핵심은 “자본을 얼마나 공급하느냐”에서 “자본이 어디로 흐르게 설계하느냐”로의 전환이다.
“종투사 중심 공급 모델, 구조적 피로 누적”
12일 금융투자업계에 따르면 그동안 정책 당국이 추진해온 모험자본 공급 구조는 종투사 중심이었다. 일정 규모 이상의 자기자본을 보유한 대형 증권사에 혁신기업 투자 역할을 부여하고, 이를 통해 벤처·스타트업으로 자금을 유도하는 방식이었다.하지만 시장 내부에선 이 모델의 작동 효율성에 대해 의문이 꾸준히 제기돼 왔다. 가장 큰 문제는 ‘의무는 있으나 실행이 어려운 구조’라는데 있다.
투자 여력은 충분하지만, 실제, 투자할 만한 초기 단계 기업 발굴에 한계가 있다는 점이 반복제기 됐다. 내부 심사 체계에 의존한 딜 소싱 구조는 정보 접근 비용이 높고, 위험 대비 성과를 예측하기 어렵다는 점에서 보수적으로 작동할 수밖에 없다.
종투사 중심 모델은 결국 “자본은 있으나 투자처를 찾지 못하는 역설”을 완전히 해소하지 못한 채 운영돼 왔다.
“플랫폼 등장, 공급 의무를 ‘검색 구조’로 전환”
이 같은 한계를 보완하고자 금융당국과 업계가 주목한 것은 ‘모험자본 플랫폼’이다. 금융감독원과 금융투자협회가 중심이 돼 논의를 주도하고 있다. 혁신기업과 증권사·VC 간 정보 비대칭을 줄이는 것이 핵심 목표다.이번 플랫폼은 단순 정보 게시 시스템이 아닌 투자 가능한 기업과 자금 공급자를 데이터 기반으로 연결하는 ‘매칭 인프라’로 설계된다.
특히 기업 정보, 투자 수요, 재무 데이터가 통합되면서 기존의 개별 기관 중심 딜 소싱 구조가 플랫폼 중심 검색 구조로 전환되는 점이 핵심이다.
증권업계에선 이를 두고 “공급 의무를 플랫폼 안에 흡수하는 구조 변화”로 해석한다. 즉, 종투사가 개별적으로 투자 대상을 찾아다니는 방식에서, 플랫폼이 제공하는 데이터 풀 안에서 선별하는 방식으로 무게 중심이 이동한다는 의미다.
“딜 소싱 권력 이동…IB 기능의 재편 압력”
증권사 입장에서 가장 민감한 변화는 딜 소싱 구조 변화다. 기존에는 IB 부문이 네트워크, 리서치, 기업 접촉을 통해 투자 기회를 발굴하는 것이 핵심 기능이었다.하지만 플랫폼이 본격화될 경우, 초기 딜 발굴 단계는 점차 외부화되고 IB는 구조화와 실행 중심으로 역할이 재편될 가능성이 크다.
이는 단순한 업무 변화가 아니라 권력 구조의 이동이다. 누가 ‘투자 기회를 먼저 발견하느냐’가 아니라, 누가 ‘플랫폼에서 가장 효율적으로 투자 기회를 선별하고 구조화하느냐’가 경쟁 기준이 된다.
자산운용사 역시 영향권에 들어간다. 기존에는 프라이빗 딜 영역에서 네트워크 기반 정보 우위가 중요했다면, 앞으로는 데이터 기반 스크리닝 역량이 핵심 경쟁력으로 부상할 가능성이 높다.
“종투사 모델의 대체인가, 보완인가”
다만 업계에서는 이번 플랫폼을 종투사 모델의 단순 대체로 보기는 어렵다는 시각도 존재한다. 오히려 구조적 보완 장치에 가깝다는 평가다.핵심 이유는 명확하다. 종투사 모델의 본질적 문제는 자본 부족이 아니라 정보 비대칭과 발굴 비용이었다는 점이다. 플랫폼은 이 영역을 직접적으로 겨냥한다.
즉, 종투사에게 부여된 ‘공급 의무’ 자체를 없애는 것이 아니라, 그 의무가 실제 투자로 이어지지 못하게 만든 병목을 제거하는 역할에 가깝다는 해석이다.
플랫폼 운영을 맡은 네이버파이낸셜이 데이터·검색 인프라를 담당하면서 금융 정보의 표준화와 접근성이 크게 개선될 경우, 투자 판단의 초기 비용은 구조적으로 낮아질 수 있다.
“결론: 모험자본 시장, 규제에서 데이터로 이동”
증권가의 시각에서 이번 변화의 본질은 분명하다. 모험자본 공급 체계가 ‘규제 기반 할당 모델’에서 ‘데이터 기반 매칭 시스템’으로 이동하고 있다는 점이다.과거에는 정책이 자금 흐름을 설계했다면, 이제는 데이터 구조가 자금 흐름을 유도하는 방향으로 전환되고 있다.
다만 최종 성패는 플랫폼이 단순 정보 집적을 넘어, 실제 투자 의사결정 과정까지 얼마나 깊게 연결될 수 있는지에 달려 있다. 정보가 모이는 수준을 넘어, 투자 행동을 바꾸는 수준까지 진화할 수 있을지가 관건이다.
결국 종투사 중심 모험자본 실험은 지금, 플랫폼이라는 새로운 변수를 통해 다시 한 번 구조 재편의 시험대에 올라 있다.
김희일 한국금융신문 기자 heuyil@fntime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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