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차 추경 때처럼 홍남기닫기

경제 수장(경제 부총리)이 3차 추경으로 마련한 돈이 있다면서 이것저것 따져가면서 결정하자고 했으나 국민을 위한다는 '코스프레'를 하고 싶은 정치인들은 시간 없다고 했다.
■ 여당 초선의원의 경제수장 나무라기
정치의 경제정책에 대한 압도적 우위를 보여주는 상징적 사건 중 하나가 지난 1일 국회 예산결산특별위원회가 열렸을 때 일어났다.
당시 초선인 김원이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홍남기 경제부총리는 재난지원금이 철없다는 의견에 동의한 것에 대해 국회에 유감을 표명하라"고 다그쳤다.
김 의원은 "재난지원금에 대해선 여야 모두가 필요성을 동감하고 있다. 어제 이재명 지사의 전국민 재난지원금에 대해 야당 의원이 철이 없는 것 아닌가라고 하자 홍남기 부총리가 이에 동의한다고 했다"면서 부총리를 비난했다.
같은 편(?)이지만 초선 의원이 정부 경제정책 수장을 대놓고 비난하는 모습에서 상당한 위화감이 느껴졌다.
홍남기 부총리의 야당 의원 질문에 대한 '소극적인' 답변에 대해 여당 의원이 옳지 못한 태도라면서 핏대를 올리는 모습에서 2/3에 가까운 의석을 거머쥔 여당의 무뢰가 느껴졌다.
■ 신뢰를 상실한 경제수장의 말
정치가 일방적으로 경제정책을 좌지우지하게 되면 경제 수장의 면이 서지 않는다.
홍남기 부총리는 2차 추경에 이어 4차 추경에서도 '거짓말'을 하게 될 가능성이 커졌다.
지난 4월15일 총선을 앞두고 여당의 '재난지원금 지원' 공약은 잘 먹혀 들었다. 이후 여당이 압승을 거둔 뒤 2차 추경이 급물살을 탄 바 있다.
당시 부총리는 추경에 조심스러운 모습을 보였으나, 분위기가 '재난지원금 지원' 쪽으로 흘러가자 '꼭 필요한 분들'에게 주자는 논리로 맞섰다.
하지만 결과는 알다시피 전국민에게 재난지원금을 지원하는 내용이었다. 이 과정에서 정부의 인기가 올라갔다.
1차 추경에서 적자국채 발행규모는 10.3조원이었으나 기재부는 2차 '재난지원금 원포인트' 추경을 하더라도 적자국채가 없을 것이라고 했다.
하지만 총선 승리 후 여당의 자신감이 배가된 뒤 4월 하순 2차 추경에 3.6조원 가량 적자국채를 발행하는 것으로 정해졌다.
이번 4차 추경(2차 재난지원금)을 앞두고도 큰 틀에서 비슷한 그림이 만들어지고 있다.
경제수장이 추경에 대해 조심스러운 모습을 보이지만, 정치의 힘에 계속 밀리는 상황이 이어지고 있는 것이다.
■ 먹히지 않는 '산수 좀 하고 따져보자'는 논리
8월 31일 국회 예산결산특별위원회.
추경을 주문하는 국회의원들의 목소리에 홍남기 부총리는 "내용도 상세히 안 듣고 무조건 4차 추경을 하라는 데엔 의견을 달리한다"고 말했다.
어차피 정치적으로 결정될 것으로 보였지만, 부총리의 단호한 답변엔 제법 결기를 느껴지기도 했다.
홍 부총리는 "4차 추경을 하라, 2차 재난지원금 주라고 하지만 정부는 재원과 효과를 짚어보지 않을 수 없다"고 했다.
무엇보다 아직 3차 추경이 편성된지 많은 시간이 지나지 않았고 '쓸 돈'이 남아 있는 상황에서 4차 추경을 밀어붙이는 분위기에 대해 곤혹스럽다는 태도를 보였다.
홍 부총리는 "3차 추경이 된 지 2달이 채 안 된다"면서 "확보된 (3차 추경 등의) 예산으로 지원 중이며, 추가 지원을 위해선 짚어봐야 한다"고 말했다.
이미 3차 추경까지 하면서 정부가 많은 빚을 낸 상태에서 아직 쓸 돈이 상당히 남아 있는 상황이고, 코로나19의 확산세가 불확실하다면 상황을 더 점검할 수 있다는 부총리의 항변이 더 논리적으로 다가 오긴 했다.
재정건전성이 급속히 악화되고 있고 추가로 어디에 돈을 쓸지 면밀히 검토하는 게 우선이다.
하지만 정치인들은 '시간 없다'면서 빨리 추경을 편성하라고 했다.
■ 어차피 정치가 결정한다
홍 부총리는 지난달 31일 "사회적 거리두기가 3단계까지 가서 경제가 셧다운 되면 추가 대책이 필요할 것"이라면서도 3단계 격상이 자동으로 4차 추경(2차 재난지원금)으로 연결되는 것은 아니라는 입장을 취했다.
부총리는 "(경제가 셧다운 되더라도) 과연 기존에 갖고 있는 재원으로 가능한지, 추가 재원이 필요한지는 검토해 봐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3차 추경이 35조원 규모이고 이 예산도 활용해서 대책을 이행 중에 있다. 긴급고용안정기금도 2.5조원 확보해줘서 1인당 150만원씩 주고 있다. 이건 1차 재난지원금보다 큰 효과를 낸다. 이미 확보돼 있는 예산과 추경재원으로 대책을 집행 중"이라고 했다.
코로나19 대책과 관련해 현재 확보한 자금을 사용해서 지원하고 있는 데다 힘든 계층에겐 현금 지원까지 하고 있는 상황인 만큼 무조건적인 4차 추경을 거론하지 말고 따져본 뒤 판단하자는 입장을 유지했다.
경제수장이 이런 식으로 나오자 일단 기재차관 역시 이 틀에 갖혀서 발언을 할 수 밖에 없었다.
장관을 대신해 국회에 출석한 안일환 기재차관은 9월 1일 '4차 추경을 하느냐'는 질문에 "3차에 걸친 추경에 따라 재원을 갖고 정책에 집중하고 있으며, 지금은 코로나 재확산 방역에 집중하고 있다"고 했다.
국회의원들은 4차 추경이 기정사실화 된 마당이 차관이 왜 그런 식으로 답변을 하냐면서 나무랐다.
안 차관은 의원들의 거듭된 질문에도 "코로나 확산 정도와 경제에 미치는 영향을 고려해서 결정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런 모습들을 보면서 혀를 차는 사람들도 있었다. 세상물정에 밝은 어떤 이는 어차피 자신들(국회의원)이 추경을 결정하면서 왜 '아랫것들'에게 묻고 따지는 척 하냐고 했다.
또 일각에선 기재부 역시 '결과를 알면서' 미래의 평가가 두려워 일부러 추경에 대해 조심하는 제스추어만 취하는 것 아니냐고 의심했다.
나름 합리적이었다거나, 나름 포퓰리즘에 저항하는 몸짓 정도는 취했다는 기록을 남기기 위한 행위일 뿐이라고 폄하하는 것이다.
■ 포퓰리즘(?)에만 몰두하는 정치와 정부
추경 문제와 관련해 정치인들 쪽을 보고 있자면, 다들 4차 추경 주장을 '대단한 애국 행위'인양 말하고 있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이번 21대 국회의원들 중엔 유독 자질시비에 휩싸인 사람들이 많았던 게 사실이다. 도덕적, 윤리적으로 문제가 있다는 평가를 받은 사람도 많았으며, 특별한 경력도 없고 유능하다는 보장도 없는데 '오야붕'에게 잘 보여서 뺏지를 달았다는 의심을 받은 이들도 많았다.
하지만 그들은 국회 개원 후 아주 단시간에 '재정전문가'의 반열에 올랐다. 뛰어난 학습능력을 겸비한 우리의 선량들은 마치 약속이라도 한 듯이 '추경은 한 시가 급하다'는 식으로 입을 모았다.
선량들이 선심 쓰는 것처럼 말하지만, 그들의 호주머니는 사실 빌 틈이 없다. 국채를 찍어서 마련하는 돈들은 다 국민들이 갚아야 하는 미래의 세금이다. 미래의 세금납부고지서로 국민들에게 내밀어지는 돈이다.
추경과 관련해 다른 의견을 가진 정치인을 찾는 게 쉽지는 않았다. 적어도 나라 곳간이 빠른 속도로 비어가고 부채가 급증하는 중이라면, 이를 걱정하는 사람도 많아야 한다.
반면 재정 관련 일을 했던 사람이나 금융시장 등에서 나라 살림살이를 우려하는 목소리가 꽤 나왔다.
기재차관 출신의 추경호닫기

그는 문재인 정부 출범 당시 국가채무비율은 36% 수준이었으나 임기 내에 51%로 15%p 높아진다고 지적했다.
추 의원은 "현 정부 들어 국가채무 증가 속도는 노무현 정부의 7%p, 이명박 정부의 5.8%p, 박근혜 정부의 3.4%p를 모두 합한 것보다 빠른 속도"라면서 "사상 최대 재정적자로 국가채무 1000조원 시대, 국민 1인당 채무액 2000만원 시대로 진입하게 됐다"고 했다.
정부의 과감한 재정정책이나 각종 뉴딜급 정책에 대해 비판론자들은 선심성 정책이 지속되면서 결국 성장잠재력의 추가 저하가 나타날 것이란 우려스런 시각들을 제시한다.
경제 체력 이상으로 빠르게 복지정책을 펼친 데 따라 결국 앞으로 복지의 질도 나빠질 것이라고 우려하는 사람도 많다.
한 때 GDP 대비 국가부채 '40%선'은 금과옥조처럼 여겨지기도 했다. 하지만 빠른 시간 내에 50%를 훌쩍 넘어갈 부채 수준에 대해 정부나 여당은 대답을 정해 놓았다.
너무 많이 들어서 귀에 딱지가 앉을 정도인 '다른 나라에 비하면 한국의 재정은 건전하다'는 말이었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가 터지고 얼마 지나지 않아 남유럽은 재정위기에 빠진 바 있다. 상당 부분 방만한 재정 운영이 가져온 비극이었다. 금융시장에서 밥벌이를 하는 한 직장인은 이런 말을 했다.
"우리 재정 당국과 정치인들은 남유럽 사례를 반면교사로 삼을 생각은 하지 않고, 오히려 다른 나라에 비해 '여유가 있다'는 요사스러운 말로 돈 쓰는 것만 정당화하고 있어요. 돈을 써야 할 때 쓰는 건 너무 당연하지만, 지금처럼 막무가내로 쓰는 건 분명 훗날 부메랑으로 돌아올 것이라고 봅니다."
자산운용사의 한 펀드매니저도 비슷한 말을 했다.
"야당 시절 재정건전성을 외치던 정부가 이제 버젓이 국가채무를 60%까지 끌어올리겠다고 하고 있어요. 같은 사람들 맞나요? 이쯤 되면 코로나를 핑계 삼아 막 가자는 것 아닌가요?"

자료출처: 정부
장태민 기자 chang@fntime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