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퇴(Retirement)는 영어 ‘Re+Tire’로, 인생의 바퀴를 다시 끼워 새롭게 시작함을 뜻한다. 내 후반부 인생을 위한 새로운 출발이다. 그런데 은퇴 재설계를 준비하는 사람이 잊지 말아야 할 게 있다.
바로 은퇴 재설계는 인생 재설계와 자산 재설계를 합쳐서 구성(은퇴 재설계=인생 재설계+자산 재설계)된다는 것, 그리고 둘을 명확히 구분해야 한다는 것이다.
자산 재설계는 인생 재설계를 하듯이 해서는 안 된다. 특히 부동산 재설계는 나 자신을 만족시키는 주관적 선호가 아니라 시장 참여자의 객관적인 선호에 초점을 맞추는 것이다.
즉, 주관적인 가치에 함몰되지 않고 나 자신을 객관화하는 것이 부동산 재설계의 출발이다. 좀 쑥스러울지 모르나, 주변 지인 10명에게 일일이 전화해서 한번 물어보라.
그들의 얘기에서 공통분모가 있을 것이고, 그것을 찾아내는 게 일반인이 할 수 있는 가장 현실적인 객관적 선호 찾기가 아닌가 생각한다. 내 호주머니 비어 있다고 다른 사람의 호주머니가 비어 있는 게 아니다.
시장 가격은 돈으로 하는 다수결 투표에 의해 결정된다. 경험적으로 느끼는 것이지만, 대체로 사람들의 안목은 비슷하다.
또 노후 자산 재설계에서 금융 자산과 부동산은 서로 구분해 접근하는 게 필요하다. 금융 자산 재설계는 최대한 서두르는 게 좋다. 아무래도 젊었을 때부터 종신보험이나 연금저축 등에 미리 가입할수록 유리할 것이다.
하지만 부동산 재설계는 생각보다 늦추는 게 좋다. 사실 대도시에서는 가족이 편히 살 수 있는 집 한 채 제대로 장만하기도 벅차다. 이런 상황에서 노후 대비를 위한 수익형부동산 구입은 사려 깊은 접근이 필요하다.
30~40대부터 월세가 나오는 수익형부동산에 올인하는 게 잘하는 일일까. 물론 노후 부동산 재설계의 핵심이 안정적인 현금 흐름, 즉 월세 확보에 있음을 부정하는 건 아니다.
그러나 하루하루 회사 생활하기에 바쁜 젊은 시절부터 부동산 여러 채를 사들여 월세 받기에 나서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주택에 대한 임대소득 과세가 강화되는 데다 관리의 번거로움, 넉넉하지 않은 자금 문제도 걸림돌이다.
월급을 받고 있을 때 여윳돈으로 부동산을 사고 싶으면 차라리 관리하기 편한 작은 아파트를 한 채 더 사라. 월세 중심의 부동산 재설계는 현직 때보다 은퇴 1년 전후에 본격적으로 시작하는 게 좋다.
월세는 월급이 잘 나오지 않을 때, 월급 대신 받는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이처럼 노후 대비 부동산 재설계는 금융 자산과 달리 접근해야 실효성 있는 답안이 나온다.
필요는 투자보다 먼저다
무엇보다 필요는 투자보다 우선순위가 되어야 한다. 집도 투자보다 필요로 구매하면 맘이 편하다. 가령 같은 아파트를 분양 받더라도 시세 차익을 노린 투자일 때는 가격이 춤출 때마다 마음이 조마조마하다.
하지만 노후 생활비를 충당하기 위한 월세를 목적으로 분양 받을 때는 수시로 출렁이는 가격 변화에 덜 불안해진다. 월세를 놓기로 했다가도 사정이 여의치 않을 경우 자신이 입주하겠다는 탄력적인 생각을 한다면 마음이 평온해질 것이다.
투자는 필요를 충족한 뒤 그 다음 여력 있을 때 하는 것이다. 필요에 따른 자금 운용은 사람에게 여유와 느긋함이라는 마법을 안겨준다.
투자가 필요보다 앞설 경우 삶도 그만큼 살얼음판이 된다. 자신에게 되물어보라. 당신이 사려는 부동산이 투자인가, 필요에 의한 구매인가.
※ 본 기사는 한국금융신문에서 발행하는 '재테크 전문 매거진<웰스매니지먼트 4월호>'에 게재된 기사입니다.
박원갑 KB국민은행 WM투자자문부 부동산수석전문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