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 : 제럴드 무어(Gerald Moore, 1899.7.30~1987.3.13)
음악용어 협주곡 concerto은 ‘경쟁하다’, ‘협력하다’라는 뜻을 지닌 콘체르타레 concertare에서 유래했다. 음악가들의 위대한 점은 기교의 연마나 뼈를 깎는 연습보다 사실 ‘협주하다’에 있다. 외적으로는 재능 있고 잘 준비된 두 연주자가 능수능란하게 호흡을 잘 맞추어 연주를 하는 것처럼 보일 것이다. 하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다. 제 아무리 훌륭한 연주자라도 음악의 이상적인 템포를 맞추기 위해서는 상대방과 끊임없이 밀고 당기기를 해야 한다. 그리고 유기적인 움직임에서 미묘한 셈 여림을 맞추어야 한다. 감정과 기술에 대한 극도의 몰입과 동시에 상대방에 대한 예민한 신경 또한 거둘 수가 없다.
이 과정은 어원의 뜻처럼 경쟁과 협력의 연속이다. 연주를 하다 보면 자기도 모르게 감정이 고조되어 볼륨이 커지기도 하고 열정이 솟구쳐 템포가 빨라지기도 한다. 이때 서로 호흡을 맞출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누군가 한 명이 주도권을 쥐는 것이 아니라 그 맞춤의 기준을 상대방에게 두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너와 나의 역할에 대해 많은 공부가 필요하고 언제든지 상대방을 받아 들이고 맞춰나갈 수 있도록 약간은 무르게 틈을 벌려놓아야만 한다.
제럴드무어 은퇴기념 공연실황과 헌정음반 합본 앨범 커버. (사진=WARNER CLASSICS)
제럴드 무어 이전의 피아노 반주자는 독주연주를 할 수준이 안 되는 실패한 피아니스트라는 인식으로 공연 포스터나 음반의 재킷에는 반주자의 이름을 올리지 않았던 편견의 시대였다. 심지어 1930년대 당시의 유명한 러시아 베이스 키프니스가 자신의 음반에 반주자 제럴드 무어의 이름이 인쇄되어 있는 것을 보고 “음반의 품격과 내 명성에 금이 갔다”며 크게 화를 낸 일화는 유명하다. 그러나 제럴드 무어는 반주자의 이름을 공개적으로 당당히 올리며 그 지위를 격상시킨 최초의 피아니스트이다. 특히 가곡의 연주에서 피아노의 비중은 매우 중요하다, 단지 화성을 채워주며 노래를 받쳐주는데 그치지 않고 전체 이야기의 배경이 되어야 한다.
때로는 앞으로의 스토리를 암시하는 복선을 나타내기도 하고 감흥의 번짐이나 감정의 변화 또한 연주를 통해 표현해야 한다. 이를 위해선 음악에 대한 매우 수준 높은 연구와 협업자에 대한 이해가 필요하고 세심한 밸런스 조절이 필요하다. 제럴드 무어는 뛰어난 해석을 바탕으로 한 피아노 연주로 단순한 반주가 아닌 성악가와의 완벽한 듀엣을 완성해 낸다. 그렇기에 당대의 모든 성악가는 그와 함께 연주하기를 원했고 수없이 많은 공연과 명반을 남겼다. 파블로 카잘스, 가스파르 카사도 같은 기악 연주가들과도 연주하며 전 장르를 넘나들며 명연주, 명음반을 남겼다. 이제는 새로운 연주자가 제럴드 무어와 리사이틀이라도 열게 되면 사람들은 일제히 ‘새로운 별이 나타났군’이라 말했다고 한다.
그는 평생 한번의 독주회도 열지 않고 오직 반주자로서 헌신한 피아니스트였지만 가장 큰 존경을 받으며 독보적인 업적을 남긴 피아니스트라고 할 수 있다. 최고의 반주자로서 활동하던 1954년 대영제국 3등급 훈장을 받았으며 은퇴한 뒤에는 <부끄럽지 않은 반주자>, <내 소리가 너무 컸나요? > 등의 저서를 남겼다.
사람들은 리더십의 주요한 덕목 중에서 특히 ‘소통’을 강조한다. 그러나 좋은 리더가 되기에 앞서 나를 상대방에 맞추고 지원하고 따라주는 팔로워십 (Followership)을 먼저 실행하는 게 중요하다. 이를 위해서는 제럴드 무어처럼 상대방에 대한 끊임없는 연구와 이해와 관심을 가지는 프로파일링이 필요하다.
인용자료: 남자의 클래식 (안우성 지음)
윤형돈 FT인맥관리지원센터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