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억원 금융위원장
금융권이 기업에 자금을 빌려주고 이자를 받는 전통적인 대출자 역할을 넘어 첨단기술 기업의 지분을 보유하고 성장을 함께하는 투자자로 역할을 넓히는 것이다.
정부는 전략기술에 대한 직접투자뿐 아니라 지방 전략산업에 대한 금융 공급을 확대하고, 투자자금의 회수 통로인 코스닥시장까지 손질하기로 했다. 첨단기업 발굴과 투자, 지역 확산, 상장과 회수로 이어지는 생산적금융 생태계를 구축하겠다는 구상이다.
금융위원회는 15일 하반기 업무보고에서 국민성장펀드를 200조원 규모의 성장투자 플랫폼으로 확대하고 가칭 ‘한국전략기술파트너스(KSTP·Korea Strategic Tech Partners)’를 신설하는 내용의 생산적금융 추진계획을 발표했다.
산은·성장금융 주축 KSTP…5년간 최대 10조원
KSTP는 산업은행과 한국성장금융이 주축이 되고 5대 금융지주와 종합금융투자사업자, 자본시장 유관기관 등이 공동 설립하는 방식이 검토되고 있다. 현재 5대 금융지주 등 민간 금융회사와 설립 참여 방안을 논의하고 있다.
정부는 국민성장펀드 등 정책금융과 관계부처 연구개발(R&D) 자금, 기술 수요 기업, 국내외 금융기관의 민간 출자금을 결합해 연간 1조~2조원씩 5년간 최대 10조원을 공급할 계획이다.
투자 대상은 성공 가능성을 판단하기 어렵고 성과가 나오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리지만, 성공할 경우 산업 판도를 바꿀 수 있는 미래 원천기술이다. 양자슈퍼컴퓨팅과 초고신뢰통신망, 포스트 나노 인공지능(AI) 반도체, 바이오 디지털트윈 등이 대표적이다.
단순히 기술개발 자금을 대출하는 데 그치지 않고 R&D 단계부터 상용화, 후속투자까지 지분투자 방식으로 연결해 해당 기술을 국가전략 자산으로 육성하겠다는 취지다. 금융위는 연내 운용사 라이선스 신청과 법인 설립을 마치고 2027년 상반기 첫 사업을 추진할 예정이다.
국민성장펀드 200조원…직접투자 연 5조원 이상
KSTP 설립의 기반이 되는 국민성장펀드도 기존 150조원에서 200조원으로 확대된다. 2027년부터 연간 운용 규모를 30조원에서 40조원으로 늘리고, 지원 대상도 기존 12개 첨단산업에서 우주항공 등 신규 전략산업으로 넓힌다.
반도체와 AI 데이터센터(AIDC), 피지컬 AI 등 3대 메가프로젝트에는 장기 성장자본을 집중적으로 공급한다. 기업과 프로젝트의 위험을 정부와 금융회사가 함께 부담하는 직접 지분투자 규모도 연간 3조원에서 5조원 이상으로 확대한다.
국민성장펀드는 출범 6개월 만에 21건, 14조6000억원의 사업을 승인했다. AI·반도체에 4조원, 바이오에 9000억원, 이차전지에 6000억원, 방산에 5000억원 등이 배정됐다.
장기투자가 필요한 기술기업에는 별도로 8800억원 규모의 초장기기술투자펀드를 공급한다. 정부와 기금이 전체 재원의 75% 이상을 출자하고, 정부 재정을 통해 민간 출자금의 40%를 후순위로 배치해 민간 금융회사의 손실 부담을 낮춘다.
지방 정책금융 100조→164조…지역기업에 인센티브
생산적금융의 범위는 수도권·첨단기업에 대한 투자에 그치지 않는다. 금융위는 ‘모두의 성장을 위한 지방우대금융’을 별도 축으로 두고 지방 주력산업과 ‘5극 3특’ 전략을 정책·민간금융이 함께 지원하도록 할 계획이다.지방에 공급되는 정책금융 규모는 2025년 100조원에서 2028년 164조원으로 확대된다. 국민성장펀드 운용 규모가 늘어나는 만큼 지역 프로젝트와 지방 전략산업에 투입되는 자금도 함께 확대한다.
신용보증기금은 지역전략산업을 대상으로 1조원 규모의 우대보증 프로그램을 마련한다. 민간 금융회사가 지역기업과 지방 인프라에 자금을 공급하도록 지역재투자 평가의 변별력을 높이고, 첨단산업 창업기업 지원에 대한 면책과 생산적금융 팩트북 공개도 추진한다.
정책금융기관과 대기업, 금융회사가 함께 지역 중소기업과 협력사를 지원하는 상생프로그램도 확대한다. 지역기업에 대한 단순 대출 공급을 넘어 대기업 공급망과 정책금융, 민간투자를 연결하겠다는 것이다.
투자 뒤 회수까지…코스닥시장 체질개선
자본시장 개편도 생산적금융의 한 축으로 포함됐다. 기업에 장기 모험자본을 공급하더라도 기업공개와 인수합병 등 회수시장이 뒷받침되지 않으면 민간자금의 지속적인 참여를 끌어내기 어렵기 때문이다.금융위는 상대적으로 저평가된 코스닥시장을 대상으로 ‘3대 구조혁신 프로그램’을 추진한다. 기술기업이 성장 단계에 맞춰 자본시장에서 자금을 조달할 수 있도록 시장 구조를 개편하고, 부실기업 퇴출과 우량 혁신기업의 상장을 함께 촉진한다는 방침이다.
중복상장을 원칙적으로 금지하고 저주가순자산비율(PBR) 기업 공표, 상장기업의 배당 확대 등을 통해 장기투자 여건도 조성한다. 결제주기를 T+1로 단축하고 공모주 청약증거금에 이자를 지급하는 등 투자자의 불편도 개선한다.
금융권의 자금 흐름은 이미 기업대출과 투자 쪽으로 이동하고 있다. 5대 금융지주와 산업은행·기업은행의 기업대출 잔액은 지난해 6월 1317조원에서 올해 5월 1382조원으로 65조원 늘었다. 같은 기간 직·간접 투자 잔액은 426조원에서 490조원으로 64조원 증가했다.
관건은 정책금융 확대가 실제 민간의 위험 부담과 장기투자로 연결되느냐다. KSTP가 전문인력을 확보해 실패 가능성이 큰 원천기술을 선별하고, 지방 전략산업에 공급된 자금이 단순 대출에 머무르지 않도록 해야 한다. 코스닥 등 회수시장 개편까지 맞물려야 금융회사가 대출자를 넘어 첨단기술과 지역기업의 주주로 자리 잡는 생산적금융 구조가 완성될 전망이다.
장호성 한국금융신문 기자 hs6776@fntime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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