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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수첩] 가격은 바꿔도 가치는 바꿀 수 없다

양현우 기자

yhw@fntimes.com

기사입력 : 2026-07-20 00:00

부실기업 퇴출에 긴장한 코스닥 상장사
주식병합에 사명 변경까지 생존 안간힘

▲ 양현우 기자

▲ 양현우 기자

[한국금융신문 양현우 기자] 중국 전통 예술인 ‘변극’은 찰나의 순간에 배우의 가면이 바뀌며 관객들의 탄성을 자아낸다. 화려한 변검술 뒤에 숨은 배우의 얼굴을 찾아내기란 쉽지 않다. 최근 코스닥시장에서 벌어지는 광경을 보고 있으면, 마치 무대 위에서 쉴 새 없이 가면을 바꿔 쓰는 변극 한 편을 보는 듯 묘한 기시감이 든다.

상장폐지라는 코스닥 퇴출 칼날이 목전에 닥치자, 한계기업들이 생존을 위한 ‘변검술’을 시작했다. 이들은 주식을 합쳐 숫자를 부풀리고(주식병합), 묵은 적자를 장부상에서 털어내기(결손금 보전)도 한다. 더 나아가 각광받는 테마인 인공지능(AI)으로 사명을 갈아끼우기도 한다. 방법은 제각각이지만, 그들의 목적은 단 하나다. 바로 ‘상장 유지’다. 무대 위에서 어떻게든 살아남기 위함이다.

한국거래소가 이달 1일부터 시가총액과 동전주 규제를 대폭 강화하며 한계기업들을 벼랑 끝으로 내몰자, 이들의 움직임은 더욱 다급해졌다. 변극의 배우가 더 현란한 몸짓으로 관객을 현혹하듯, 기업들은 더욱 기발한 꼼수를 빚어내며 감시의 눈을 피하려 안간힘을 쓰고 있다.

실제 코스닥시장 곳곳에서 ‘가면 교체’ 작업이 한창이다. 38년 역사의 전통 제약사 조아제약은 최근 5대 1 액면병합을 결정했다. 병합을 통해 주가를 높여 ‘동전주’에서 벗어나겠다는 계산이다. 주가는 5배로 커지고, 발행주식수는 3098주에서 620만 주로 줄어든다.

하지만 주가만 오를 뿐, 시가총액은 그대로다. 내년 강화될 300억 원 기준을 맞추기에는 조아제약의 시총은 16일 기준 194억 원으로 턱없이 부족하다. 조아제약은 주식병합 목적으로 기업가치 제고를 내세웠다. 물론 주가가 오르는 것이 기업가치 제고와 맞닿아 있지만, 이번 주식병합은 그보다 상장 유지를 위한 고육지책에 가깝다.

모아라이프플러스는 2대 1 주식병합 카드를 꺼내 들었지만, 기대와 달리 주가는 400원 대로 밀렸다. 병합을 해도 1000원 선을 지킬 수 있을지 장담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여기에 13회차 전환사채 납입일이 연기되는 재무적 리스크도 존재한다. 회사는 현재 화장품과 건강기능식품 유통으로 운영되고 있고, 본업인 바이오 신약 매출은 사실상 전무한 상태다.

가장 극적인 변화는 피플바이오다. 이들은 주식병합과 결손금 보전은 물론, 사명까지 ‘타임엑스 AI’로 바꾸겠다고 선언했다. 바이오 기술특례 상장사라는 정체성을 지우고, 주식시장 핵심 테마인 AI 기업으로의 이미지 변신을 꾀한 것이다. 사측은 AI 사업 확대를 위한 포석이라고 설명하지만, 상장 유지 부담이 극대화된 상황에서 재무구조 개선과 테마 편승을 동시에 노린 전략이 아니냐는 시선을 피하기 어렵다.

물론 주식병합이나 사명 변경 자체가 잘못은 아니다. 생존이 급박한 상황에서 경영진이 선택할 수 있는 전략적 선택지는 한정적일 수밖에 없다. 기업이 생존해야 혁신도 있고, 내일의 신약도 있는 법이다. 그러나 물음표는 ‘순서’와 ‘방향’을 향하고 있다.

상장사로서의 책무는 규제를 피하는 기술을 익히는 것이 아니라, 시장과 맺은 약속인 ‘기업가치’를 키우는 것이다. 하지만 위기 앞에 선 이들은 정공법 대신 꼼수를 택했다. 혁신으로 정면 돌파하기보다 규제의 틈새를 비집고 들어가는 데 에너지를 쏟아붓는 지금의 모습은 상장사로서의 자격을 의심케 한다.

상폐 위기에 몰리기 전 본업에 집중해 경쟁력을 쌓아두었다면 지금에 와서 생존하기 위한 몸부림을 치지 않아도 됐을 것이다. 상장사가 규제를 핑계로 ‘주가 방어’에만 매달리는 것은 사실상 경쟁력이 없다고 인정하는 것과 다름없다.

이제라도 가면 뒤에 숨은 본연의 얼굴을 시장 앞에 투명하게 공개해야 한다. 지금 필요한 건 곪아터진 부실을 도려내고, 본업의 경쟁력으로 시장의 신뢰를 회복하는 ‘외과적 수술’이다.

변극의 막이 내린 뒤 무대 뒤에서 웃고 있을 자는 누구일까. 실적으로 경쟁력을 증명하지 못한다면, 시장은 언젠가 그들에게 퇴장 명령을 내릴 것이다.

양현우 한국금융신문 기자 yhw@fntime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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