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날 KTX와 SRT의 시범 교차 운행이 시작됐다. 고속철도 운영 통합의 첫발이다. KTX는 수서에서, SRT는 서울역에서 출발한다. 그동안 서울역은 KTX, 수서역은 SRT라는 공식에 익숙했던 시민들에겐 작은 혁명 같은 변화다.
이번 시범 교차 운행은 운영 통합의 실질적 출발점이다. 수서역과 서울역 등 기·종점과 차종 구분 없이 고속철도를 효율적이고 탄력적으로 운영할 수 있는지 검증하는 과정이다.
◇ 익숙함이 만든 작은 실수들
취재진이 둘러선 서울역 플랫폼. 도착한 SRT 열차에서 내린 한 어르신 승객은 고개를 갸웃했다.“SRT 앱으로 예약했으니 당연히 수서역인 줄 알았죠. 서울역이라니요?” 강남으로 가야 한다는 그는 다시 지하철 노선을 검색하며 한숨을 내쉬었다. “젊은 사람들은 괜찮겠죠. 그런데 나이 든 사람들에겐 쉽지 않아요. 앱도 따로 쓰고, 역도 헷갈립니다. 합칠 거면 이유라도 더 설명해줘야 하는 거 아닌가요?” 그는 불편한 기색을 감추지 못한 기자를 밀치고 발걸음을 재촉했다.
현장의 혼선은 실제로 있었다. 부산에서 출발한 열차에서는 비슷한 시간대 나란히 선 KTX와 SRT를 헷갈려 승객이 옮겨 타는 소동이 벌어졌다. 그 여파로 도착이 몇 분 지연되기도 했다. 승강장은 평소보다 붐볐다. 일부 승객은 “오늘 무슨 날인가요? 기자들이 왜 이렇게 많아요?”, “어, 이 기차 아니네?”라며 다시 플랫폼을 오갔다. 그동안 한 앱으로 예약하고 늘 이용해온 익숙함이 만든 작은 해프닝이다.
그럼에도 변화의 체감도는 분명했다. 특히 좌석 문제에서 그렇다. 수서 노선은 그간 ‘예매 전쟁’이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경쟁이 치열했다.
25일 첫 시범 운행일 상행 SRT 28열차에는 732명이 탑승했다. 하행 SRT 37열차에는 592명이 올랐다.
한 20대 커플은 “늘 만석이던 열차에 빈 좌석이 보였다. 예약이 수월했다”고 말했다. 첫날이라 홍보가 충분하지 않았던 영향도 있지만, 좌석 선택 폭이 넓어진 건 분명한 변화다.
운임도 눈길을 끈다. 수서로 이동한 KTX 요금은 기존 SRT와 동일하게 책정됐다. 이에 따라 기존 KTX 대비 평균 10%가량 낮아졌다. 가격 장벽을 낮추면서 수송 능력은 키운 셈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서울역 현장에는 정왕국 SR 대표도 참석했다. 그는 도착 열차를 직접 점검하고 승무원들에게 “고객 안전에 만전을 기해달라”고 당부했다. 국토교통부도 첫 주 동안 비상 대응 체계를 가동해 문제점을 집중 점검하겠다는 방침이다. 통합은 상징이 아니라 운영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 서울은 KTX, 수서는 SRT…키오스크·앱 혼선 여전
통합 운행의 숙제도 뚜렷하다. 수서역에는 여전히 SRT 전용 키오스크가 대부분이다. KTX용 키오스크는 한 대에 불과하다. 서울역도 사정은 비슷하다. 동시에 예매할 수 있는 기기가 부족하다.앱도 분리돼 있다. KTX와 SRT 앱을 각각 내려받아야 한다. 앞서 만난 어르신이 “합칠 거면 제대로 합쳐야지, 왜 소비자가 헷갈려야 하느냐”고 토로한 이유다. 다만 서울역과 수서역 창구에서는 두 열차 모두 예매가 가능하다.
이번 교차 운행이 경부선 중심이라는 점도 지적된다. 통합에만 초점을 맞춘 채 수도권과 경부 노선에 쏠린 운영 구조가 유지되는 것 아니냐는 비판이다. 통합이 단순한 브랜드 조정이 아니라, 전국적 균형이라는 과제를 함께 풀어야 한다는 목소리다.
서울역 플랫폼에서 보라색 SRT가 출발하자, 익숙했던 풍경이 서서히 낯설어졌다. 그 낯섦은 이질감이자 기대였다. 좌석은 늘었고 선택권은 넓어졌다. 대신 승객은 새로운 동선을 익혀야 한다.
통합은 늘 그렇다. 숫자로는 효율이다. 그러나 현장에서는 사람들의 혼선이 뒤따른다. 앱 하나, 표지판 하나, 안내 방송 하나가 일상에 미치는 영향은 작지 않다. 일부 이용자에겐 체감도가 쉽게 따라오지 않을 수도 있다.
이날 서울역에서 만난 또 다른 승객의 말이 귓가에 남는다.
“SRT가 나쁜 건 아니에요. 다만 이용 과정이 너무 불편했습니다. 이런 식이라면 무료로라도 체험 기회를 주면서 적응할 시간을 줘야 하는 것 아닙니까. 힘든 건 다 겪고 익숙해지라는 강요처럼 느껴집니다.”
따뜻한 날씨만큼 부드럽게 안착할지, 또 다른 혼선을 낳을지. 고속철도의 실험은 이제 막 첫발을 뗐다.
주현태 한국금융신문 기자 gun1313@fntime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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