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창익 칼럼니스트 : 서울경제 기자/ 소비자가 만드는 신문 부국장/돈세이돈 대표, 저서: 월저바보(월스트리트저널 바로보기)
문제는 지난 50년간 미국이 절대반지의 권능을 남발했다는 점이다. 찍어낸 국채가 33조 달러에 달하면서 달
러도 많이 찍으면 인플레이션이란 암에 걸릴 수 있다는 사실을 세상이 알게 됐다. 50살이 넘어 노화가 진행되는 달러 패권의 자리를 중국 위안화가 위협하고 나서면서 독수리와 팬더의 쟁탈전이 벌어지고 있다.
또 다른 전장에선 일런 머스크 테슬라 CEO가 기존과는 전혀 다른 형태의 화폐전쟁을 벌이고 있다. 이 같은 전쟁은 역사상 전례 없던 일이다.
탄소경제는 겉으로는 탄소 배출을 줄이자는 것이지만 내용을 자세히 들여다 보면 돈을 내고 탄소를 배출하라는 뜻이다.
중국과 인도, 심지어 우리나라도 탄소배출량을 줄이는 데 들어가는 돈이 탄소배출권을 사서 탄소를 배출하는 것보다 많이 든다. 결국 기업들은 우선은 탄소배출권을 사서 굴뚝 연기를 배출하는 쪽을 선택할 것이고 이는 곧 유럽에서 배출권을 수입하는 것을 의미한다. 탄소배출을 줄이는 쪽을 택하면 지멘스 등 유럽 기업들로부터 태양열 집광판이나 풍력 발전 터빈 등의 주요 설비를 수입해야 한다. 탄소경제는 이래저래 유럽 기업들의 수출을 늘리는 시스템이다.
트럼프는 언뜻 보면 달러 패권에 아랑곳하지 않고 본인의 재선에만 관심이 있는 듯 보이지만 그의 행보는 결국 미국의 패권을 강화하는 데 초점이 맞춰져 있다.
파리기후협약은 유럽 주도의 탄소제로경제를 의미한다. 화폐전쟁의 왕좌인 기축통화는 1970년 대 이후부터 특정 원자재를 살 수 있는 특정 통화를 의미했다. 석유를 사려면 달러를 사야하는 페트로달러 시스템이 기축통화 달러의 원동력이다.
탄소제로경제에서는 탄소배출권이 필수 원자재인 셈이다. 산업혁명 이후 공장을 돌리려면 석탄이 필요했고 2차 대전 이후부터는 석유가 석탄을 대체하는 경제 시스템이 구축됐다. 지금은 공장을 돌리려면 탄소배출권을 사야하는 시스템으로 전환되는 시기다. 파리기후협약으로 대변되는 유럽식 탄소제로경제 체제의 구축이 완성되면 전세계 기업들은 공장을 돌리기 위해 유로를 사야하는 상황이 될 수도 있다. 이 것은 통화 패권의 왕좌를 달러가 유로에 내줄 수도 있다는 의미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스웨덴의 청소년 환경운동가 그레타 툰베리가 2020년 1월21일 스위스의 다보스에서 개막한 세계경제포럼(WEF)의 연차총회(다보스포럼)에서 기후 대응을 놓고 설전을 벌였다.
실제 학교출석도 거부하며 기성세대들에게 기후문제의 해결을 촉구하고 있는 스웨덴의 한 소녀로부터 트럼프는 실랄한 비판을 받았다. 아이를 상대로 싸울수도 구차한 변명을 늘어놓을 수도 없는 처지가 됐다.
기축통화 패권은 100년 전까지는 줄곧 유럽의 차지였다. 스페인이 무적함대를 앞세워 기축통화국이 됐고, 네덜란드가 동인도회사를 지원하면서 기축통화 패권을 쥐었다. 이후 영국이 해가지지 않는 제국을 건설하면서 금 보관증서인 파운드화를 기축통화로 만들었다.
1차대전이 상황을 변화시켰다. 전비 마련에 금을 미국에 팔아버린 영국은 미국 참전의 대가로 기축통화 왕좌의 열쇠를 미국에 넘겼다. 이른바 브레튼우즈 체제다. 달러를 일정량의 금과의 교환을 보증하는 기축통화로 만들어준 것이다.
문제는 미국이 달러를 너무 많이 찍어냈고 베트남전을 계기로 부도를 냈다는 점이다. 프랑스 드골 대통령이 미국 채권을 가져가도 더이상 금으로 바꿀 수 없다는 점을 눈치채고 닉슨 대통령에게 금고문을 열어서 보여달라고 요구하면서 미국이 달러 디폴트 선언을 해버렸다.
달러는 막대한 통화팽창에도 기축통화 자리를 지킬 수 있는 대체 수단이 필요했고, 헨리 키신저 당시 미국 국무장관의 활약으로 만들어진 페트로달러 시스템이 바로 달러를 무한대로 찍어낼 수 있는 현재의 모습이다. 부도선언이나 다름없던 금태환 중지가 오히려 달려 패권에 날개를 달아준 셈이다.
페트로달러 시스템엔 한가지 태생적 한계가 있다. 자유무역을 엔진으로 하는 이 시스템은 미국의 재정-무역적자를 필연적으로 확대시킨다. 미국은 이 문제를 힘으로 해결해 왔다. 대표적인 게 1985년 미국 뉴욕 프라자 호텔에서 사인된 프라자 합의다. 일본과 독일 통화의 인위적 절상을 강제했던 합의로, 미국의 무역적자 해소를 위한 선택이었지만 일본과 독일이 패권의 뒤안길로 사라져 버린 결과를 낳았다.
이후에도 유럽은 미국으로부터 기축통화 패권을 되찾아오려는 노력을 끊임없이 하고 있다. 그 결과가 바로 유로의 결성과 유로화의 발행이다. 프랑스와 독일 경제를 쌍두마차로 유로경제는 세계 최대의 경제블록이 될 수 있었고 그 덕에 유로화는 출범 3년만인 2002년 급기야 달러보다 가치가 큰 화폐로 부상했다.
2002년 3월20일 아들 부시 미국 대통령이 사담 후세인을 잡겠다고 이라크를 침공한 건 화폐전쟁 때문이라는 시각도 이같은 점에서 설득력을 얻고 있다. 이라크 전쟁이 발발한 2002년 3월 전후 배럴당 20달러 선이었던 국제 유가는 이라크 전쟁 후인 2004년 12월 160달러 선까지 치솟는다. 석유를 100%로 수입하던 프랑스와 독일 경제는 고유가 폭탄을 맞고 버틸 수 없는 지경이 됐다. 유로화가 결국 달러에 무릎을 꿇게 된 이유다.
이라크 전쟁으로 달러 패권의 수성에 성공한 미국은 이제 기후위기로 교묘히 포장된 탄소중립이란 미사일을 상대해야 한다.
트럼프는 2024년 대선 공약을 담은 ‘아젠다47’에서 이와 관련된 자신의 입장을 분명히 했다. 조 바이든 대통령이 재가입한 파리기후협약을 다시 탈퇴하겠다는 것이다. 그는 또 전기차와 신재생 에너지 발전 사업에 대한 지원도 중단할 계획이다. 트럼프는 전력 부족 문제를 해결하려면 석탄과 석유 등 화석연료를 이용한 발전이 비용측면에서 가장 유리하다는 입장이다.
김창익 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