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퇴직연금 안전자산 쏠림현상 심화, 규제완화로 반전
원리금보장상품 중심의 퇴직연금시장이 대폭 손질된다. 금융위원회는 지난 27일 ‘퇴직연금시장 발전을 위한 자산운용 제도 개선방안’을 발표했다. 국내 퇴직연금시장이 원리금보장상품 쪽으로 쏠려 저금리가 장기화될 경우 은퇴준비 자산형성에 역부족이라는 판단이다.
국내 퇴직연금시장은 유독 안전자산쏠림현상이 깊다. 유형비중을 보면 DB(확정급여)형이 70.5%인 반면 DC(확정기여)형 및 IRP(개인형 퇴직연금)는 각각 21.7%, 7.7%에 불과하다. 이들을 통틀어 원리금 보장상품의 비중은 무려 92.2%에 달한다. 국내 퇴직연금시장이 위험이 전혀 없는 원리금보장상품으로 운용되고 있는 셈이다.
이번 개선안의 핵심은 이같은 원리금보장상품 쪽으로 과도한 쏠림을 막기 위한 당근과 채찍의 마련이다.
먼저 대표적 인센티브는 좀더 나은 수익률을 낼 수 있도록 자산운용규제의 완화다. 규제방식을 기존 포지티브에서 네거티브 방식으로 아예 전환했다. 이에 따라 비상장주식, 부적격등급채권, 파생상품형 펀드, 고위험파생결합증권 등 투자금지대상으로 열거한 원리금 비보장자산들을 제외하고 모든 원리금 비보장자산에 대한 투자가 허용된다. 운용의 탄력성을 발휘할 수 있도록 멍석을 깔아준 셈이다. 또 DC/IRP형의 원리금 비보장자산 총투자한도를 DB형과 동일한 수준으로 상향조정(40%→70%)했으며, 개별자산별 별도운용한도는 폐지했다.
◇ 자사 원리금보장상품 편입 7월 전면 금지, 대표포트폴리오 도입
이번 방안의 하이라이트는 국내퇴직연금의 고질병인 안전자산쏠림현상의 완화차원에서 원리금보장상품규제에 대한 적정선을 마련했다는 것이다. 이미 퇴직연금사업자의 자사 원리금보장상품 편입은 70%(2011년 10월) → 50%(13.4월) → 30%(15.1월)로 단계적으로 축소됐으며, 오는 7월부터 전면적으로 금지된다.
이와 별도로 7월 이후 원리금보장상품은 타사상품만 편입하는 규정상 사업자 간 상품제공이 원활치 않을 경우 발생할 수 있는 문제를 최소화하는 장치도 마련했다. 바로 사업자간 원리금보장상품의 교환이다. 특정사업자 간 원리금보장상품 교환한도를 사업자 별 퇴직연금 적립금의 20% 이내로 제한했으며, 그 한도를 수시로 공시해 상품제공 거부, 불공정 교환행위 등을 간접적으로 억제토록 했다. 또 원활한 상품교환을 위해 상품수취를 희망하는 사업자가 자발적으로 상품제공기관에 수수료를 제공하는 것은 허용된다.
아울러 대표포트폴리오도 도입된다. 이는 가입자가 구체적 운용지시를 내리지 않아도 관련규정에 따라 설계된 적격포트폴리오에 따라 퇴직연금을 운용하는 제도다. 미국의 자동가입 제도(Auto Enrollment)를 벤치마킹했다. 퇴직연금사업자별로 연령, 위험선호 등에 따라 복수의 대표포트폴리오를 마련해 가입자 선택의 폭을 넓힐 방침이다. 또 기존 수익률 공시와 별도로 대표 포트폴리오 수익률 공시를 의무화하여 가입자에게 충분한 판단근거를 제공할 계획이다.
이밖에도 퇴직연금의 일정 비율은 중도인출 사유에 구애받지 않고 담보대출 상환을 위해 인출할 수 있도록 허용하거나 이 경우 소득세법상 ‘연금인출’ 개념에서 배제하여 퇴직일시금 소득세 면제를 검토할 방침이다.
금융위는 이같은 조치로 안전, 위험자산 등으로 퇴직연금 투자자산이 다양화되고, 이에 따른 수익률제고를 통해 퇴직연금이 실질적 노후대비 자산관리수단으로 거듭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금융위 안창국 자산운용과장은 “시뮬레이션 결과 연금자산 3억원을 50년동안 운용할 경우 수익률 1%는 4.2억원, 2%는 8.1억원으로 1~2% 수익률을 더 낸다는 것이 장기적 자산형성에 대단히 중요하다”라며 “저금리 환경이 도래한 상황에서 수익률제고를 위해 운용자율성을 강화하는데 지원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번 발표로 수혜를 입은 쪽은 증권사다. 특히 오는 7월 퇴직연금사업자의 자사 원리금보장상품 편입금지와 맞물려 안전자산의 금리보다 위험, 안전자산을 적절히 배분하는 포트폴리오설계나 자산운용능력이 퇴직연금선택시 새로운 기준으로 떠오를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대형증권사 퇴직연금부서 관계자는 “그동안 퇴직연금은 운용경쟁이 아니라 금리경쟁으로 공동계정에서 일부를 떼내 금리가 높은 상품으로 가입자를 유치하면서 출혈경쟁에 시달렸다”라며 “하지만 고금리 가능성이 뒤따르는 원리금보장상품의 교환한도가 20%로 정해져 금리경쟁부담이 줄어 증권사가 강점인 자산운용능력이 재조명될 수 있다”라고 말했다. 다른 관계자는 “이미 권역별 퇴직연금수익률은 증권사가 타업권보다 높지 않느냐”라며 “실적배당상품운용비중이 높은 증권사 입장에서는 퇴직시장점유율을 높일 수 있는 기회”라고 말했다.
최성해 기자 haeshe7@fntime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