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석유화학 산업 불황은 중국발 공급 과잉과 미·중 무역분쟁으로 인한 전방 수요 둔화가 겹친 복합적 결과다. 이 때문에 국내 거의 모든 석유화학 업체들이 그 어느 때보다 힘든 시기를 보내고 있다.
그런데 롯데케미칼 부진은 유독 도드라져 보인다. 이유는 범용 제품에 편중된 사업 구조 때문이다. 범용 제품은 전자레인지 용기, 포장재, 일회용품 등 일상에서 흔히 쓰이는 플라스틱을 만드는 기초 화학물질로, 최대 소비처인 중국이 2020년부터 자체 조달을 확대하면서 국내 기업들의 설 자리가 크게 줄었다.
롯데케미칼 반기보고서에 따르면 올해 상반기 연결 매출 기준 사업부문 비중은 범용 제품을 담당하는 기초화학 부문이 60%를 차지했다. 가전·IT, 자동차, 의료기기 등에 쓰이는 스페셜티 제품을 만드는 첨단소재 부문은 28%에 불과했다.
롯데케미칼은 오는 2030년까지 범용 비중을 30%로 낮춘다는 계획을 세웠다. 대조적으로 LG화학은 국내 최대 NCC 생산능력을 갖췄지만 일찍이 배터리 등으로 사업을 다각화했다. 전체 매출에서 석유화학 비중은 38%에 그친다. 이것도 스페셜티 등 모든 석유화학 제품을 합친 비중이다. NCC 기반 범용 비중은 약 14%로 추산된다.
지난해 11월 롯데케미칼 총괄대표로 이영준 사장이 임명된 것은 범용 중심 사업 구조를 전환하겠다는 강력한 메시지였다. 전임자가 대형 M&A(인수·합병) 전문가였던 것과 달리, 이영준 사장은 스페셜티 분야 전문가로 통한다.
그는 삼성종합화학, 제일모직, 삼성SDI를 거쳐 2015년 삼성·롯데 빅딜을 통해 롯데그룹에 합류했으며, 롯데케미칼에서는 첨단소재 대표를 맡아왔다. 실제로 그가 이끈 첨단소재 부문은 미·중 무역분쟁에 따른 수요 둔화와 판매가격 약세 속에서도 5~6% 영업이익률을 기록하며 선방하고 있다.
다만 그는 취임 직후 첨단소재 확장보다 급격히 악화된 재무구조 개선이라는 발등의 불을 끄는데 집중해야 했다. 롯데케미칼 순차입금은 2021년 말 2,960억 원에서 2024년 말 7조 1,542억 원으로 3년 만에 24배나 급증했다.
이 부담을 줄이기 위해 그는 자산 매각을 통한 ‘에셋 라이트(자산 경량화)’ 전략을 실행했다. 지난해 10월부터 올해 3월까지 미국 법인(LCLA) 지분 40%, 인도네시아 법인(LCI) 지분 25%, 파키스탄 법인 지분 75% 전량, 일본 레조낙 지분 4.9% 전량 등을 매각해 약 1조 3,000억 원을 확보했다.
이영준 사장 앞에 남은 또 하나의 과제는 국내 NCC 구조조정이다. 지난 8월 정부 주도로 제시된 NCC 25% 자율 감축안에 롯데케미칼을 포함한 10개 NCC 업체가 동참했다. 그러나 업체 간 이해관계가 달라 구체적 실행 방안은 아직 나오지 않았다.
롯데케미칼은 동종 기업과 설비를 통합 운영해 비용을 절감하는 수평 통합을 선호하고 있다. 현재 HD현대케미칼, 여천NCC 등과의 통폐합을 논의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연말 인사에서 살아남는다면, 이영준 사장의 진정한 시험대는 내년이 될 전망이다.
최근 증권사들은 내년 롯데케미칼 연간 흑자 전환 가능성을 언급하며 석유화학 업황이 바닥을 통과했다고 본다.
다만 회복 시점과 속도에 대해서는 의견이 갈린다. 메리츠증권은 “미국과 중국 관세 협상이 이어지는 가운데 수요 관망세가 지속될 가능성이 크다”고 진단했다. 신한투자증권은 “하반기 시황 불확실성은 남아 있지만 다운사이클 저점은 지났다”며 “회복 기울기가 가파르지는 않겠으나 추가 둔화 가능성은 제한적”이라고 평가했다.
곽호룡 한국금융신문 기자 horr@fntime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