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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시방편에서 근본 수술로: 1.8조 엔에서 7.5조 엔으로 가는 길 [김성민의 일본 위기 딥리뷰]

김성민 교수(전. 카이스트 금융전문대학원 교수)

smkim54@gmail.com

기사입력 : 2026-07-06 06:00

임시방편에서 근본 수술로: 1.8조 엔에서 7.5조 엔으로 가는 길 [김성민의 일본 위기 딥리뷰]
1998년 3월 공적자금을 동원해 단행한 1조 8,000억 엔 규모의 1차 은행 자본 투입은 금융 시스템의 붕괴를 잠시 늦추는 응급조치에 불과했다. 은행별 부실 규모를 따지지 않은 균등 배분식 자본 확충은 시장의 불신을 해소하지 못했고 은행들이 신규 대출을 억제하고 기존 여신을 회수하면서 오히려 극심한 신용경색과 경기 침체라는 심각한 부작용을 동반했다.

소규모 자본 확충이라는 임시방편으로는 금융 시스템 위기를 해결할 수 없다는 비싼 교훈을 얻은 셈이다. 결국 이 실패는 기존 미봉책의 한계를 명확히 드러냈고 이듬해인 1999년 정부가 7조 5,000억 엔 규모의 대대적인 2차 자본 확충과 강도 높은 구조조정이라는 근본 수술을 단행하는 결정적 전환점이 되었다.

미봉책의 한계와 정면돌파: 60조 엔 체제로의 결단

1998년 3월 30조 엔 규모의 공적자금 체계를 바탕으로 1조 8,000억 엔 규모의 첫 은행 자본 확충이 이루어졌지만 일본 금융시장은 안정을 되찾지 못했다.

대형 은행들의 건전성에 대한 의구심은 계속됐고 해외 투자자들은 일본 금융권의 구조적 취약성이 전혀 해결되지 않았다고 보았다.

무엇보다 총 30조 엔 규모의 막대한 공적자금을 투입할 수 있는 법적 기반을 마련해 놓고도 실제 자본 확충에는 1조 8,000억 엔만 생색내기식으로 집행한 정부의 안일한 대응이 국내외 시장의 불신을 키웠다.

만약 또 다른 대형 금융기관이 부실화될 경우 정부가 과연 위기를 해결할 의지와 실행력을 갖추고 있는지에 대한 의문이 커지면서 금융 불안 역시 좀처럼 해소되지 못했다.

정부 내부에서도 1조 8,000억 엔을 대형 은행들에 균등하게 나누어 주는 식의 타협적 대응은 당장의 패닉을 막는 응급처치일 뿐 금융 시스템에 대한 신뢰를 회복하기에는 턱없이 부족하다는 사실을 점차 깨닫기 시작했다.

더욱이 은행들이 자본 부족을 이유로 대출을 계속 축소하면서 기업의 자금 조달이 어려워졌고 신용경색은 경기 침체를 더욱 심화시켰다. 침체된 경기는 기업 부실을 심화시켰고 이는 은행의 부실채권을 늘려 자본을 추가로 훼손했다.

그 결과 은행들은 다시 대출을 축소했고 악순환은 더욱 심화되었다. 이와 함께 국제 금융시장에서 일본 은행들의 신용도가 하락하면서 해외 자금 조달 비용이 높아진 점 역시 정책 노선을 수정하는 데 중요한 변수로 작용했다.

이러한 현실 인식의 전환은 정책의 방향을 근본적으로 바꾸는 계기가 되었다. 정부는 금융위기를 더 이상 개별 은행의 부실이나 도산 문제가 아니라 국가 금융 시스템 전체의 생존을 위협하는 위기로 규정했고 기존의 부분적 지원에서 벗어나 부실 기관의 과감한 퇴출과 강도 높은 구조조정을 뼈대로 하는 근본적인 금융 회생 체제 정비에 착수했다.

그 결과 공적자금 규모는 기존 30조 엔에서 60조 엔으로 두 배 확대되었고 정책의 목표 역시 단순한 자본 확충에서 금융 시스템의 구조적 복원으로 전환되었다.

정치 환경의 변화도 이러한 결단을 뒷받침했다. 1998년 7월 참의원 선거에서 집권 여당인 자민당이 참패하면서 하시모토 류타로 내각이 퇴진하고 오부치 게이조 내각이 출범했다. 여소야대 정국 속에서 개최된 이른바 '금융국회'에서 야당은 강력한 압박을 가했다.

부실 은행을 무차별적으로 연명시키는 안일한 방식의 공적자금 조성안은 결코 승인할 수 없으며 일본장기신용은행이나 일본채권신용은행처럼 자생력이 없는 금융기관은 국유화하거나 퇴출하는 과감한 정리가 전제되어야 한다는 요구였다.

이러한 여야 간의 타협을 거쳐 1998년 10월에 탄생한 금융재생법은 정부가 더 이상 미봉책에 의존할 수 없도록 만들었고 부실 금융기관의 정리와 구조조정을 본격적으로 추진할 제도적 기반을 마련했다. 오부치 내각은 이를 발판으로 삼아 이듬해인 1999년 7조 5,000억 엔 규모의 전면적인 자본 투입과 고강도 금융 구조조정을 밀어붙일 동력을 얻게 되었다.

이러한 정책 전환은 1998년 10월 금융재생법과 금융기능조기건전화법의 제정 그리고 예금보험법 개정을 통해 법적·제도적 기반을 갖추게 되었다. 정부는 공적자금 운용 한도를 최대 60조 엔으로 대폭 확대해 금융 구조조정을 뒷받침할 재원을 확보했다. 이처럼 충분한 재원이 마련되면서 정부는 기존의 소극적인 위기 관리에서 벗어나 부실 금융기관의 일시 국유화와 가교은행(Bridge Bank)을 통한 정리 그리고 예금자 전액 보호를 포함한 전면적인 금융 재건 프로그램을 본격적으로 추진할 수 있게 되었다.

이처럼 법적·제도적 기반과 구조조정을 밀어붙일 정치적 동력이 확보되면서 1999년 3월 단행된 7조 5,000억 엔 규모의 2차 자본 확충은 1년 전의 임시 수혈과는 전혀 다른 성격을 띠게 되었다.

1998년의 자본 투입이 금융 불안을 진정시키기 위한 응급처치였다면 1999년의 자본 확충은 엄격한 자산 실사와 경영개선 계획, 그리고 감독기관의 사후 관리까지 결합된 '조건부 구조조정 프로그램'이었다.

정부는 과거와 달리 잠재 손실의 선제적 반영과 고강도 자구책 이행을 자금 지원의 전제 조건으로 명시함으로써 은행권의 도덕적 해이를 차단하고자 했다. 특히 새로 출범한 금융재생위원회는 의무적으로 제출된 경영정상화 계획이 이행되지 않을 경우 경영진 교체와 강제 구조조정까지 명령할 수 있는 강력한 법적 권한을 확보함으로써 금융 구조조정을 실질적으로 주도할 수 있게 되었다.

또한 정부는 "지원은 하되 모두를 구제하지는 않는다"는 원칙을 분명히 했다. 회생 가능한 은행에는 자본을 공급했지만 회생 가능성이 없는 금융기관은 국유화나 합병 또는 퇴출을 병행했다. 아울러 공적자금도 단순한 보조금이 아니라 우선주와 전환사채 등 정부가 필요할 경우 경영에 개입할 수 있는 형태로 투입함으로써 자금 회수 가능성과 시장 규율을 동시에 확보하려 했다.

이러한 점에서 1999년 3월의 7조 5,000억 엔 규모 자본 투입은 단순한 자본 확충이 아니었다. 그것은 부실을 은폐하며 시간을 벌던 대응에서 부실을 인정하고 정리하는 대응으로 일본 금융개혁의 기본 원칙이 전환되었음을 보여주는 결정적 전환점이었다.

미봉책의 한계와 정면돌파: 금융재생 입법과 2차 자본 투입의 조건

이러한 정책 전환은 1998년 10월 제정된 금융재생법, 금융기능조기건전화법, 그리고 예금보험법 개정을 통해 제도적으로 구체화되었다. 기존의 금융기능안정화법은 총 30조 엔 규모의 공적자금 체계를 마련했지만 실제 은행의 자본 확충에 활용할 수 있는 재원은 13조 엔에 그쳤고 자본 투입 요건도 지나치게 엄격해 금융 시스템 위기에 효과적으로 대응하기에는 한계가 분명했다.

이에 일본 정부는 공적자금 체계의 총 한도를 기존 30조 엔에서 60조 엔으로 대폭 확대했다. 구조조정이나 경영진 교체 없이 자본만 투입하던 기존의 지원 방식에서 벗어나 회생 불가능한 은행을 공적 관리하에 두는 일시 국유화, 파산 기관의 자산과 부채를 인계해 영업 중단을 막는 가교은행(Bridge Bank), 그리고 뱅크런을 차단하기 위한 예금자 전액 보호를 유기적으로 결합한 '전면적인 금융 재생 체계'를 본격적으로 가동한 것이다.

이와 함께 금융재생위원회가 출범하면서 정부는 금융기관에 대한 감독과 구조조정을 보다 엄격하고 객관적인 기준에 따라 추진할 수 있게 되었다. 새롭게 마련된 60조 엔의 공적자금은 자본 확충 25조 엔, 부실 금융기관 정리 18조 엔, 예금자 보호 17조 엔으로 용도를 명확히 구분해 운용되었다.

이는 단순한 유동성 공급에 머물지 않고 부실 자산 정리와 시장 안정을 동시에 달성하기 위한 목적으로 설계된 정교한 구조조정 프로그램이었다. 일본의 금융위기 대응이 사후적 임기응변에서 벗어나 본격적인 금융 시스템 재편 국면으로 전환되기 시작한 것은 바로 이 시점이었다.

이러한 패러다임의 전환은 ‘금융기능조기건전화법’에 의거해 1999년 3월 단행된 대대적인 자본 투입의 성격도 근본적으로 바꾸어 놓았다. 1998년 3월의 1차 자본 확충이 금융 패닉을 막기 위해 정부 지원을 받는 순간 부실 은행으로 인식되어 시장에서의 자금 조달이 어려워지는 '낙인 효과(Stigma Effect)'를 피하려는 은행권의 담합과 균등 배분을 용인한 임시 조치였다면 금융기능조기건전화법에 기반한 2차 자본 확충은 철저한 사전 심사와 구조조정을 전제로 한 조건부 자본 지원이었다.

우선 정부는 은행 자산을 다시 평가하는 과정에서 부실자산의 은폐나 과소평가를 원천 차단하고 부실자산 평가 결과 발생한 손실을 장부에 충실히 반영하도록 했다. 담보 가치와 대출 건전성을 보다 보수적으로 평가하고 충당금 적립 기준을 강화함으로써 공적자금이 부실을 덮어두는 데 사용되는 것이 아니라 손실을 충분히 반영한 뒤 자본을 확충하는 데 활용되도록 했다.

또한 공적자금 지원을 신청하는 은행에는 경영 정상화 계획 제출을 의무화했다. 자기자본비율 목표 설정, 부실채권 감축, 지점 통폐합 및 인력 감축, 비용 절감, 내부통제 강화 등을 골자로 한 경영 정상화 계획은 금융재생위원회의 심사를 거쳐 승인되었으며 목표를 이행하지 못할 경우 경영진 교체는 물론 고강도 구조조정을 강제할 수 있는 제도적 구속력을 갖추었다.

무엇보다 정부는 시장에 "지원은 하되 모두를 구제하지는 않는다"는 분명한 원칙을 제시했다. 회생 가능한 은행에는 자본을 공급한 반면 회생 가능성이 없는 금융기관은 일시 국유화를 거쳐 합병하거나 시장에서 퇴출했다.

이러한 정책적 결단이 실제 행동으로 옮겨진 첫 사례가 바로 1998년 10월 일본장기신용은행과 12월 일본채권신용은행의 국유화였다. 이는 '대마불사'의 신화를 깨고 자생력을 상실한 대형 은행이라도 공적 관리 아래 질서 있게 퇴출할 수 있다는 새로운 원칙을 시장에 각인시킨 사건이었다. 시장은 비로소 정부가 부실을 덮는 미봉책에서 벗어나 본격적인 구조조정에 착수했다는 신호를 무겁게 받아들였다.

공적자금의 투입 방식도 달라졌다. 기존처럼 자본만 확충하는 방식에서 벗어나 우선주와 전환사채 등을 활용해 정부가 필요할 경우 지분을 확대하거나 경영에 개입할 수 있는 장치가 마련되었다. 이는 국민 세금으로 투입한 자금의 회수 가능성을 높이는 동시에 은행 경영에 대한 감시와 책임성을 강화하기 위한 조치였다.

결국 1999년 3월에 투입된 7조 5,000억 엔은 단순히 이전보다 규모를 키운 자본 투입이 아니었다. 그것은 부실을 덮어두는 지원에서 부실을 인정하고 구조조정을 전제로 하는 지원으로 정책 기조가 전환되었음을 보여주는 상징적 조치였으며 그 본질적 차이는 투입 액수가 아니라 정책 철학과 제도의 변화에 있었다.

7.5조 엔의 집행: 엄격한 실사와 책임을 전제로 한 '근본 수술'

이처럼 제도적 기반을 갖춘 일본 정부는 1999년 3월 금융기능조기건전화법에 따라 은행권에 대한 2차 자본 투입을 본격적으로 시행했다. 이번 자본 확충은 1998년의 1차 투입과 달리 은행 자산을 철저히 재평가해 손실을 먼저 확정한 뒤 자본을 확충한다는 원칙 아래 진행되었다.

금융재생위원회는 은행이 제출한 자료를 액면 그대로 수용하지 않고 독자적인 실사를 통해 보유 유가증권의 평가손실, 충당금 부족, 잠재 부실채권 등을 보수적으로 재평가하여 각 은행에 필요한 자본 규모를 산정했다.

그 결과 15개 주요 은행의 자본 부족 규모는 약 11조 7,000억 엔으로 산정되었다. 대상 은행에는 사쿠라, 다이이치칸교, 스미토모, 산와, 도카이, 아사히, 다이와, 일본산업은행, 미쓰비시 트러스트, 스미토모 트러스트, 도요 트러스트, 주오 트러스트, 요코하마은행 등이 포함되었다.

그러나 정부는 이 자본금 부족분 전체를 공적자금으로 지원하지는 않았다. 은행들이 자체 영업이익으로 흡수할 수 있는 손실과 민간에서 조달 가능한 자본을 먼저 반영한 뒤에도 부족한 부분에 한해서만 공적자금을 투입했다. 그 결과 공적자금을 통한 자본 확충 규모는 약 7조 5,000억 엔으로 결정되었다. 이는 단순한 구제가 아니라 민간이 부담할 몫과 공공이 부담할 몫을 구분한 선별적 자본 확충이었다.

자본 투입 방식도 이전보다 훨씬 정교해졌다. 약 6조 2,000억 엔은 우선주로 그리고 나머지 1조 3,000억 엔은 후순위채 형태로 공급되었으며 이를 통해 대상 은행들의 평균 BIS 자기자본비율은 1998년 9월 9.66%에서 1999년 3월 말 11.56%로 상승했다. 이는 단순히 자본비율을 높인 데 그치지 않고 국내외 금융시장에 일본 은행들이 최소한의 자본 건전성을 회복했다는 신호로 작용했다.

정부가 취득한 우선주에는 필요시 보통주로 전환할 수 있는 권리도 부여되었다. 이는 필요할 경우 정부가 의결권을 확보해 경영권을 직접 통제할 수 있음을 의미했으며 은행 경영진에게는 경영 정상화 계획을 성실히 이행하도록 하는 강력한 압박 수단으로 작용했다. 공적자금은 더 이상 손실을 메워주는 보조금이 아니라 구조조정과 경영개선을 강제하는 '조건부 자본'으로 성격이 바뀐 것이다.

결국 1999년의 7조 5,000억 엔은 단순한 공적자금을 동원한 자본 투입에 그치지 않았다. 그것은 철저한 실사, 선별적 지원, 경영 책임, 그리고 정부의 감독 권한을 결합한 전면적인 금융 재건 프로그램이었다. 또한 일본 정부가 더 이상 시간을 벌기만 해서는 금융위기를 극복할 수 없음을 인정한 결정적 전환점이기도 했다.

수술 이후의 역설: '안정의 함정'과 유보된 근본 개혁

1999년의 2차 자본금 확충은 금융 시스템의 붕괴를 막고 시장의 신뢰를 회복하는 데 성공했다. 은행들의 자본금 부족은 상당 부분 해소되었고 금융시장은 최악의 위기 국면에서 벗어났다. 그러나 금융시장의 이러한 일시적 안정이 곧 실물 경제의 회복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었다. 위기를 진정시키는 데는 성공했지만 경제의 체질을 바꾸는 구조개혁은 여전히 해결해야 할 과제로 남아 있었다.

시장의 반응은 즉각적이었다. 국제 금융시장에서 일본 은행들에 부과되던 이른바 '재팬 프리미엄'은 빠르게 축소되었고 자기자본비율이 개선되면서 단기 유동성에 대한 불안도 크게 완화되었다. 금융기관의 자금 조달 여건이 개선되면서 금융 시스템 붕괴에 대한 공포는 상당 부분 진정되었고 당시 시장에서는 이번 조치를 "늦었지만 불가피했던 결정"으로 평가하는 시각이 우세했다.

그러나 바로 그 안정이 새로운 역설을 낳았다. 금융시장이 안정을 되찾자 가장 시급했던 과제였던 부실채권의 과감한 정리와 은행 구조조정의 추진 동력이 오히려 약화된 것이다. 정부는 일부 지방은행을 금융재생법에 따라 정리하고 부실채권을 정리회수기구로 이전하는 작업을 추진했지만 부실을 신속하게 제거하기에는 처리 속도가 더뎠고 적용 대상도 제한적이었다. 위기가 한창일 때는 정치적 부담 때문에 개혁을 미뤘고 위기가 진정된 뒤에는 긴급성이 낮아졌다는 이유로 개혁을 서두르지 않았다.

결국 시장의 안정은 개혁을 촉진하기보다 이를 뒤로 미루는 명분이 되었다. 금융 시스템은 안정을 되찾았지만 자금 배분의 왜곡은 해소되지 못했으며 이는 퇴출되어야 할 좀비기업에 대한 대출 연장과 신규 자금 공급이라는 형태로 고스란히 나타났다. 일본 경제는 금융위기는 넘겼지만 구조개혁은 지연되는 '안정의 함정'에 빠져들기 시작했다.

그러나 이러한 정책 지연의 한계는 2002년 무렵 다시 분명하게 드러났다. 부실채권 정리가 지연되는 사이 경기 침체가 지속되면서 새로운 부실이 계속 발생했고 은행들은 다시 자본 부족 문제에 직면했다.

2002년 3월 말 일본 은행권의 총자산은 약 756조 엔에 달했지만 기본자본(Core Capital)은 30조 엔 수준에 머물러 자산 대비 자본비율은 약 4%에 불과했다.

더욱 심각한 것은 기본자본의 약 3분의 1인 10조 6,000억 엔이 이연법인세자산(Deferred Tax Assets)으로 구성되어 있었다는 점이다. 이는 미래에 충분한 이익이 발생해야만 가치가 실현되는 자산으로 당시와같이 수익성이 취약한 상황에서는 실질적인 손실 흡수 능력을 가진 자본으로 보기 어려웠다.

결국 1999년의 대규모 자본 확충은 금융 시스템의 붕괴를 막는 데에는 성공했지만 은행권의 실질적인 건전성을 근본적으로 개선하지는 못했다. 부실채권이 충분히 정리되지 않은 상태에서 시간이 흐르자 공적자금으로 확충했던 자본은 누적되는 손실에 다시 잠식되었고 금융 시스템의 건전성을 회복하기 위한 추가적인 구조개혁이 불가피해졌다.

이 경험은 금융위기 대응의 본질이 무엇인지를 분명하게 보여준다. 공적자금은 금융 시스템을 지탱하는 진통제가 될 수는 있지만 그 자체가 치료제가 될 수는 없다. 진통제가 환자의 고통을 덜어줄 수는 있어도 병의 원인을 제거하지 못하는 것처럼 자본 확충 역시 부실채권 정리와 구조조정이 뒤따르지 않는다면 위기를 근본적으로 해결할 수 없다.

일본의 경험이 남긴 가장 큰 교훈은 여기에 있다. 공적자금 투입을 통한 금융기능 회복의 진정한 성패는 투입된 자금의 규모 자체가 아니라 그로 인해 얻은 시장의 안정을 개혁의 출발점으로 삼았는지 아니면 개혁을 미루는 시간 벌기의 수단으로 사용했는지에 달려 있다.

1999년 3월의 7조 5,000억 엔 규모 자본 투입은 일본 금융위기의 최악의 국면을 막아낸 결정적 조치였지만 그로 인해 확보한 시장 안정을 구조개혁으로 연결하지 못하고 부실을 완전히 정리하지 못하면서 개혁은 결국 미완으로 남을 수밖에 없었다.

결국 금융위기를 극복하는 힘은 단순히 쏟아부은 자본의 규모에 있는 것이 아니라 철저한 구조조정과 부실을 인정하고 정리하려는 정치적 결단에서 나온다는 사실을 일본은 값비싼 대가를 치르며 깨닫게 되었다.

김성민 교수(전. 카이스트 금융전문대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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