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시스템트레이딩 주문오류, 선물옵션동시만기일로 포지션 손절기회도 놓쳐
한맥투자증권이 지수옵션주문 실수로 벼랑 끝에 놓였다. 발단은 시스템트레이딩으로 추정되는 지수옵션주문의 실수다. 한맥투자증권은 지난 12일 지수옵션시장에서 오전 9시 2분경 시장가격보다 훨씬 높은 가격에서 옵션종목을 구입하고 훨씬 낮은 가격에서 매도주문을 내는 등 대형주문실수가 발생했다. 대상은 코스피지수옵션 43종목이며, 거래건수만 약 3만6000건에 이른다. 보통의 경우라면 매입가격 대비 반등할 경우 손절매를 통해 손실을 줄일 수 있으나 이날은 지수선물 12월물의 선물·옵션 동기만기일로 포지션을 청산할 시간적 여유가 없었던 탓에 손실규모는 더 컸다. 거래소는 이날 최종결제대금을 집계한 결과 손실액을 약 463억원으로 추정하고 있다.
이번 매매는 지난 2010년 11월 도이치 옵션쇼크 같은 의도적 시세조정행위가 아니라 매매프로그램오류에 따른 주문실수라는 게 시장의 진단이다. 거래형태가 기관들이 즐겨쓰는 합성전략과 전혀 다른데다, 비상식적인 주문으로 시장가치보다 싸게 사고 비싸게 파는 시스템트레이딩 프로그램이 거꾸로 작동했다고 보고 있다.
KDB대우증권 심상범 AI팀장은 “모든 행사가격에 다 걸쳐있었는데, 상식적으로 이해하기가 힘든 포지션”이라며 “일종의 주문오류를 잡아내는 헌팅시스템이 반대로 걸렸다고 추정된다”고 말했다. 심 팀장은 또 “비상식적인 포지션으로 100% 주문실수”라며 “하지만 주문실수가 발생한 선물옵션동시만기일이 매수우위로 무난하게 넘어가 주문실수가 전체 시장에 미치는 영향은 거의 없었다”라고 말했다. 한쪽의 손실이 다른 쪽의 이익이 되는 제로섬게임인 옵션매매의 특성상 매매실수로 거래상대방은 대박을 터트렸다. 거래상대방을 파악할 수 있는 회원사는 46개사. 거래소는 당시 한맥투자증권의 주문실수를 받아준 상당수가 외국인 위탁계좌로 파악하고 있다.
현재 거래소는 결제불이행위험에 대비 매매거래조치를 취한 상황이다. 거래소는 지난 13일 지수옵션 거래사고로 결제불이행 위험에 노출된 한맥투자증권에 대해 유가증권시장, 코스닥시장, 코넥스시장에 매매거래정지 및 채무인수중단 조치를 취했다. 조치기간은 지난 13일(금)부터 조치사유 소멸시까지이며, 예외적으로 기존 보유포지션의 해소를 위한 거래는 허용키로 했다.
한맥투자증권도 이날 홈페이지 고객안내문을 통해 만일의 사태를 대비해 △자사와 거래하는 상품의 신규 주문을 지양할 것 △타사로 계좌대체이관 또는 청산을 고려할 것 △담보대출과 신용융자 고객들은 향후 만기연장이 불가하니 청산 또는 현금결제 후 타사로 계좌대체이관을 고려해 줄 것 등을 요청했다.
◇ 거래상대방 외국인으로 합의실패, 거래소 손해배상기금으로 결제
더 큰 문제는 한맥투자증권이 손실을 감당할 능력이 있는가이다. 이 회사는 선물·옵션투자매매 및 중개에 특화된 소형증권사로 올해 3월 결산기준으로 자본금은 268억원, 자기자본 198억원이다. 지난해 약 38억원의 적자를 입었다. 최근 증권업불황으로 적자가 이어지며 일부 자본잠식에 빠졌다. 김범상 현 대표이사와 김치근 전 대표이사가 각각 17.17%의 지분을 보유한 최대주주로 사재출연이나 증자가 어려운 상황이다.
돌아가는 상황도 한맥투자증권에 불리하다. 사고즉시 한맥투자증권은 거래소에 ‘거래실수 구제신청’을 접수했다. 하지만 이익이 발생한 거래상대방이 거래체결해제 동의를 거부하며, 합의에 이르지 못해 구제신청은 반려됐다.
실오라기 같은 희망을 걸었던 회원증권사와 공조도 물건너 갔다. 거래소는 13일 오전 대규모옵션주문 사고해결을 위해 증권사 사장단 긴급회의를 소집했다. 하지만 실수주문을 체결한 거래가 증권사의 자기매매가 아니라 위탁계좌에서 비롯된 고객의 매매로 환수하기가 어렵다는 이유로 합의에 실패했다. 한맥투자증권은 결국 이날 최종결제시한인 오후 4시 결제대금전액을 납입하지 못해 사실상 파산에 직면한 상황이다. 거래소는 약 4000억원의 손해배상공동기금을 활용해 부족분을 일단 대신 결제했으며, 이 미결제금액에 대해서는 한맥투자증권측에 구상권을 청구할 계획이다.
한편 이번 주문실수가 투자자들의 피해로 이어질 가능성은 극히 제한적이다. 대부분 거래가 한맥투자증권의 자기매매로 이뤄졌으며, 현물선물시장에도 거의 영향을 미치지 않았기 때문이다. 거래소 관계자는 “대부분 손실이 발생한 부문은 자기재산으로 트레이딩했던 투자매매부문”이라며 “한맥증권에 대규모 손실이 발생했을뿐 개인투자자가 입은 피해는 거의 없다”고 말했다.
최성해 기자 haeshe7@fntime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