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회사채 발행시장(Debt Capital Market) 물량의 15% 안팎을 차지했던 캐피탈채가 빠르게 자취를 감추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캐피탈사의 회사채 발행이 거의 끊기다시피 한 것은 BNK캐피탈의 한일월드 분쟁과 폭스바겐 사태 등의 불안 이슈가 캐피탈 시장 전반으로 확산되면서 부터다. 시장 일각 전문가들은 자금 경색 국면에 접어든 만큼 비상계획을 세워야할 때라고 조언한다. 리스크 관리를 소홀히 하다가 심각한 유동성 위기를 맞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캐피탈사의 자금조달 상황이 급박하게 돌아가자, 금융당국은 최근 이들 업권에 대한 유동성 지표를 점검하는 등 전면 실태조사에 나서는 한편, 다각적인 지원 방안까지 논의 중인 것으로 전해졌다. 자칫 유동성 위기로까지 번지는 사태를 미연에 방지하기 위해서다.
◇ 캐피탈채 발행 급감한 반면 금리 상승
할부금융사, 리스사 등 캐피탈업계의 자금조달 여건이 악화된 것으로 전해졌다. BNK캐피탈의 한일월드 분쟁에 따른 부실화 우려와 폭스바겐의 대규모 리콜 사태 등의 불안 이슈가 캐피탈 시장으로 확산되면서 캐피탈채 인수시장이 꽁꽁 얼어붙었다. 이와 관련 여신금융협회 한 관계자는 “최근 BNK캐피탈 사태 등 캐피탈채 투자심리가 불안한 상황에서 폭스바겐의 배기가스 이슈가 터지면서 더욱 악화되고 있다”고 말했다.
실제 지난 9월 BNK캐피탈과 한일월드의 이면계약 사건으로 일부 기관들이 BNK캐피탈 ‘묻지마 매도’에 나서면서 1년 만기는 국고채 대비 30bp 이상 높은 수준에도 거래가 이뤄지지 않고 있다. BNK캐피탈 이슈가 채 가라앉기도 전에 폭스바겐 사태가 터지면서 시장 참여자의 캐피탈채 외면이 심화되고 있는 것이다.
한국기업평가 한 관계자는 “폭스바겐의 배기가스 이슈가 결국 국내 캐피탈사의 유통금리에도 영향을 미쳤다”며 “외제차 파이낸싱으로부터 많은 캐피탈사가 자유롭지는 못해서 전반적인 불안감이 팽배하다”고 설명했다. 박상준 한국투자증권 기업금융본부 인수영업 1부 팀장은 “캐피탈채와 국고채(3년물) 간의 금리 스프레드(차이)는 확대되고 있는 추세”라고 말한 뒤 “이 같은 기조는 당분간 지속될 가능성이 높다”고 전망했다.
또 다른 시장 관계자는 “과당 경쟁과 조달금리 상승에 따른 금리비용 상승에도 유동성 위험까지 부각되면서 캐피탈채에 대한 시장의 매수기피 현상이 여전해 금리가 계속 높아지고 있다”고 지적했다. 가장 여건이 좋다는 금융지주계열 모(某)캐피탈사의 경우 올 상반기에 비해 스프레드가 20bp 정도 올랐다. 이처럼 최근 시장 이슈들이 조달 부담이 가중되면서 시장 일각에서는 앞으로 벌어질지도 모르는 자금시장 경색에 미리 대비해야 하는 것 아니냐는 분위기마저 감지되고 있는 실정이다.
◇ 금융당국, 잠재적위기 상황별 대응방안 구비 여부 점검
더군다나 캐피탈사는 수신기능이 없기 때문에 외부 자금조달 환경이 악화되면 영업에 큰 곤란을 겪을 수밖에 없다. 일례로 이름을 밝히기 거린 한 대형 캐피탈사의 팀장은 “자금난이 심화해진 중소 캐피탈사들은 신규 영업은커녕 재무상환도 버거운 상황”이라며 분위기를 전했다.
이에 따라 금융당국은 최근 캐피탈사별 유동성 자금의 실태조사를 하는 한편, 최악의 상황에 대비해 선제적으로 충분한 유동성을 확보하도록 창구지도를 계획하고 있다. 이 일환으로 금융당국은 최근 캐피탈채 발행과 관련된 시장관계자들을 금융감독원으로 불러들여 유동성 상황 점검회의를 개최했다.
이날 회의에 참석자 관계자들은 이번 단기 이슈 사태가 자금조달 여건에 악영향을 미쳤지만, 아직 크게 우려할 만한 상황은 아니라는 입장을 표시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럼에도 금융당국은 만일의 상황에 대비해 캐피탈사별로 위기상황별 적절한 비상대응계획(contingency plan)을 구비하도록 창구 지도를 진행할 방침이다. 일례로 금융당국은 경영건전화, 영업관행 개선 등을 통해 시장 신뢰를 유지할 수 있도록 당부하는 한편 향후 경기악화에 대비해 필요한 경우 대손충당금 추가 적립 등 손실흡수능력을 높이는 방안을 강구하도록 주문했다.
금융당국 한 관계자는 “최근 부정적 이슈 등으로 캐피탈업종에 대한 자본시장의 불안이 고조되면서 캐피탈채에 대한 자본시장의 수요가 급감했고, 캐피탈사들이 자금조달에 곤란함을 겪고 있다”고 말한 뒤 “차입부채 상환부담이 과중한 일부 캐피탈사의 경우 리파이낸싱 리스크가 현실화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는 상황”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이어 “캐피탈사는 차입부채의 만기 관리 등 유동성 관리가 특히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금융감독원 상호여전감독국 한 관계자는 “캐피탈사의 유동성 상황에 대한 지속적인 모니터링과 점검을 강화할 것”이라고 말했다.
시장 전문가들은 금융당국이 자금경색을 풀기 위해 대책을 마련하고 있지만 현재 시장 여건상 해법을 찾기란 쉽지 않을 것이라고 지적한 뒤 자체적으로 건전성 분석, 스트레스테스트 등의 결과를 종합적으로 분석해 리스크 상태에 맞게 비상계획을 세워야한다고 조언한다.
한편, 현재 신용등급이 ‘AA’급인 캐피탈사는 현대캐피탈, 롯데캐피탈, JB우리캐피탈, 현대커머셜, 산은캐피탈, KB캐피탈, 신한캐피탈, 하나캐피탈, BNK캐피탈 등이며, 아주캐피탈, NH농협캐피탈, KT캐피탈, 효성캐피탈, 한국캐피탈 등은 ‘A’급 신용도를 갖고 있다.
김의석 기자 eskim@fntime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