낮보다 아름다운 부산의 밤을 걷다
부산하면 떠오르는 장소는 너무도 많다. 하지만 올 여름엔 가장 먼저 낭만의 문탠로드를 걸어보기로 한다. 바다 위로 떠오른 달구경하기에 참 좋은 달맞이길에 가면 아름다운 문탠로드가 있다.
문탠은 말 그대로, ‘달빛 쬐기’ 정도로 설명할 수 있겠는데, 때문에 이 길은 당연히 달빛 좋은 밤에 예쁘게 걸어야 한다. 왠지 달빛 아래 온 몸이 촉촉해질 것 같은 느낌이 든다. 문탠로드는 달맞이고개 중턱부터 시작된다.
도로 오른쪽 아래 숲으로 이어진 길을 따라 들어가면 하늘에서 달빛이 발아래에선 달 모양의 조명에서 은은한 빛을 쏟아낸다. 잘생긴 소나무와 잎 큰 팔손이나무와 그 아래 이름 모를 들꽃 잔뜩 핀 오솔길을 걷는다.
그렇게 낮은 언덕 몇 개를 오르고 내리길 반복하다 보면 고갯마루 해월정에 닿는다. 이곳에는 달맞이길의 상징이 된 예쁘고 멋스러운 카페들이 북적인다.
달빛 태닝하는 시간이 너무 짧아 아쉽다면 2.6km쯤을 더 걸어 송정해변과 맞닿은 구덕포까지 걸어도 좋을 일이다. 쏟아지는 달빛에 한바탕 샤워를 하고 나면 마음에서 은은한 꽃 내가 나는 느낌까지 받을 수 있다.
사실 부산은 다양한 얼굴을 가진 도시다. 오래된 골목에서 풍기는 아날로그적 풍경과 해안선을 따라 들어선 황금빛 마천루의 스카이라인이 어색하지 않게 어우러졌다.
해운대의 동쪽 끝 동백섬에서 광안리 방향으로 눈을 돌리면 신세기 미래도시의 이미지가 시원하게 펼쳐진다. 아찔한 높이로 우뚝 선 고층빌딩들은 곧 하늘을 찌를 기세다.
대부분 주거용 아파트들이라 해진 뒤 하나둘씩 불이 켜지는데 광안대교에 조명이 들어올 때 즈음이면 비로소 마린시티의 야경이 완성된다.
마린시티와 광안대교의 야경을 감상할 수 있는 곳은 동백섬 주차장 또는 바다 위 유람선 위에서다. 어렸을 적 봤던 SF영화에 등장하는 미래 도시와 너무 흡사해 볼 때마다 감탄스러운 풍경이다.
부산을 대표하는 또 하나의 얼굴이 된 마린시티는 어느 날부터 부산 미식가들의 집결지로도 떠올랐다. 근사한 분위기의 노천카페들과 식당들이 즐비해 이른 저녁부터 거리 전체가 술렁인다.
부산 시내의 밤 풍경을 보고 싶다면 차를 몰고 황령산으로 향한다. 부산진구와 남구, 수영구, 연제구에 걸쳐있는 해발 427m의 황령산 정상에는 동래부 때인 1422년(세종 7년) 설치된 군사상 중요 통신수단인 봉수대가 남아있다.
이 봉수대는 동쪽 해운대의 간비오산 봉수대, 서쪽의 구봉 봉수대, 북쪽 계명산 봉수대 등과 연결하도록 돼 있었고 지금 해마다 산신제와 봉화제를 재현하고 있다.
봉수대에서 내려다보이는 부산의 야경은 이 도시 사람들이 가장 아끼는 풍경이며 연인이 함께 바라보는 한 장면이다. 좌측으로 눈을 돌리면 광안리 해변과 광안대교 눈에 들어온다.
장산(634m) 자락에 가려 해운대까지는 보이지 않지만 눈에 넣기 충분할 만큼의 밤 풍경에 가슴이 뿌듯해진다.
고즈넉한 시간이 고인 골목여행은 덤
그런가 하면 부산은 다정하게 말 걸어줄 것 같은 골목들이 많다. 달동네의 이유있는 변신이 아름다운 감천동 문화마을과 대연동 경성대 골목 안의 멋진 문화공간, 힘겨웠던 지난 시절을 공감할 수 있는 40계단 문화거리와 더불어 대한민국 영화의 역사를 품고 있는 남포동 영화의 거리 등이 그렇다.
그 중 누군가 근사하게 이름 붙여놓은 ‘한국의 마추픽추’라는 별명을 가진 감천동 문화마을은 부산여행에 빼놓아선 안 될 장소다.
천마산과 아미산 사이 고갯마루에 들어앉은 반달모양의 감천마을은 본래 한국전쟁 당시 전국에서 모여든 태극도(증산도) 신자들이 판잣집 800호를 지어 집단 정착하면서 형성된 곳이다.
이후 급속한 도시개발이 아래 존폐의 위기에 처했던 이 달동네는 젊은 여행자와 예술가들의 관심을 모으게 됐고 존치라는 명제 하에 소소하지만 의미 있는 변화를 맞게 됐다.
감천문화마을을 제대로 둘러보려면 골목길 안으로 들어가야 하는데 미로처럼 얽힌 그 길에 발을 들여놓기 전 마을 입구의 문화정보센터 하늘마루에 들러보는 게 좋겠다.
이곳에서 마을 지도를 한 장 구입하고 마을에 대한 기본 자료를 얻은 뒤에 센터 위 전망대에 올라 마을을 한 눈에 담아 본다.
골목길 탐방은 물고기 모양을 한 이정표를 따라 가면 되는데 길 중간 중간 전국 각지에서 찾아온 여행자들이 찍은 마을 사진이 전시된 사진갤러리를 비롯해 어둠의 집, 빛의 집, 평화의 집, 북카페 등 작가들이 참여한 공간들과 함께 길에서 만날 수 있다. 흥미로운 작품들을 찾아보는 재미가 꽤 쏠쏠하다.
부산의 젊은이들로 늘 붐비는 부산 지하철 2호선 경성대·부경대역 주변은 부산에서도 손꼽히는 번화가이지만, 이곳에서 나와 조금만 돌아가면 ‘색다른 공간’을 만날 수 있다.
입구가 세 곳이나 되지만 잘 드러나지 않아 상대적으로 조용한 공간, 2008년 부산다운 건축상 대상을 수상한 복합문화공간 ‘문화골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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좁은 골목길을 따라 각자의 개성을 지닌 가게들이 들어서 있는데 식당, 소극장, 카페 등 그 종류도 다양하다. 이 작은 골목 안에서 식사와 커피, 술은 물론 문화생활까지 모두 해결이 가능하다.
※ 본 기사는 한국금융신문에서 발행하는 '재테크 전문 매거진<웰스매니지먼트 8월호>'에 게재된 기사입니다.
김민정 기자 minj@fntime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