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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강해 파란손해사정 대표, 직원 1500명을 책임지는 뚝심 경영 20년 외길 끝에 쓴 ‘일자리의 파란’

장종회 기자

jhchang@fntimes.com

기사입력 : 2026-09-02 14:37

최강해 파란손해사정 대표

최강해 파란손해사정 대표

[한국금융신문 장종회 기자] 서울 영등포의 한 지식산업센터. 파란손해사정 사무실에는 요즘도 빈자리를 찾기 어렵다. 1,500명에 달하는 직원이 매일 이 사무실과 전국 지사를 오가며 보험금 청구 서류와 씨름한다. 손해사정업계에서 이만한 규모로 사람을 뽑는 회사는 흔치 않다. 그 중심에는 스무 해 넘게 이 회사를 이끌어온 최강해 대표가 있다. 그는 스스로를 “운이 좋았을 뿐”이라고 낮춘다. 그러나 해마다 채용 인력을 늘려온 20년의 기록은 운으로만 설명하긴 힘들다.

900명 중 단 1명, 운명처럼 들어선 길

지난 1993년 최강해 대표는 새마을금고중앙회에 입사했다. 대학 시절 전공은 보건행정학. 입사 2년 뒤인 1995년, 경남 창원 지점에서 근무하던 그에게 서울 본사 인사팀에서 연락이 왔다. 새마을금고가 보험 상품을 팔기 시작하면서 진단서와 의무기록을 심사할 직원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전국 900여명의 인사 기록을 다 뒤졌는데 보건계열 전공자는 그가 유일했다. 서울 근무 요청에 그는 주저 없이 짐을 싸 보험금 청구 심사 업무를 10년 가까이 맡았다. 2002년에는 회사의 특별 승진 약속을 철석같이 믿고 손해사정사 3종 대인 자격증까지 땄다. 정작 자격증을 땄지만 “흔하다”는 한마디로 외면받자 2005년에 그는 사표를 던졌다. 그 길로 한 손해사정법인에 합류해 보험금 심사에 매달렸다.

꼴찌 업체 인수해 업계 1위로 키우다

파란손해사정은 최 대표가 새마을금고를 나온 해에 다른 사람의 손에서 시작됐다. 지인이던 창업자가 암 투병 끝에 그에게 회사를 맡아 달라고 간곡히 부탁하자 고민 끝에 받아들인 것. 자산과 부채를 통째로 넘겨받는 방식이었다. 회사 인수 과정을 전하는 말끝은 무거웠다. 그가 받은 건 회사만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창업자의 결단을 이어 회사를 키워야 하는 부담을 함께 짊어졌다.

인수 초기 파란손해사정은 업계에 이름도 잘 알려지지 않았다. 당시 손해사정업체는 전국에 50~60곳, 파란은 그 가운데서도 ‘꼴찌’였다. 영업 담당자도 없어 그는 직접 발로 뛰었다. 보험사 사무실 앞에서 담당자를 무작정 기다리다 “복사할 거 있으면 해드리겠다” “팩스 보낼 거 있으면 달라”며 말을 붙였다. 문전박대는 예사였다. 그렇게 받은 일감 하나를 완벽하게 처리해내고 옆자리 담당자를 소개받는 식으로 일을 늘려 나갔다. 한 팀 전체를 고객으로 만드는 데 꼬박 6개월이 걸렸다. “뭐든 열심히 하면 된다”는 그의 확신은 그때 굳어졌다.

시장도 그의 편이었다. 실손보험과 장기질병보험 판매가 폭발적으로 늘던 시기와 맞물렸다. 밀려드는 청구 건을 감당할 손해사정업체가 필요한 보험사가 늘면서 성장을 거듭했다. 현재는 전국적으로 100곳 넘는 손해사정업체 가운데 단일 법인으로 파란손해사정이 첫손에 꼽힌다.

52명 직원이 1,500명이 되기까지

최 대표가 회사 성장 과정에서 가장 뿌듯하게 생각하는 것은 외형이나 이익이 아니다. 사람이다. 그만큼 채용 성장세가 도드라진다. 2007년 인수 당시 52명이던 직원이 이듬해 100명을 넘어섰고 그 뒤로도 거의 매년 급증해 이젠 1,500명을 웃돈다.

지난 2010년에는 중소기업으로선 드물게 고용 창출 우수기업에 선정됐고 2021년에는 고용노동부에서 일자리 창출 철탑산업훈장까지 받았다. 2023년부터는 전체 근무 인원이 1,000명을 넘어섰고 지난해부터는 1,500명대를 유지 중이다.

파란손해사정 채용의 결은 남다르다. 특성화고 졸업생을 대거 채용해온 회사로 통하는 것만 봐도 확연하다. 매년 20~70명가량을 고용한다. 특성화고에는 파란손해사정이 채용 큰손인 셈이다. 장애인 고용도 적잖다. 지난 2010년부터 전화 응대가 필요 없는 모니터 자료 입력 업무에 소수를 채용해왔는데 이젠 매년 10명 안팎을 뽑는다.

최 대표는 장기 근속을 독려하는 데도 진심이다. 근속 10년을 채우면 금 10돈을 지급한다. 치솟은 금값을 감안하면 적잖은 인센티브다. 손해사정업은 특성상 프로젝트 단위로 일이 돌아가다 보니 이직이 잦다. 비교적 근속 기간이 긴 파란손해사정도 평균 3~4년이다. 시장이 커지면서 1~2년 경력을 쌓아 조건이 좋은 곳으로 옮겨가는 구조다.

그런 상황에서도 파란손해사정은 10년 이상 근속자가 28명에 달한다. 업계에선 파란손해사정을 두고 “사관학교”라고 한다. 이 회사를 거쳐 창업하거나 보험사에 취직한 전문가들이 업계 곳곳에 퍼져 있어서다.

코로나에도 웃은 파란, 이제는 AI

파란손해사정에 성장 가도만 있었던 건 아니다. 2010년대 초반 최 대표는 다른 업체의 화재·특종사업 부문(건물 화재, 배상책임 등을 다루는 분야)을 통째로 인수했다. 직원 40명 규모의 사업이었다. 결과는 낭패였다. 4년가량 운영했지만 담당자들이 하나둘 회사를 떠나면서 권리금과 유지비만 쓴 채 사업을 접어야 했다. 최 대표의 첫 실패였다.

그는 사업 철수를 보험사에 일일이 통보하고, 미결 건 이관, 조직 정리까지 떠안으면서도 좌절하지 않았다. 마음을 다잡고 다시 현장으로 나갔다. 경영을 챙기면서 직접 조사 건을 들고 뛰었다. “일로 풀었죠. 포기할 시장은 아니었으니까요.” 5~6년 전부터 그는 사업부를 다시 만들어 화재·특종사업 부문 일을 재개했다.

2020년 코로나19가 덮쳤을 때도 파란손해사정은 흔들리지 않았다. 첫 석 달은 어려웠다. 청구 건수가 한 달에 20%씩 줄었다. 이대로 가면 적금을 깨고 팔 것을 다 팔아도 6개월이 한계라는 진단을 받았다. 하지만 5개월째에 반전이 시작됐다. 병원에 가지 못했던 수요가 한꺼번에 터져 나왔고, 건강에 예민해진 소비자가 늘면서 청구 건수는 폭증했다. 파란손해사정은 그해 업계 최상위 성장률을 기록했다.

최 대표는 지난해 말 새로운 승부수를 던졌다. AI 기반 의료문서 자동판독 시스템 구축에 나선 것이다. 보험금 청구 서류를 자동처리하는 기술이다. AI 파트너로 업스테이지를 잡았다. I생명과는 월 500건 규모로 AI 처리를 이어가고, N손해보험과는 지난 4월부터 농작물보험 서류를 OCR(광학문자인식)로 읽어내는 작업을 시작했다.

하반기에는 새로운 고객 보험사가 추가될 예정이다. 처리 건의 70%가량을 사람 손을 거치지 않고 AI가 완벽히 읽어낸다. 나머지 30%는 증빙자료가 구겨지거나 음영이 짙어 사람이 일일이 확인해야 할 몫이다.

최강해 파란손해사정 대표

최강해 파란손해사정 대표

최 대표는 다음 승부를 위해 이미 20억원 이상의 투자를 진행했고 추가로 대당 수억원에 달하는 엔비디아 H200 고성능 GPU를 구매해 업무에 투입했다. 한 걸음 더 나아가 국내 NPU(신경망처리장치) 스타트업과 손잡고, 파란손해사정만의 K-소버린AI(한국형 AI 주권 독립) 구축 기초를 다지고 있다.

AI 학습을 위한 데이터 확보는 여전히 난제다. 개인정보보호법 탓에 학습용 의료기록을 구하기가 쉽지 않아서다. 그는 한동안 친인척과 지인들에게까지 직접 진료기록을 부탁하고 다녔다. “사돈의 팔촌까지 동원했죠. 그래도 다들 마다하지 않고 보내줘서 고마웠습니다.”

환갑 앞둔 CEO의 다음 승부수

환갑을 코앞에 둔 최 대표는 지금 국내 손해사정 시장의 한계를 냉정하게 직시하고 있다. 매출 1,000억원, 직원 2,000명 문턱에 섰지만 AI와 로봇의 인력 대체, 고령화로 추세가 꺾일 가능성이 적잖아서다. 그래서 눈을 밖으로 돌린다. 최근 동남아 보험 시장을 유심히 살피고 있다. 베트남, 인도네시아 등이다. 평균 연령이 30대 전후로 모바일에 익숙한 세대들이 다수인 나라들이다. 경제성장과 소득수준 향상에 따라 시장 진입 타이밍이 무르익고 있다는 게 최 대표의 판단이다.

20여년 전 보험사 사무실 문 앞에서 “한 건만 달라”고 매달리던 그는 이제 1,500명 고용을 책임지는 대표다. 실패를 딛고 코로나를 통과해서 이제는 AI로 손해사정 업계의 판을 흔들고 있다.

요즘 파란손해사정 사무실에는 주말에도 개발자가 고향 집에 내려가지 않은 채 야근하며 코드를 짜고 데이터 검증 작업에 여념이 없다. 덕분에 파란손해사정의 AI 시스템은 매일 업데이트되고, 청구 데이터는 실시간으로 흘러와 분류·분석된다. 최 대표와 직원들이 일궈낸 숫자들이 쌓여 ‘최초’라는 수식어의 무게를 증명해내면 업계에는 변화가 가속될 것이다.

현장을 직접 발로 뛰던 최 대표의 열정 가득한 목소리가 이제는 엔비디아 GPU 서버 돌아가는 소리로 바뀌었을 뿐이다. 파란손해사정은 오늘도 쉴 새 없이 돌아간다. 최강해라는 이름 앞에 입지전적이라는 수식어를 붙여도 전혀 어색하지 않은 건 지금도 새로운 변화를 모색하는 그의 열의 때문이다.

장종회 한국금융신문 기자 jhchang@fntime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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