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은행이 최대 18조3000억원 규모의 영업자산을 시중은행으로 이관하기 위한 구체적인 시나리오를 마련한 것으로 확인됐다. 산업은행은 우량·성숙 여신과 관련한 내부적인 검토를 위한 차원일 뿐 시중은행에 넘기기 위한 것이 아니라고 선을 그었다.
17일 국회 기획재정위원회 소속 김주영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입수한 산은의 ‘우량·성숙단계 여신 판별기준 시나리오’ 문건에 따르면 산업은행은 기업 신용등급과 업력, 상장 여부, 거액여신 등을 감안해 민간 이관 대상 선정기준을 마련하고 우량·성숙단계 여신 이관에 따른 시나리오별 영향도를 분석했다.
산은은 이 가운데 신용도가 최고 수준인 알짜 회사만을 골라 최대 18조3000억원에 달하는 영업자산을 민간은행에 넘길 수 있다는 시나리오를 세웠다.
이관 시나리오는 총 세 가지다. 시나리오별 이관 대상 선정기준은 ▲신용등급 AA이상, 업력 10년 이상, 상장, 500억원 이상의 거액여신 ▲신용등급 AA이상, 업력 10년 이상 ▲신용등급 AA-이상, 업력 10년 이상 등으로 정했다.
시뮬레이션 결과 첫 번째 시나리오에는 현대제철, LG유플러스, LG화학, 현대자동차, 삼성물산, LG전자, 기아 등을 비롯한 국내 대기업 9곳과 중견기업 1곳 등 19개사가 해당됐다. 여신 규모는 총 5조3000억원이다.
두 번째 시나리오에는 16개 대기업과 25개 중견기업, 14개 중소기업 등 87개사가 포함됐다. 여신 규모는 9조7000억원이다. 세 번째 시나리오에는 SK하이닉스, 한화솔루션, GS칼텍스, CJ제일제당, LG이노텍 등 33개 대기업과 94개 중견기업, 63개 중소기업 등 226개사가 들어갔다. 여신 규모는 18조3000억원으로, 세 시나리오 중에서 가장 컸다.

김 의원실에 따르면 산은 외에 기업은행도 IBK경제연구소를 비롯한 전체 부서를 대상으로 ‘정책금융 역할재편’ 관련 문건 작성을 주문했다. 금융위원회도 최근 산은을 비롯한 국책은행이 보유한 우량·성숙 여신을 정책금융협업 우수 시중은행에 이관하는 방안이 담긴 ‘우량·성숙기업 여신의 시중은행 이관 프로세스 확립' 문건을 마련한 바 있다.
김 의원은 “공공기관의 운영에 관한 법률 제1조는 분명히 공공기관의 자율경영과 책임경영을 명시하고 있지만, 현재 진행되고 있는 윤석열 정부의 공공기관 혁신의 내용을 보면 이미 법률 조항은 사문화됐다”며 “무책임하고 대책 없는 국책은행 우량여신 매각은 공공기관 민영화를 넘어 우리 경제의 안정성을 포기하는 것과 다름없다”고 지적했다.
이어 “국책은행은 민간의 취약점을 보완하고 자금을 수혈하는 기능을 담당하고 있다”며 “국책은행의 규모와 안정성이 떨어지면 국제사회에서의 우리나라 경제 안정성이나 신용도 평가에도 악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다. 국책금융기관을 무력화시키는 민영화 정책을 당장 중단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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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융위는 “국책은행의 우량거래처를 시중은행에 이관한다는 내용은 전혀 사실이 아니다”라는 입장이다.

산업은행이 작성한 '우량·성숙단계 여신 판별기준 시나리오' 문건./자료=김주영 의원실
한아란 기자 aran@fntime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