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팬아시아리’ 설립 추진…제2 재보험사 등장하나
지난 3월 보험업계는 새로운 재보험사의 등장 가능성에 술렁였다. ‘제2 재보험사’ 설립 시도가 그동안 꾸준히 있어왔음에도 여러 번 좌초된 가운데, 금융감독원 부원장보를 지낸 김기홍닫기

팬아시아리컨설팅은 재보험사 설립용역을 목적으로 만들어진 컨설팅 회사로, 김기홍 대표와 정채웅 법무법인 ‘광장’ 고문 등이 주도하고 있으며, 지난 3월 금융감독원을 방문, 재보험사 설립과 관련한 의사를 타진한 것으로 알려졌다.
김기홍 대표는 금감원 부원장보 이후에도 국민은행 수석부행장을 역임하고 국민은행의 지주사 전환실무를 책임진바 있으며, 정채웅 고문은 재무부를 거친 관료 출신으로 금융감독위원회에서 기획행정실장을 거쳐 요율산출기관인 보험개발원 원장을 역임했다. 이처럼 추진 인력이 금융당국 출신이라는 점이 부각되며 제2 재보험사의 설립 가능성에 힘이 실렸다.
[설립 전] - 설립 위해선 투자금 확보, 인력 구성이 관건
◇ 기관투자자 확보…인가 분수령
김기홍 대표는 약 3000억원 규모의 투자유치 의향을 확인 받고 개인투자자로부터 현재 2000억원 이상의 자금을 확보한 것으로 알려졌다. 김 대표는 해외 인적 네트워크가 탄탄한 것으로 알려져 자본금을 목표치인 3000억원까지 끌어오는 데는 무리가 없을 것이란 의견이 지배적이다. 그러나 문제는 조달자금의 성격과 그에 따른 안정성 확보다.
재보험사 및 보험산업의 특성상 자본이 부족한 초기에 대규모 사고가 일어날 경우 지급규모가 커 재보험사 파산은 물론 원수사들까지 피해를 고스란히 입을 수 있다. 때문에 향후 지급여력 확보를 위한 기관투자자의 참여가 반드시 필요한데, 김 대표는 사실상 기관투자자의 자금은 확보치 못한 것으로 알려졌다.
금융위 관계자는 “재보험은 거대위험을 인수해야 하는 만큼 사고시 대규모 자금이 빠져나갈 위험이 있고, 보험산업 자체가 초기 적자를 면치 못한다는 점에서 개인투자자로서는 자금보완이 쉽지 않아 예비인가 신청이 들어올 경우 주주구성 등을 꼼꼼히 볼 것”이라고 말했다.
개인이나 사모펀드의 자금은 단기에 수익을 창출해 이를 다시 돌려줘야하기 때문에 보험과 같이 장기적이고 리스크가 큰 사업에는 맞지 않다는 지적이다. 금융위 업무보고와 관련해 정부 윗선에서도 신설사의 주주 구성에 우려를 표명하며 신중히 검토할 것을 당부한 것으로 알려져 기관투자자 확보가 인가신청의 분수령이 될 것으로 보인다.
◇ 전문인력 부재…요율산출은 누가?
더욱이 언더라이터 등 요율산출을 위한 전문인력 확보가 관건인 재보험산업에서 아직까지 제대로 된 인력을 확보하지 못한 것으로 알려졌다. 팬아시아리가 확보한 인력은 대부분 증권업계 출신의 투자전문가들과 재보험 물량을 중개하는 대리점 출신이다.
코리안리가 신생 재보험사의 설립을 꺼리는 것도 자사의 우수한 전문인력들이 유출될까 우려하기 때문인데, 국내 전문적인 언더라이터들은 현재 인력풀이 매우 협소한 것으로 알려졌다. 더욱이 신생사라는 점과 높은 연봉을 지급할 수 있는 안정적인 재무상황이 파악되지 않은 상태라 전문인력 확보가 쉽지 않을 전망이다.
재보험사 설립을 위한 가장 중요한 두 축인 투자자금과 인력확보에 어려움을 겪으면서 초기 성사가능성이 높다는 평가는 수그러들고 반대로 사실상 출범이 어려울 것이란 평가가 대두되고 있다. 당초 3월말로 거론되던 예비인가 신청이 4월 중순에서 4월말로 미뤄지다 현재는 예비인가 신청에 대한 언급이 아예 되지 않고 있어 기관투자자 유치 및 전문인력 확보 등 인가준비가 순탄치 않음을 반증하고 있다는 것.
[설립 후] - 제2 재보험사 설립…국내 재보험 시장 판도변화 가져오나
◇ 국내 재보시장 ‘정체기’
제2 재보험사가 설립된다고 해도 국내 재보험 시장 먹거리가 좋지 않다는 점이 문제로 지적된다. 팬아시아리는 코리안리가 소화하지 못하는 국내물량을 소화해 해외수지 역조를 막겠다는 계획인데, 당국과 업계 모두 회의적인 시각을 보내고 있다.
국내 재보험 시장은 제조업의 저성장 영향으로 재보험 필요성이 높은 기업성 일반보험 성장세가 지속적으로 둔화되고 있으며, 우량한 기업성 보험 대신 비우량 가계성 보험 인수를 확대할 경우 수지악화 가능성이 상존하고, 원보험과 달리 현금유입이 낮아 운용자산 및 투자수익 규모가 작다는 면에서 재보험산업의 수익성 확보가 더욱 어려워지고 있는 추세다. 더욱이 원수사들이 자기자본 확대를 통해 담보력을 강화하고 보유량을 늘리면서 재보험 시장은 성장정체를 보이고 있다.
◇ 재보시장 발디딜 곳 있나? 담보력 의문에 RG사태 우려도
이 외에 뮌헨리, 스위스리 등 총 8개의 세계적인 재보험사와 40여개의 글로벌 중개사들이 국내 시장에 진출해 영업을 하고 있는 만큼 경쟁이 심화돼 재보험 시장이 포화상태에 진입했다는 분석도 이어진다. 때문에 신생 재보험사가 시장에 뛰어들어 먹거리를 찾기 쉽지 않다는 의미다.
게다가 신생 재보험사가 설립된다고 해도 담보력이 약하고 신용도가 낮다는 점에서 실제 출재할 원수사들이 많지 않을 것이란 회의적인 시각도 있다. 업계 한 관계자는 “현재도 코리안리 이외에 여러 해외 재보험사에 출재를 하고 있기 때문에 사실상 재보험사가 생기는 것은 큰 문제가 아닌데, 팬아시아리가 출범한다고 해도 담보력과 신용도가 낮아 출재할 회사가 있을지는 의문”이라고 말했다.
업계 한 고위 관계자는 “원수사들이 코리안리를 통해 출재를 하는 것은 코리안리가 해외에 안정적인 네트워크를 가지고 있어 대형사고 발생시 보험금 미지급으로 인한 분쟁발생 가능성이 낮기 때문인데, 신생사의 경우 검증된 바가 없기 때문에 보험사들이 출재를 꺼려 초기에는 브로커 영업만 가능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팬아시아리가 국내 물건을 인수한다고 해도 담보력이 약하다는 점에서 소량만 보유하고 이를 다시 재재보험 형태로 해외로 출재할 것이기 때문에 주장하는 것처럼 해외수지 역조를 막는 효과도 거의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재재보험 출재에 따른 해외 네트워크가 부실할 경우 자칫 ‘베스트리’나 ‘RG보험 사태’를 초래할 수 있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공통된 지적이다.
당국 관계자 역시 “현재 재보험 시장에 대한 진입장벽이 없어 인가조건에 맞으면 재보험사 설립이 가능할 것이지만 이미 세계 유수 보험사들이 들어와 영업을 하는 만큼 국내 재보험에 대한 공급은 충분한 상태”라며, “추가로 재보험사가 꼭 필요한 것은 아니며, 재보험 수지 역조를 방지한다는 설립 취지 역시 자본금 규모만봐도 크게 개선될 수준은 아니다”고 말해 재보험 시장의 판도변화에는 별다른 변화를 주지 못할 것으로 점쳐진다.
- 찬반양론 거세…공정경쟁 vs 부실위험
그럼에도 불구하고 재보험 시장의 장기적인 발전을 위해서는 제2, 제3의 재보험사 설립을 통해 경쟁체제가 이루어져야 한다는 지적도 여전히 우세하다. 업계 한 전문가는 “독과점이 아니라고는 하지만 전체 시장의 60% 이상을 차지한다는 점에서 이미 독과점이라고 할 수 있다”며, “당장 큰 영향을 미치지 못하더라도 장기적으로 경쟁체제가 필요한 것은 사실”이라고 말했다. 이어 “제2 재보험사 설립시 사업성이 높지 않다는 판단이 지배적인데 FTA 등을 통해 수출 물동량은 경제규모에 비례해 늘어날 것이기 때문에 분명히 성장성은 있다고 본다”고 말했다.
코리안리 역시 팬아시아리가 영업에 타격을 줄 수 있을 것으로 보지 않기 때문에 건전한 경쟁 차원에서는 새로운 재보험사의 설립이 긍정적이라는 입장이다. 그러나 준비되지 않은 사업자가 시장에 나설 경우 자칫 재보험 시장의 부실을 불러올 수 있다고 주장한다. 코리안리 관계자는 “신설사가 초기 영업을 위해 적자요율을 책정할 경우 요율경쟁이 붙어 국내 재보험 시장의 동반부실 가능성이 있으며, 이는 국내 재보험 시장의 붕괴와 함께 거대 자본을 바탕으로 한 해외 재보험사들의 시장장악을 초래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실제 호주나 이탈리아의 경우 토종 재보험사들이 요율경쟁으로 시장지위를 상실하면서 해외 재보험사들이 70% 이상의 시장을 점유하고 있다. 국내 재보험사들이 요율주도권을 상실하면 국내 보험요율이 급등하는 등의 문제가 발생할 가능성이 높은데, 국내 시장의 60%를 차지하고 있는 코리안리 역시 뮌헨리나 스위스리에 비하면 자본규보가 30배 이상 차이나기 때문에 적자요율 경쟁에 들어갈 경우 단기간에 자본잠식에 빠질 가능성이 크다. 반면에 해외 재보험사들은 자본이 큰 만큼 적자경쟁에 들어서면 장기간 버틸 여력이 충분하다.
- 재보험 리스팅제도…신용평가 등급 걸림돌
한편, 금융당국은 재보험거래의 건전성 제고를 위해 현재 재보험사 리스팅 제도를 운영하고 있는데, 일정수준의 재무건전성 기준과 국제적으로 인정받는 신용평가기관(국내 신용평가 일부 포함)의 최근 3년 이내 신용평가 등급이 투자 적격일 경우에만 리스트에 올려 재보험 영업을 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즉 아무런 거래 관계가 없는 신생 재보험사의 경우 제대로 신용평가 등급을 받을 수 없어 출범을 해도 당장 재보험 영업이 불가능할 수도 있다.
국내 신용평가사 한 관계자는 “신설사 평가는 평가자료가 없는 만큼 평가가 힘든데, 모기업에서 분사하거나 개인사업자가 법인을 바꾸는 경우에는 모기업이나 법인의 신용도에 따라 평가되지만 그렇지 않을 경우 ‘B-’등급(회사마다 차이가 있다)을 중간값으로 잡고 플러스와 마이너스를 따진다”고 말했다.
금융위에서 인정하는 국내 신평사들의 투자적격 최소등급이 ‘A-’인 점을 따져보면 실질적으로 재보험 리스트에 오를 수 없다는 얘기가 된다. 인가요건을 갖춰 출범을 한다고 해도 정작 영업이 어려울 수 있다는 뜻이다. 업계 관계자는 “재보험은 국내 산업의 최종 안전판의 역할을 한다는 점에서 문제가 발생할 경우 보험뿐 아니라 전체 산업에 미치는 영향이 커 설립을 보다 엄격하고 특별히 관리해야 한다”며, “긍정적인 부분과 우려점이 함께 부각되고 있는 상황에서 시장에 나와 부실이 없도록 당국이 인가단계부터 꼼꼼히 살펴봐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 해외 주요 재보험사 담보력 비교 〉
- 자기자본 2013년, 보유보험료 및 담보력 2012년 기준.
- 환율 5월 2일 1030.5원 기준.
- 뮌헨리, 스위스리, 하노버리, 글로벌 합산 수치 (S&P ‘Global Reinsurance Highlights 2013’)
김미리내 기자 pannil@fntime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