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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 칼럼] 5000으로 달리는 적토마, 코리아 프리미엄을 묻다

김희일 기자

heuyil@fntimes.com

기사입력 : 2026-01-12 05:00

AI 슈퍼사이클과 상법 개정의 변곡점
반짝 호황 넘어 구조적 대세로 가는 길

▲ 김희일 증권부장

▲ 김희일 증권부장

[한국금융신문 김희일 기자] 2026년 병오년(丙午年) 새해 벽두, 여의도의 공기는 그 어느 때보다 뜨거웠다. ‘붉은 말’의 해라는 상징성이 주식시장의 붉은 상승 그래프와 맞물려 묘한 흥분을 자아냈다.

지난 연말, 우리 증시는 마의 벽으로 여겨지던 4,000선을 돌파해 4,200에 안착했다. 수십 년간 한국 자본시장을 옥죄던 ‘코리아 디스카운트’라는 꼬리표를 떼어내고, 바야흐로 ‘코리아 프리미엄’ 시대로 진입했음을 알리는 신호탄이 됐다.

열흘 전 한국거래소 개장식에서 이억원닫기이억원기사 모아보기 금융위원장은 “붉은 말의 해인 올해 증시에서도 붉은 상승 기둥을 세우길 기대한다” 며 코스피 5,000 시대를 향한 의지를 천명했다. 4,200선 안착은 분명한 쾌거다.

하지만 축포의 연기가 걷힌 자리에는 우리가 냉정하게 직시해야 할 과제들이 선명하게 남아 있다. 숫자의 환희를 넘어 질적 도약의 마침표를 찍어야 할 '진짜 승부'는 이제 막 시작됐다. 지금의 상승세가 ‘반짝 호황’이 아닌 구조적 대세 상승으로 굳어질 꿈의 5,000 시대를 열기 위해선 먼저, 충족되어야 할 조건들을 냉철하게 살펴야 한다.

AI 엔진은 강력하지만, 하드웨어 너머를 봐야

첫째, ‘AI 슈퍼사이클’이라는 엔진의 지속성이다. 현재의 상승장은 과거 유동성에만 의존했던 장세와 질적으로 다르다. 지금은 산업 구조가 재편되는 ‘질적 강세장’이다.

1990년대 인터넷 혁명이 IT 버블을 넘어서 세상을 바꿨듯이 지금은 AI(인공지능) 혁명이 산업의 근간을 흔들고 있다. 이 흐름의 최전선에 한국의 반도체가 있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는 AI 가치사슬의 핵심인 고대역폭메모리(HBM)와 차세대 반도체 시장을 장악하며 코스피 전체 시가총액 상승을 견인했다. ‘AI 투자 사이클 지속→반도체 실적 개선→코스피 레벨업’이란 공식이 확인된 것이다.

코스피 5,000을 위해서는 이 엔진이 꺼지지 말아야 한다. 미국 빅테크 기업들의 설비투자(CAPEX)가 둔화되거나, AI 거품론이 현실화 될 경우 수출 중심의 우리 증시는 직격탄을 맞을 수 있다. 단순한 하드웨어 공급을 넘어, AI 솔루션과 플랫폼 등 소프트웨어 경쟁력까지 확보하는 산업 생태계의 확장이 절실한 시점이다.

'주주 충실 의무' 상법 개정, 신뢰의 레일 까는 법

둘째, ‘신뢰’라는 레일(Rail)을 까는 작업이 필요하다. 아무리 좋은 엔진(기업 실적)이 있어도 달릴 레일(시장 제도)이 부실하면 열차는 탈선한다. 그동안 한국 증시의 발목을 잡은 것은 불투명한 기업 지배구조와 소액주주 경시 풍토였다.

정부의 정책 드라이브와 여야의 입법 공조가 맞물린 상법 개정은 그래서 중요하다. 이사의 충실 의무 대상을 ‘회사’에서 ‘주주’로 확대하는 것, 전자 주주총회 의무화, 자사주 소각 강제화 등은 단순한 규제가 아니다. 이는 글로벌 스탠다드에 부합하는 ‘신뢰 인프라’를 구축하는 과정인 것이다. 1·2차 상법 개정으로 디스카운트 요인은 줄었다.

하지만 여전히 갈 길이 멀다. 경영권 방어라는 명분 아래 자행되던 ‘쪼개기 상장’이나 대주주의 사익 편취가 완전히 근절되지 않는 한, 외국인 투자자들은 언제든지 짐 쌀 준비가 되어 있다. 5,000시대를 맞기 위해선 ‘코리아 디스카운트’라는 고질적인 불신을 ‘믿고 묻어둘 수 있는 자산’이라는 확신으로 치환해야 한다.

2일 한국거래소 개장식에서 축사에 나선 오기형 의원은 국회 차원의 강력한 입법 지원을 강조했다. '코스피 5000 특위' 구성을 언급한 오 의원은 "시장의 요구대로 자본시장 디스카운트를 해소하고 프리미엄 시장을 일관되게 유지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특히 오 의원은 "올해 안에 3차 상법 개정을 완료해 시장의 잘못된 관행을 비판·견제하고 공시 제도를 강화하겠다"며 "대한민국의 저성장 고리 차단이 이재명 정부의 핵심 과제이자 숙제다"고 강조하며 제도 개선에 대한 강한 의지를 드러냈다.

3,000조 부동자금, 자본시장으로 물꼬 터야

셋째, ‘머니무브’를 유도할 과감한 정책적 물꼬가 필요하다. 시장은 결국 수급이다. 부동산 불패 신화에 갇힌 3,000조 원의 부동자금이 자본시장으로 흘러들어오게 만들어야 한다.

이를 위해선 징벌적 과세 체계의 합리화가 선행돼야 한다. 현재 국회에서 논의 중인 배당소득 분리과세와 대주주 양도세 기준 완화는 ‘부자 감세’ 논란을 넘어 ‘자본시장 활성화’ 차원에서 접근해야 한다.

장기 보유자에 대한 파격적인 세제 혜택을 통해 단타 위주의 투기판을 건전한 투자처로 바꿔야 한다. 기업의 본질 가치를 훼손하는 약탈적 상속세제 손질 역시 필요하다. 상속세를 내기 위해 대주주가 주가를 눌러야 하는 기형적 구조 속에선 코리아 프리미엄을 기대하기 어렵다.

더불어 MSCI 선진국 지수 편입은 외국인 장기 자금(Passive Fund)을 유치하기 위한 마지막 퍼즐이다. 외환시장 완전 개방과 공매도 제도의 선진화 등 남은 과제들을 2026년에 완수해 글로벌자본이 한국을 ‘이머징 마켓’이 아닌 ‘선진 시장’으로 인식하게 해야 한다.

국민의힘 '주식 및 디지털자산 밸류업 특별위원회' 위원장인 김상훈 의원은 지난해 코스피 4,200 안착이 "사상 유례없는 쾌거"라고 평하면서도 내실 있는 성장을 주문했다. 김 의원은 "기업 가치 제고 없는 단순한 지수 상승을 경계해야 한다"며 "기업은 불확실한 미래에도 투자를 지속하고, 주주들은 그런 기업을 신뢰하는 '동반 가치 시장' 조성이 필요하다"고 역설했다. 구체적 방안으로 김 의원은 장기 주식 보유자에 대한 세제 혜택 인센티브 도입을 주장했다.

그는 "지금보다 나은 외국인 투자 환경을 조성하고, 국회에서의 합의 정신을 계승해 주식 및 파생시장이 더욱 활성화되길 바란다"고 덧붙였다.

넷째, ‘협치’라는 사회적 합의다. 이번 4,200 돌파의 이면에는 여야가 정쟁을 멈추고 자본시장 선진화라는 목표 아래 ‘합의의 정신’을 보여준 덕이 컸다. 오기형 의원이 강조한 상법 개정과 김상훈 의원이 지적한 기업 밸류업이 맞물려 돌아가며 정책의 불확실성을 제거했다.

하지만 앞으로가 더 중요하다. 금투세(금융투자소득세) 유예나 상법 개정안의 디테일을 두고 정치권이 다시 파열음을 낸다면 시장은 즉각 반응할 것이다. 경제에는 여야가 없다. 국민성장펀드 등을 통해 기업 성장의 과실이 가계로 흘러 들어가고, 이것이 다시 소비와 투자로 이어지는 선순환 구조를 만드는 데 정치권이 흔들림 없는 합의를 보여줘야 한다.

반도체 편중 탈피, 기초 체력이 '5,000 자격증' 결정

마지막으로, 숫자에 매몰되지 않는 ‘체력’이다. 미국 증시가 꺾여도 우리만 독자적으로 상승할 수 있을까? 전문가들의 의견은 엇갈린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외부 충격에도 쉽게 무너지지 않는 기초 체력을 길러야 한다는 점이다. 과거처럼 미국이 기침하면 한국은 독감에 걸리는 천수답 증시에서 벗어나야 한다. 이를 위해선 반도체에 편중된 시가총액 구조를 바이오, 방산, 2차전지, 엔터테인먼트 등으로 다변화해야 한다.

2026년, 붉은 말은 이미 출발선에 섰다. 그러나 속도만으로는 결승선에 도달할 수 없다. 명확한 방향을 제시하는 기수(정부), 흔들림 없이 신뢰를 보내는 관중(투자자), 그리고 외풍에도 쓰러지지 않는 체력을 갖춘 말(기업)이 동시에 움직일 때만 질주는 완주가 된다. 코스피 5,000은 단순한 숫자가 아니다.

그것은 한국 경제가 ‘기대받는 시장’이 아니라 ‘증명된 시장’으로 올라섰다는 자격증이다. 낡은 코리아 디스카운트를 벗어던지고 프리미엄 시장으로 진입할 준비가 되었는지, 2026년 증시는 우리 모두에게 그 질문을 던지고 있다. 답을 내놓는 쪽만이 5,000이라는 숫자를 가질 자격이 있다.

김희일 한국금융신문 기자 heuyil@fntime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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