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금융위원회는 금융감독원과 함께 ‘제약·바이오 기업의 연구개발비 회계처리 관련 감독지침’을 마련해 증권선물위원회에 보고했다고 지난 19일 밝혔다. 금융당국은 제약·바이오 약품의 유형을 신약, 바이오시밀러, 제네릭, 진단시약 등 4가지로 나눠 각각의 연구개발비를 자산화할 수 있는 세부 지침을 제시했다.
△신약은 임상3상 개시 승인 이후부터 △바이오시밀러는 임상1상 개시 승인 이후부터 △제네릭은 생동성 시험(오리지널 약품과 생체 이용률이 통계적으로 동등한지를 검증) 계획 승인 이후부터 △진단시약은 제품 검증 단계부터 자산화할 수 있다.
국제회계기준(IFRS)상 개발비를 무형자산으로 인식하기 위해 충족해야 하는 6가지 요건 중 논란의 소지가 있는 ‘무형자산을 완성할 수 있는 기술적 실현 가능성’이라는 조건을 명확히 해 약품 유형별로 개발비의 자산화가 가능해지는 단계를 설정한 것이다.
2일 박용린 자본시장연구원 연구위원은 “이번 제약·바이오 업종 관련 회계이슈는 왕성한 연구개발비 지출을 통해 무형자산을 창출하고 있는 현대 기업경영의 양태와 이렇게 창출된 무형자산을 측정하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를 대변하는 좋은 예”라고 설명했다.
아울러 지난 수십 년간 기술발전, 산업구조 변화 및 경쟁 심화로 인해 기업 경쟁력의 원천이 유형자산에서 무형자산으로 이동하고 있는 글로벌 경제의 장기적 구조 변화가 드러난 사례라고 진단했다.
현재 글로벌 상위 대기업 기업가치의 대부분은 무형자산에서 발생하고 있다. 자본시장연구원에 따르면 미국 애플은 기업가치의 62%, 구글은 65%, 아마존은 95%가 무형자산에서 발생하는 것으로 추정된다. ICT 기업뿐만 아니라 앤하이저부시 인베브, 존슨앤존슨, 프록터 앤 갬블,코카콜라 등 소비재 기업들의 기업가치 대비 무형자산 비중 또한 88%에서 98%에 이르는 것으로 파악된다.
박 연구위원은 “우리나라 주요 기업들의 무형자산 비중도 해외에서와 마찬가지로 점차 증가하고 있는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면서 “그러나 국내외 기업 회계에서는 특허 등 일부 지식재산권을 제외하고는 이러한 무형자산을 인정하지 않고 있다”고 지적했다.
무형자산은 연구개발비로부터 창출되는 지식재산과 무형자산 대부분을 차지하는 브랜드, 인적자본, 조직자본 등을 포함하는 광의의 개념이다. 기업 회계는 일반적으로 연구개발비 지출로부터 성공적으로 창출된 특허, 저작권, 라이센스 등과 같은 지식재산만을 무형자산으로 인정하고 있는데 국내 K-IFRS에서도 내부 창출된 영업권, 브랜드, 고객목록, 연구개발비 중 연구비 등은 무형자산으로 인정하지 않는다. 연구개발비 중 개발비도 제한된 조건 하에서 무형자산으로 인정되고 있다.
박 연구위원은 무형자산 중요성의 증가라는 구조적 변화에 따른 네 가지 대응 방안을 제시했다. 우선 금융투자업이 기업 및 산업에 대한 정보생산과 투자자와 기업 간 위험전환(risk transformation) 등 중개역량을 갖춰야 한다고 제언했다.
박 연구위원은 “무형자산의 비중 증가와 더불어 무형자산을 반영하는 데 있어서 기업 회계가 갖는 현실적 한계는 기업과 투자자 간 정보 비대칭성이 근본적으로 높아짐을 의미하기 때문”이라며 “금융투자업은 확대되는 정보의 간극을 좁히는 정보생산의 역할을 충실히 해야 한다”고 말했다.
또 무형자산으로 인해 기업과 투자자 간 넓어지는 간극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정보생산과 분석능력을 갖춘 전문투자자를 통한 자금공급이 필요하다고 봤다. 지식재산권(Intellectual Property) 금융 활성화를 위한 지원체계를 구축하는 등 기업의 무형자산 축적도 지원해야 한다고 판단했다.
마지막으로 박 연구위원은 회계·공시기준의 지속적 개선과 감독지침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제약·바이오 업종뿐만 아니라 무형자산 축적을 위한 지출이 회계상 수익성에 중요한 영향을 미치는 업종에 대해서도 회계 관련 감독지침을 선제적으로 검토해야 한다는 판단이다.
박 연구위원은 “기업의 자율적 회계처리에 과도하게 의존하게 될 경우 투자자 신뢰 상실로 이어질 수 있으며 이는 기업 입장에서 최종적인 자금원을 상실하게 되는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면서 “공통적인 기준의 제시 및 기업의 사업기밀을 유지할 수 있는 범위 내에서 개발비의 자산화 관련 주석 공시와 같은 공시의 확대가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한아란 기자 aran@fntime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