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 출산율 하락은 다른 국가와 비교해도 심각하다. 출산율이 0명대로 떨어진 국가는 OECD(경제협력개발기구) 35개국을 통틀어 한국이 유일하다. 전 세계에서도 사례를 찾아보기 어렵다.
유엔인구기금이 발간한 ‘2017년 세계인구현황’ 보고서에 따르면 전 세계 198개국 중 합계출산율이 1명 미만인 나라는 단 한 곳도 없다. 이대로라면 ‘인구감소 시대’는 더 빨리 다가올 전망이다.
전 세계 유일한 1명 미만 출산국
통계청에 따르면 지난해 우리나라 합계출산율은 0.98명에 그쳤다. 인구유지를 위해 필요한 합계출산율 2.1명의 절반에도 못 미치는 참담한 수치다.
또 출생아수도 32만 7,000명으로 사상 최저치를 기록했다. 머지않아 출생아수가 30만명 아래로 떨어질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여기에 지난해 출생아수에서 사망자수를 뺀 인구 자연증가 규모는 2만 8,000명에 그쳤다. 1970년 통계 작성 이래 가장 낮은 수준이다. 4분기에는 출생아보다 사망자가 1,500명 더 많아 분기 기준 최초로 인구가 감소했다.
이 때문에 인구감소 시점이 당초 통계청 예상 시점인 2028년보다 훨씬 앞당겨질 전망이다. 최악의 시나리오에 따르면 당장 내년부터 인구 감소가 시작될 수 있다는 암울한 전망도 함께 나오는 상황. 출생아가 사망자보다 적어지는 ‘데드크로스’가 멀지 않았다는 의미다.
출산율이 급락한 이유는 복합적이다. 가임여성이 감소한 데다 출산 연령 상향, 혼인 감소가 주요인으로 꼽힌다.
무엇보다 결혼 자체를 안 하는 게 문제다. 20대 후반(25~29세) 연령층의 1,000명당 혼인율(2018년 기준)은 남성 31.5건, 여성 57.1건으로 2017년보다 각각 2건, 3.5건 감소했다. 20대 후반 여성 혼인율이 60건 아래로 떨어진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결혼을 안 하거나 늦게 하다 보니 출산연령은 갈수록 높아지는 추세다. 지난해 평균 출산 연령은 32.8세로 전년보다 0.2세 높아졌다. 만 35세 이상 고령 산모의 비중은 31.8%로 전년보다 2.4%포인트 커졌다.
연령대별 출산율을 봐도 20대 후반 여성 1,000명당 출생아수는 41명으로 30대 후반(35~39세, 46.1명)보다 한참 적었다. 최악의 취업난에다 주거, 양육비 부담까지 커지면서 결혼, 출산을 미뤄 노산 비중이 늘어난 셈이다.
아이를 낳을 수 있는 인구 자체가 줄어든 것도 영향을 줬다. 주 출산 연령인 30~34세 여성 인구는 지난해 기준 15만 6,000명으로 2017년(16만 9,000명) 대비 5% 감소했다.
통계청은 이들이 태어난 1984~1990년 정부가 ‘하나만 낳아 잘 기르자’는 산아제한정책을 펼쳐 출생아가 감소했다고 분석했다.
인구감소 시대 눈앞… 국가 존립마저 위협 가능
인구학자 해리 덴트가 제시한 2018년 인구절벽(Demographic Cliff)이 온다는 경고는 한국에서도 현실이 됐다. 여기에 고령화까지 겹쳐 15세 이상 생산가능인구가 줄면서 저성장, 저소비, 저고용이 가속화할 것으로 보인다.
갈수록 노인 인구는 늘고 젊은층 인구는 감소해 군병력 부족, 국민연금 재정 고갈 후폭풍까지 커질 수 있다. 인구절벽 현상으로 생산, 소비가 줄어드는 등 경제활력이 떨어져 국가 존립마저 위협받는다. 출생아수 감소로 주요 대학마다 신입생 확보에 어려움을 겪으면서 재정난을 맞을 우려도 크다.
정부도 심각성을 모르는 것은 아니다. 역대 정부는 저출산 극복을 위해 그동안 온갖 대책을 내놨다. 2006년부터 저출산 예산으로 쏟아 부은 돈만 150조원에 달한다.
출생아 한 명당 투입된 저출산 예산도 2006년 465만원에서 지난해 6,669만원으로 14배 넘게 뛰었다.
문재인정부 역시 저출산 문제 해결에 팔을 걷어붙였다. 대통령 직속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에 따르면 정부와 지자체가 2017년과 지난해 저출산 대책 명목으로 쓴 돈은 60조원에 달한다.
아동수당을 신설하고 신혼부부 주택 건설, 육아휴직 지원 등 온갖 대책을 쏟아냈다. 그럼에도 출산율이 오히려 떨어지면서 ‘차라리 갖가지 지원금을 한꺼번에 현금으로 줘야 한다’는 얘기까지 나돈다.
하지만 문제는 이 같은 정책만으로는 인구 증가, 혹은 인구 유입이 쉽지 않다는 것이다. 당장 출산과 육아에 필요한 금전적인 지원만으로는 인구 증가를 가져올 수 없다는 지적이다.
정재훈 서울여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이미 지난 13년 동안 저출산 대책에 150조원이 투입됐지만 큰 성과가 없었다”며 “더 큰 관점에서 아이를 낳고 키우고 싶은 사회를 그려야 하는데 인력 육성, 수도권 중심 국토개발 탈피 등 사회가 근본적으로 변할 수 있는 대책을 제시해야 한다”고 말했다.
결국 일률적인 지원정책보다는 지역 특성화 전략을 통해 지역 발전이 먼저 이뤄져야 한다는 의미다.
이소영 한국지방행정연구원 박사는 “국가 지원정책은 보건사회정책 위주로 편재돼 있어 지역발전정책과 연계가 미흡하다”면서 “출산수당 등 직접 지원보다는 육아하기 좋은 환경 조성 등 간접적 지원정책으로 전환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 본 기사는 한국금융신문에서 발행하는 '재테크 전문 매거진<웰스매니지먼트 5월호>'에 게재된 기사입니다.
김민정 기자 minj@fntime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