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커스] 설비리스 활성화, ‘2차 시장’ 형성이 관건](https://cfnimage.commutil.kr/phpwas/restmb_allidxmake.php?pp=002&idx=3&simg=20131124215441128095fnimage_01.jpg&nmt=18)
올해 들어 창조금융의 일환으로 설비리스 활성화 방안이 강구되고 있기는 하지만 제도적으로나 시장여건상 난관이 많다. 대출과는 금리경쟁에서 밀리고 취득세 2중 부과에다 IFRS(국제회계기준) 도입으로 회계상 혜택도 사라졌다. 이에 여신금융업계는 금융당국에 설비리스 활성화 조건으로 정책자금 지원, 취득세 감면, 회계상 혜택 등을 요구하고 있다.
그러나 정책지원만으로 설비리스를 활성화 한다면 반짝효과 밖에 기대할 수 없다는 지적이다. 정권이 바뀌고 정책방향이 달라지면 정부지원에만 의존하던 설비리스가 다시 위축될 수 있다는 주장이다. 진정한 설비리스 활성화를 위해선 자금회수를 좀 더 수월하게 할 수 있는 2차 시장(중고시장) 형성과 동산담보대출을 통한 담보효력 강화, 개발이 한창 진행 중인 해외국가 진출이 고려해 볼만한 대안이다.
◇ 설비투자, 종금사 대량파산 이후 대출이 주류
한국은행과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올해 상반기 시설자금대출은 244조3330억원으로 이미 전년(232조7008억원) 수준을 넘어섰다. 정부의 중소기업 대출 촉구로 일단 표면적인 금액은 늘어난 셈이다. 같은 기간 설비투자액은 29조5667억원이며 이 가운데 리스실행액은 17.7%(5조2370억원)로 전년(8.5%)보다 비중은 늘었다.
외환위기 이전만 하더라도 정책자금을 활용한 장기저리 리스의 확대에 따라 리스실행 비중이 20%를 넘었으며 특히 90년대 초반에는 기업금융에서 중소기업 시설투자 확대를 위해 리스 활용도가 높아 중장비와 기계설비의 리스금융 비중이 컸다. 그러나 외환위기로 리스시장을 장악했던 종금사들이 대거 파산하면서 시장이 위축됐다.
이후 2000년 초반부터 시작된 세계적인 저금리 기조로 리스보다 대출이 더 선호됐으며 2005년 이후 시설자금대출이 급증하자 기계설비 리스실행액은 크게 감소했다. 저금리 시대에 진입하면서 리스비용보다 대출금리가 더 낮아 이를 통한 설비투자가 빠르게 확산된 것이다. 그래도 리스금융시장은 나름의 살길을 찾아 기계설비에서 자동차 등 소비재 중심으로 주력이 전환되면서 설비리스 의존도는 약화됐다. 올해 상반기만 해도 국내 리스실행액 5조2370억원 중 61%(3조1955억원)가 자동차에 몰려있다.
리스의 장점은 담보가 없거나 부족한 기업의 경우 신용으로 설비투자 금융지원을 받는 효과가 있다는 것이다. 여신을 제공한 금융사로서는 자금운용의 투명성이 높아져 정부의 정책자금 집행에 유리하다. 정희수닫기

또 법인세법상 기계와 설비 내용연수의 20% 이상을 리스기간으로 산정하기 때문에 통상 3~5년의 장기간 분할해서 리스료 납부하는 등 장기조달 효과가 있다. 금융사 입장에서도 소유권을 갖고 빌려주는 형식이라 부실이 날 경우 최소한의 안전판은 마련돼 있다는 점에서 담보효력도 얻을 수 있다. 신용대출보다는 확실히 리스크가 적은 셈이다.
◇ 대출과 금리경쟁에서 밀려, ‘부실위험’도 높아
현 제도 하에서 설비리스의 성장을 유도하기 어려운 이유는 은행권 시설자금대출과의 차별성이 별로 없는데다 저금리 기조에서 금리경쟁에 불리하기 때문이다. 신용도가 우량한 이들은 낮은 비용으로 자금을 조달할 수 있는 대출을 더 선호하다보니 리스를 사용하는 이들은 대출이용자보다 저신용자들인 경우가 대부분이다. 달리 말하면 그만큼 부실위험도 높다는 의미다.
조윤서 여신금융협회 부장은 “부실대출 채권을 처분하는 NPL시장이 있듯이 리스에도 부실이 날 경우 어느 정도라도 회수할 수 있는 시장이 필요하다”며 “자동차는 설비와 달리 중고품을 범용으로 쓸 수 있는 장점이 있어 리스시장에서 큰 비중을 차지할 수 있었다”라고 말했다.
기계설비의 경우 부실이 생기면 처분해 회수할 수 있는 시장이 미비하다. 자동차처럼 범용이 아니고 산업용으로밖에 쓸 수 없을 정도로 용도가 한정돼 있어 자금회수가 쉽지 않다. 공작기계 및 의료기기는 상황이 더 안 좋다. 개인사업자를 대상으로 하기 때문에 수요가 제한적일 수밖에 없는데 실제로 전체 리스실행액에서 공작기계는 12.5%, 의료기기가 9% 수준이다. 설비리스 활성화를 위해서 정책자금 및 보증지원을 요구하는 이유도 이처럼 회수 가망성이 낮은 하이리스크 산업의 특성이 있어서다. 1차적으로 정책자금이, 2차적으로 회수시장이 구비돼야하는 이유다.
취득세 부분도 문제로 지적되고 있다. 리스는 금융사가 설비를 사고 취득세를 납부한 뒤 소유권을 가진 채로 대여해주는 개념이다. 임차한 기업은 만기가 다된 후 리스물건을 취득해 소유권을 이전받는 경우가 있는데 이때 취득세를 낸다. 세법상으로는 소유권이 이전된 것이니 취득세 과세대상이지만 실제로는 같은 물건에 세금을 두 번 부과한 셈이다.
여전업계는 취득세를 면제하거나 감면혜택을 줘서 기업으로 하여금 설비자산을 유리한 조건으로 인수할 수 있는 여건을 조성해야 한다고 금융당국에 건의했다. 회계상 혜택 역시 주요과제로 거론됐다. 중소기업회계기준에서 회계정보의 유용성을 크게 저하시키지 않는 범위에서 금융리스의 분류조건을 완화해 운용리스 회계처리의 편의성을 활용하는 방안이다.
하지만 세금과 회계혜택은 현실성이 떨어진다는 지적이 많다. 현재 국정기조가 ‘증세 없는 복지’인 만큼 과세당국은 어떻게든 모자란 세수확보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어 세제혜택은 성사될 가능성이 낮다. 또 국내 도입한 IFRS 회계기준은 국제기준이라 함부로 변경할 수 없는 사안이다.
이에 정희수 하나금융경영연구소 팀장은 “여전사는 신재생에너지 관련사업 등 정부정책 사업, 중소기업의 설비투자와 관련해 장기저리의 자금을 제공하는 역할수행이 가능하다”며 “중소기업진흥공단 및 정책금융공사 등 정책금융의 중개기관은 대부분 은행에서 담당하고 있으니 여전사도 참여할 수 있도록 하는 방안도 고려할 만하다”고 조언했다.
◇ 리스物 담보효력 제고, 해외진출도 생각해봐야
이처럼 정책자금·보증 외에 딱히 내밀 카드가 없는 상황을 맞아 여전업계 한편에선 다른 의견이 제시됐다. 최근 2금융권으로 확대될 예정이라고 알려진 동산담보대출을 통해 리스물건의 담보효력을 강화하자는 주장과 개발이 한창인 해외국가로 나가 한국계 기업의 설비투자에 참여하자는 것이다.
금융당국이 2금융으로 확대를 추진하고 있는 동산담보대출은 전문 감정평가인력 양성과 중고기계 매매시장 개설, 담보권 설정 금융사의 기업 등기사항 확인허용 등이 주요내용이다. 동산담보대출은 기계, 철근 등 원자재를 비롯해 축산물, 농수산물을 담보로 제공하고 대출받는 상품이다. 설비리스는 여전사 입장에선 신용대출보다 담보효력은 있으나 환금성이 떨어지기에 일선에서 신용대출과 비슷한 수준으로 취급하기도 한다.
또 다른 방안으로는 해외진출이 꼽힌다. 최근 IBK캐피탈이 중국 상해에 사무소를 개소한 것도 보유펀드를 활용한 투자업무와 리스업무를 위해서다. 그동안 IBK캐피탈은 모행인 기업은행과 함께 중소기업들의 수요가 많은 공작기계, 인쇄기 등을 빌려주는 리스금융을 확대해 왔다. 캐피탈업계에서 중국에 진출한 기업은 제법 있으나 이들은 모두 할부·리스만 취급했다. 반면에 IBK캐피탈은 중국에서 신기술금융과 리스를 동시에 취급하려고 하는 점에서 차별적인 행보를 보인다.
특히 IBK캐피탈이 주요사례로 알린 중국 진출기업 ‘세원정공’은 국내 매출액 대비 영업이익률은 2.2% 수준에 불과하나 중국 자회사인 ‘삼하세원기차과기 유한공사’의 매출액 대비 영업이익률은 18.9% 수준에 이르고 있다. 세원정공은 현대·기아차 관련 1차 벤더로서 한국에서 차체관련 협력업체이며 중국 및 미국에서 현대자동차 생산에 깊이 연관 있는 업체다.
이 업체의 현지라인 증설 및 시설투자 등에 국내 여전사의 리스가 소요된다면 상당히 좋은 모델이 될 수 있다는 게 IBK캐피탈의 시각이다. 해외 진출한 한국계 기업 혹은 진출을 계획하는 기업은 설비 등을 새로 장만해야하니 사는 것보단 리스하는 것이 더 효율적이며 금융사 입장에선 기업금융 수요를 안정적으로 확보해 해외진출을 성장동력으로 삼을 수 있다.
신동민 IBK캐피탈 과장은 “이미 개발이 포화돼 성장이 답보에 이른 국내보다 한창 개발 중인 해외국가에서 설비투자와 리스수요가 많다”며 “해외진출 초기에는 한국계 기업을 통해 안정적인 수요물량 확보가 중요한 만큼 현지 시설투자에 설비리스로 진입하는 것도 좋은 방안으로 고려해 볼만하다”고 말했다.
원충희 기자 wch@fntime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