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태광산업 유보율 추이(단위: %)./출처=금융감독원 전자공시, 한국금융신문
심지어 기업가치(EV)는 ‘마이너스’(-)를 기록하고 있다. 신사업 확장을 위해 투자 재원이 필요하다는 주장이 설득력을 잃을 수밖에 없다.
4일 투자은행(IB) 업계에 따르면 태광산업은 자사주 전량(24.41%, 27만1769주)를 기반으로 한 교환사채(EB) 발행을 중단한다고 밝혔다.
앞서 2대주주인 트러스톤자산운용(트러스톤)은 태광산업 EB 발행이 상법에 위반된다며 이례적으로 신속하게 소송까지 진행했다. 이어 금감원도 태광산업 EB 발행에 대한 문제점을 지적했다.
트러스톤은 상법 위반 내용으로 발행대상 등을 표기하지 않은 점을 강조했다. 이뿐만 아니라 자금 사용처도 명확히 밝히지 않으면서 자사주 소각 회피 목적이라는 비판이 쏟아지기 시작했다.

태광산업 ROE(좌), PBR(우) 추이(단위: %, 배). 올해 지표는 연환산 기준/출처=금융감독원 전자공시, 한국거래소, 한국금융신문
태광산업 PBR(주당순자산비율)은 지난 3일 종가 기준 0.28배다. 국내 시장에서 저평가된 상장사 중에서도 손에 꼽히는 수준이다. PBR의 또 다른 의미는 기업이 보유한 자산의 생산성이다. 그만큼 태광산업은 보유한 자산으로 충분한 생산성을 이끌어내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PBR은 ROE(자기자본이익률)과 PER(주당수익비율)의 곱으로 구할 수 있다. 이중 PBR과 PER은 시가총액 영향을 받기 때문에 기업이 온전히 관리하기 어려운 부분이다.
그렇다면 태광산업이 현실적으로 자산을 적절히 활용하고 있는지 여부는 ROE를 보면 알 수 있다. 태광산업 ROE는 지난 5년 평균 4.78%(2020~2024년)다. 국내 상장사 평균(약 8%) 대비 절반 수준이다.

태광산업 총자산회전율 추이(단위: 배)./출처=금융감독원 전자공시, 한국금융신문
기업가치가 높아지기 위해서는 자산활용 효율성을 높여야 하고 자본과 부채의 적절한 균형이 필요하다. 하지만 태광산업은 과도한 자본축적으로 두 지표가 훼손되면서 기업가치가 극도로 저평가되고 있는 것이다.
태광산업은 지난 3년 연속(2022~2024년) 영업손실을 기록했다. 그러나 당기순이익은 2023년(-147억원)을 제외하고 흑자를 기록했다. 그 이전으로 기간을 확대해서 봐도 영업이익보다 당기순이익이 큰 해가 다수 눈에 띈다.
영업외수익은 금융수익과 관계기업투자 손익(지분법이익 등)이 주를 이룬다. 본업보다는 ‘부업’으로 기업이 유지되는 셈이다. 관계기업 투자 중에서는 다소 납득이 어려운 부분도 있다. 대표적인 사례가 흥국화재다.
태광그룹은 지주사 없이 이호진 전 태광그룹 회장이 직접 주요 계열사를 지배하는 구조다. 즉 태광산업은 그룹, 사업측면에서 볼 때 흥국화재와 연관이 없다. 그럼에도 태광산업은 흥국화재 지분 39.13%를 보유하고 있는 2대주주다.
이뿐만 아니라 태광산업은 티시스(46.33%), 고려저축은행(20.24%) 지분도 갖고 있다. 티시스, 고려저축은행의 공통점은 이호진 회장이 최대주주라는 점이다. 태광산업이 이호진 회장 지배력 강화를 위해 우회적으로 지원한다는 얘기가 나오는 이유다.
태광산업의 이호진 회장 지배력 강화 문제는 차치하더라도 본업과 연관되지 않는 사업으로 자산이 흩어져 있다는 것이 문제다. 다른 측면에서 보면 태광산업은 이미 다양한 사업을 영위하고 있는 셈이다.
그럼에도 밸류업에 긍정적 영향을 미치지 못하고 있는 점은 과도한 유보율 해결과 자본재배치가 선행돼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러한 상황에서 사업 확장을 위한 EB 발행은 시장 설득이 당연히 어려울 수밖에 없다.
EBITDA는 영업이익에 감가상각비를 더해 산출하며 실질적인 현금흐름을 나타낸다. 따라서 EV/EBITDA는 기업 인수에 순수하게 들어가는 비용을 연간 현금흐름을 기준으로 얼마만에 회수할 수 있는지 여부를 알려준다.

태광산업 EV 추이. 2025년 7월은 SK브로드밴드 매각대금 포함./출처=금융감독원 전자공시, 한국금융신문
태광산업의 올해 1분기말 기준 EV는 -5435억원이다. 당기 시가총액 7404억원에 차입성부채(단기차입금, 유동성리스부채, 비유동성리스부채)를 더하고 현금성자산(현금및현금성자산, 단기금융상품, 당기손익-공정가치금융자산)을 뺀 수치다.
지난 3일 기준으로 계산하면 EV는 -1339억원으로 여전히 마이너스다. 여기에 SK브로드밴드 매각대금 유입분을 반영하면 -9000억원을 하회한다.
마이너스 EV는 특정 주체가 태광산업을 인수하면 그 즉시 해당 수치만큼 돈이 남는다는 뜻이다. 인수에 돈이 들기는커녕 오히려 돈을 버는 것이다.
EV를 공격적으로 산정하기 위해 차입성부채가 아닌 총부채를 활용해도 올해 1분기 말 기준 EV는 625억원에 불과하다. 625억원으로 시총 1조원이 넘는 기업을 살 수 있다는 뜻이다. 투자재원 마련을 위한 EB발행이 시장을 설득하지 못하는 또 다른 이유다.
한 자산운용사 운용역은 “모든 시발점은 태광산업이 시장에서 제대로 된 평가를 받지 못한다는 것이고 이 부분을 우선 정상화하기 위한 노력이 필요하다”며 “자산을 먼저 재배치하고 효율성을 높여 증명한 다음 추가 확장을 위한 투자재원을 마련하는 것인 순서”라고 지적했다. 그는 “기존 본업에서 구체적인 움직임을 보여주지 않다가 갑자기 EB 발행을 발표하니 자사주 소각 회피 등 의구심만 높아지고 시장 공감대를 얻지 못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성규 한국금융신문 기자 lsk0603@fntime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