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사마다 조직마다 세대마다 감동을 주는 새해 메시지의 디테일은 다르다. 하지만 청중에게 고역을 안기는 메시지 유형은 동일하다. 바로, ‘가르치려 하는 설교 메시지’이다. 이상하게도 여러 사람 앞에 마이크 잡고 서면 한마디 가르침을 줘야 할 것 같은 게 사람 심리다. 더구나 기관장 자격으로 앞에 섰다면 여지없다.
하지만 이런 취지로 새해덕담을 했을 때, 내 말 한마디에 청중이 깨달음을 얻고 그 가르침에 따라 이 한 해를 살아갈 일은 없다. 재미없고 식상하며 새해마다 누군가 들어줘야만 했던 그저 그런 또 하나의 메시지를 추가했을 뿐이다. 수십 년 세월 동안 우리는 이런 ‘가르침을 주고자 애쓰는’ 연설에 괴로워하지 않았는가. 이제는 좀 변해야 할 때도 됐다.
외국 리더들의 연설 중에는 내용이 멋지고 감동적이라며 주목 받는 사례가 여럿 있다. 그들의 연설에는 힘이 있고 청중의 마음을 움직이는 매력이 있다. 단, 절대로 가르치려 하지 않는다.
우리가 다 아는 미국의 마틴 루터 킹 목사의 연설 “I have a dream”에 가르침은 없다. 그는 연설에서 시종일관 흑인의 비참한 상황에 공감하고 그들에게 희망의 메시지를 전달했다.
흑인 사회에 용기를 주었고 함께 꿈꿀 수 있는 미래를 얘기했다. 미국 사회의 흑인차별 문제를 두고 그는 가르치려 하지 않았다. 인간은 피부색에 상관없이 누구나 동등한 권리를 가져야 한다고 설교하지도 않았다.
만일 ‘I have a dream’이 마틴 루터 킹 목사의 일방적인 주장이었거나 교훈을 주려는 연설이었다면 절대로 감동을 주지 못했을 것이다. 지금처럼 유명한 연설이 되지도 않았을 것이다.
또 다른 연설은 미국의 전 퍼스트레이디 미셸 오바마의 민주당 전당대회 연설이다. 전 세계 사람들의 마음을 강타한 강력하고도 멋진 연설이었다. 민주당 대선 후보인 힐러리 클린턴을 지지하는 연설이었지만, 미셸 오바마 역시 사람들을 가르치거나 설득하려 하지 않았다.
대신 그는 “I wake up every morning in a house that was built by slaves(나는 매일 아침 노예들이 지은 집에서 잠을 깹니다)”라고 말하며 미국의 민주주의 그리고 미국의 위대함에 대한 자부심을 사람들과 공유했다.
또, 자신의 두 딸 이야기를 꺼냄으로써 여성과 유색인종으로부터 지지와 공감을 얻었다. 그는 대통령 가족을 향한 갖은 비방과 모함에 대해 반격하기보다는 “When they go low, we go high(그들이 저급하게 갈지라도 우리는 품위를 지킵시다)”라는 여유 있는 발언으로 상황에 대한 긍정적 태도와 자신감을 보여줬다.
만일 미셸 오바마가 힐러리 클린턴의 업적을 주입시키고 민주당이 얼마나 잘 하고 있는 당인지를 가르치려 했다면 이 연설 역시 큰 주목을 받지 못했을 것이다. 그저 퍼스트레이디의 의례적인 메시지로 흘러가버렸을 지 모른다.
이렇게 감동을 주고 마음 속 깊이 새겨지는 연설에는 언제나 청중과의 공감대가 형성돼 있다. 그리고 듣는 사람에게 벅찬 희망과 용기를 준다. 질책하고 훈수 두지 않고 미래의 무한한 가능성을 보여준다.
올해는 함께 공감하고 희망을 줄 수 있는 덕담 한 마디면 충분
그렇다면 이제 우리도 새해 덕담을 나눌 때 어떤 메시지를 담아야 할지 명확해진다.
‘올해는 나도 뭔가 할 수 있어.’
‘올해는 나에게 특별한 한 해가 될 거야.’
‘올해는 외롭지 않은 해가 될 것 같아.’
이런 생각이 들게 하는 메시지를 전해야 한다. 새해 첫 메시지는 상대에게 기분 좋은 에너지를 심어주어야 한다. 듣는 사람의 가슴이 뛰게 될 만한 말을 건네야 한다.
그런데 또 여기에 하나 더 생각해야 할 점이 있다. 조직의 장 위치에 있는 사람들, 연배가 높은 사람들, 직장에서 상사나 선배들이라면 반드시 기억하기를 바란다.
다 알다시피 우리는 4차 산업혁명의 시대를 살고 있다. 기술과 가치관이 그 어느 때보다 급변하는 중이다. 어제 우리 삶의 모습과 내일 우리 삶의 모습은 판이하다. 즉, 우리보다 10년, 하다못해 단 5년이라도 어린 세대의 삶은 내가 상상하는 것 이상으로 다를 수밖에 없다.
그러니 나에게는 소중한 교훈이었던 지혜가 그들에게는 너무나도 철 지난, 그래서 이미 쓸모 없어져버린 잔소리가 될 수도 있다. 더 최악은 “우리 땐 이랬어”, “뭘 모르네. 이게 진리야”, “이거야말로 통하는 방식이야” 이렇게 툭 던지는 말이다. 진정 이 시대의 ‘꼰대’가 되고 싶다면 할 수 없지만 말이다.
새해가 되고 한 살 더 먹었다고 일 년 더 구닥다리는 되지 말자. 새해가 됐으니 작년보다 더 새로운 내가 되어야 하고, 내가 하는 말 역시 가장 최신식이 되어야 한다.
지금까지의 관행에서 벗어나 올해는 상대에게 용기를 주고 희망을 심는 새해 덕담을 전하는 것으로부터 시작하면 된다.
※ 본 기사는 한국금융신문에서 발행하는 '재테크 전문 매거진<웰스매니지먼트 2019년 1월호>'에 게재된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