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창익 칼럼니스트 : 서울경제 기자/ 소비자가 만드는 신문 부국장/돈세이돈 대표, 저서: 월저바보(월스트리트저널 바로보기)
문제는 지난 50년간 미국이 절대반지의 권능을 남발했다는 점이다. 찍어낸 국채가 33조 달러에 달하면서 달러도 많이 찍으면 인플레이션이란 암에 걸릴 수 있다는 사실을 세상이 알게 됐다. 50살이 넘어 노화가 진행되는 달러 패권의 자리를 중국 위안화가 위협하고 나서면서 독수리와 팬더의 쟁탈전이 벌어지고 있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를 거치며 달러에 대한 대안으로 탄생한 비트코인이 자산으로 인정받으며 또 다른 전선을 만들고 있다. 달러는 절대반지를 빼앗으려는 위안화와 절대반지 자체를 파괴하려는 비트코인을 상대로 두 개의 전쟁을 치르고 있다. 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과 조 바이든 현재 대통령,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 무함마드 빈 살만 사우디 아라비아 왕세자, 나한드라 모디 인도 총리, 푸틴 러시아 대통령 등이 화폐전쟁을 벌이는 주역들이다.
또 다른 전장에선 일런 머스크 테슬라 CEO가 기존과는 전혀 다른 형태의 화폐전쟁을 벌이고 있다. 이 같은 전쟁은 역사상 전례 없던 일이다.
Aramco의 최대 석유 가공 공장 Abqaiq Plants (사진=aramco china)
중국과 사우디아라비아간에 추진되는 아람코의 거래는 성사될 수 있을까.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과 무함마드 빈 살만 사우디 왕세자간 물밑 협상이 지속적으로 이뤄지고 있는 가운데 아람코의 홍콩 증시 상장의 성공 여부가 주목된다. 아람코의 홍콩 증시 상장이 성공할 경우 중국이 세계최대 석유생산 기업에 대한 통제권을 갖는 것이란 점에서 페트로달러 시스템의 붕괴를 촉진하는 역할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미국이 페트로위안의 부상을 지켜보고 있지만은 않을 것이란 점이 변수다. 아람코가 2019년 해외증시 상장을 처음 추진할 당시 뉴욕, 런던, 도쿄에서 상장에 실패한 게 우연만은 아닐 것이다. 하지만 동맹국이 아닌 중국에서의 아람코 상장을 막을 뾰족한 방법이 없다는 게 미국의 고민이다.
시진핑이 아람코를 눈독들인 건 에너지 안보 때문이다. 중국은 하루 1000만 배럴에 달하는 세계 최대 석유 수입국이다. 냉전시대 러시아와는 달리 석유 자원을 둘러싸고 미국의 영향력에서 완전히 자유롭지 못하다. 군사력은 열세여도 중국도 핵무기를 갖고 있어 미국을 상대할 수 있다. 하지만 에너지 안보가 보장되지 않으면 패권 싸움에서 유리한 고지를 점하기 힘들다.
시진핑의 일대일로 계획은 간단히 말하면 미국의 해상패권 아래 있는 이 지역 국가들의 항구를 중국이 점유하겠다는 전략이다. 저개발 국가의 인프라 개발에 금고에 쌓아둔 달러를 빌려주고, 갚지 못할 경우 해당국의 인프라에 대한 운영권을 갖는 방식으로 중국은 스리랑카와 파키스탄의 항구에 자국의 항공모함을 정박할 수 있는 상황을 만들었다. 이 과정에서 주목할만한 지역이 파키스탄의 과다르 항구다.
미국이 중국과의 패권 전쟁 과정에서 해양봉쇄에 나설 경우에 대비해 시진핑은 호르무즈 해협과 서부 국경 지역인 신장자치구 카스를 잇는 육상 송유관 건설을 추진하고 있다. 과다르 항구는 이같은 목적에 부합하는 최적의 장소다. 호르무즈 해협 동쪽에 위치한 이 항구에 석유기지를 건설해 사우디와 이란 등에서 수입하는 석유를 저장하면 중국 서부 국경지역까지 최단 거리의 송유관 건설이 가능해진다.
중국은 채무자 만들기 전략으로 2015년 과다르 항구에 대한 40년 운영권을 확보했다. 중국은 과다르항 개발과 중국 신장자치구까지 이어지는 송유관 건설 등에 총 600억 달러를 투입할 계획이다. 이 것이 바로 시진핑 국가 주석이 직접 나서 공을 들인 중국파키스탄경제회랑(CPEC)이다. CPEC는 시진핑 주석이 추진하는 일대일로의 가장 중요한 사업 중 하나다.
중국이 중동산 원유를 과다르에서 환적해 경제회랑을 통해 운송할 경우 현재 1만2천㎞의 거리를 2천395㎞로 단축할 수 있다.
CPEC가 중요한 이유는 석유 송유관 외에도 군사적 요충지로서의 가치 때문이다. 과다르항에 중국 항공모함이 주둔하게 되면 파키스탄과 인접한 인도를 견제할 수 있다. 인도는 미중패권 전쟁에서 철저하게 실리주의 외교를 펼치고 있지만 중국과는 앙숙 관계다.
중국 입장에선 생명선과 다름없는 CPEC가 차질을 빚자 시진핑은 빈 살만 사우디 왕세자에게 더욱 공을 들이고 있다. 아버지 살만 국왕과는 달리 젊은 왕세자인 빈 살만은 중국에 우호적이다.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취임직후부터 자신을 패싱한 것도 반미 감정을 부추겼다. 바이든이 자존심을 굽히면서까지 직접 빈 살만을 찾아 감산을 요구했을 때 이를 대놓고 묵살한 것도 시진핑에게는 호기로 받아들여졌을 것이다.
사진=무함마드 빈 살만, 시진핑
시진핑 주석이 빈 살만을 만난지 두달만에 아람코의 홍콩증시 상장을 위한 관련 당국자들의 발걸음이 분주해졌다. 존 리 홍콩 행정장관이 2023년 2월 사우디를 방문해 야민 나세르 아람코 사장을 만났다. 리 홍콩 행정장관은 이 자리에서 금융허브로서 홍콩의 위상과 아람코의 상장 시 전폭적인 지원을 약속했다. 리 행정장관은 특히 홍콩이 위안화의 최대 역외허브란 점을 강조하면서 아람코 자산을 다각화하고 보호하는 데 홍콩이 최적지란 점을 강조했다. 빈 살만 왕세자가 아람코의 홍콩 증시 상장을 통해 위안화 자금을 끌어들인다면 석유를 위안화로 결제하는 것과 무엇이 다른가.
빈 살만이 2019년 아람코의 홍콩 증시 상장을 추진할 때는 범죄인 송환법 개정으로 촉발된 시위가 걸림돌이 됐었다. 중국 공산당의 홍콩 금융자본에 대한 통제권이 강화되는 것을 우려한 글로벌 자금이 대거 이탈했기 때문이다. 이 것을 우연으로 보지 않는 시각도 있다.
김창익 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