크(credit risk)와 유동성 리스크(liquidity risk)가 상호 결합되면서 전개된 전형적인 시스템 리스크로 해석할 수 있다. 중앙은행이 통상적인 공개시장운영을 통해 단기 금리를 조절하는 정책은 시장 참여자들이 서로의 지급 능력과 신용도를 신뢰하고 있다는 전제 위에서만 원활히 작동한다.

산요증권의 채무 불이행은 금융시장 운영의 핵심 전제였던 상호 신뢰를 근본적으로 훼손하였다. 그 결과 금융기관들은 거래 상대방의 신용 위험을 합리적으로 평가할 수 없는 상황에 직면하였고 위험 회피 성향이 급격히 강화되면서 자금 대차 자체를 기피하는 광범위한 신뢰 상실 국면에 빠지게 되었다. 이러한 환경에서는 소규모의 유동성을 시장에 공급하는 통상적인 정책 수단만으로는 불안 심리를 진정시키는 데 명백한 한계가 있었다. 이에 따라 중앙은행에는 보다 직접적이고 대규모적인 유동성 공급을 통해 시장 안정화에 대한 정책 의사와 적극적 개입 방침을 분명히 하는 조치가 요구되었다.

이러한 인식 하에 일본은행은 구 일본은행법 제37조에 규정된 최종대부자 기능을 법적 근거로 비상 대응에 착수하였다. 일본은행은 특융(Special Loans)을 핵심 수단으로 삼아 적격 어음 매입, 환매조건부채권(Repo) 거래, 금융기관에 대한 직접 대출 등 다양한 정책 수단을 총동원함으로써 단기 자금시장에 대규모 유동성을 공급하였다. 동시에 외국 은행들을 대상으로 어음을 발행하여 이들이 보유한 과잉 유동성을 흡수하는 조치도 병행하였다. 이처럼 유동성의 공급과 흡수를 동시에 조절하는 양방향 대응은 일본은행이 단순한 금리 조정자를 넘어 위기 국면에서 시장 기능 자체를 지탱하는 최종 시장 조성자(final market maker)로 역할을 확장했음을 보여준다. 그 결과 1997년 12월에는 일본은행이 단기 금융시장에 공급한 유동성 규모가 약 22조 엔에 이를 정도로 급격히 확대되었다.

산요증권 사태는 채무 불이행 규모가 크지 않더라도 은행 간 시장 전체를 마비시킬 수 있으며 금융 시스템이 구조적으로 취약한 상황에서는 은행 여부와 관계없이 단일 금융기관의 디폴트가 시스템 전반에 치명적인 충격을 가할 수 있음을 분명히 보여준 사건이었다. 실제로 당시 일본은행의 정책금리인 1일물 콜금리(월평균)는 약 0.5% 수준에서 비교적 안정적으로 유지되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도쿄 은행 간 금리(TIBOR, Tokyo Interbank Offered Rate)와의 스프레드는 산요증권의 영업 정지 이후 점진적으로 확대되다가 11월 하순에 들어 급격히 벌어졌다. 이는 일본은행의 대규모 유동성 공급으로 단기 자금의 총량 자체는 유지되었지만 은행 간 거래에서 요구되는 신용 프리미엄이 급속히 상승했음을 의미한다. 다시 말해 시장 참여자들에게 위기의 본질은 자금의 부족이 아니라 거래 상대방이 실제로 상환 능력을 갖추고 있는지 여부에 대한 근본적인 불신으로 이동하고 있었던 것이다.

▲1997년 11월 전후 일본의 은행간 자금시장의 금리 동향

▲1997년 11월 전후 일본의 은행간 자금시장의 금리 동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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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한 신뢰 붕괴 속에서 11월 7일 산요증권이 법정 관리에 들어가자 위기는 더 이상 개별 금융기관의 문제로 국한될 수 없게 되었고 금융 시스템 전반으로 확산되기 시작하였다. 이 사건은 중형 증권사의 파산만으로도 금융 시스템의 유동성 순환 구조가 연쇄적으로 붕괴될 수 있음을 명확히 드러낸 결정적 분기점이었다. 그동안 콜 시장을 통한 은행과 증권사 간 단기 자금 거래는 일본 금융시장에서 가장 기본적인 유동성 중개 메커니즘으로 기능해 왔으나 산요증권은 바로 이 콜 시장의 경색으로 인해 자금 조달에 실패하였고 그 결과 영업 정지와 법정 관리로 이어지는 경로를 밟게 되었다. 이는 금융 시스템을 연결해 왔던 핵심 연결 고리가 단기간에 단절될 수 있음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사례였다.

여기서 특히 주목할 점은 산요증권의 파산을 직접적으로 촉발한 요인이 잠재 부실의 점진적 현실화 그 자체라기보다는 신뢰 붕괴에 따른 급격한 자금 경색이었다는 점이다. 물론 산요증권은 파산 이전부터 구조적으로 심각한 취약성을 안고 있었다. 버블 경제기에는 계열 비은행 금융회사 등에 대해 과도한 채무 보증을 제공하였고 이후 부동산 관련 융자 실패로 약 800억 엔에 달하는 대규모 부실채권을 떠안게 되었다. 여기에 장기간 지속된 증시 침체로 수수료 수입이 급감하고 고객 이탈이 가속화되면서 경영 불안은 이미 누적된 상태였다.

산요증권의 파산은 이러한 구조적 취약성이 장기간에 걸쳐 점진적으로 폭발한 결과라기보다는 콜 시장에서의 신뢰 붕괴가 단기간에 유동성을 고갈시키며 촉발된 사건이라는 점에서 본질적인 의미를 갖는다. 바로 이 점에서 산요증권 사태는 개별 금융기관의 부실을 넘어 금융 시스템의 신뢰와 유동성 연결 구조가 얼마나 취약한 기반 위에 놓여 있었는지를 드러낸 전형적인 시스템 리스크로 평가할 수 있다.

결론적으로 산요증권의 붕괴에서 구조적 부실은 파산의 발생을 가능하게 하는 필요조건으로 장기간에 걸쳐 형성되었지만 그것만으로는 즉각적인 파산을 초래하지는 않았다. 결정적으로 파산을 현실화시킨 것은 콜 시장에서의 신뢰 붕괴와 급격한 유동성 경색으로 이는 앞서 언급한 필요조건을 충족시키는 충분조건으로 작용했다. 1997년 10월 말 홍콩과 뉴욕 증시가 급락하며 글로벌 금융시장 전반의 불안 심리가 고조되자 산요증권은 단기 자금의 정상적인 회전조차 어려운 비상 국면에 직면하였다. 시장의 신뢰가 붕괴되면서 채권자들은 자금 회수를 서두르거나 신규 자금 공급을 중단하였고 그 결과 단기간에 심각한 자금 경색이 발생하여 결국 영업 정지로 귀결되었다.

산요증권의 영업 정지는 일본 금융시스템이 내재하고 있던 구조적 취약성과 제도적 공백으로 인해 작은 충격에도 연쇄적 붕괴로 이어질 수 있는 상태에 놓여 있었음을 여실히 드러냈다. 만성적인 부실채권의 누적, 단기 자금 조달에 대한 과도한 의존, 비은행 금융기관에 대한 정리·파산 제도의 미비, 그리고 단기 자금시장에 대한 안전장치의 부족은 단순히 개별적 문제가 아니라 서로 상호 작용하는 위험 요인이었다. 그 결과 홋카이도 타쿠쇼쿠은행은 차환 실패와 자본 잠식을 더 이상 견디지 못하고 11월 17일 파산에 이르게 되었다. 이로써 단일 중형 증권사의 디폴트는 시스템 전체를 뒤흔드는 연쇄적 위기로 현실화되었다.

김성민 교수(전. 카이스트 금융전문대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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