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콜시장 붕괴의 전염: 홋카이도 타쿠쇼쿠은행의 파산과 그 교훈 [김성민의 일본 위기 딥리뷰]](https://cfnimage.commutil.kr/phpwas/restmb_allidxmake.php?pp=002&idx=3&simg=2025031321473103554c1c16452b012411124362.jpg&nmt=18)
1997년 11월 산요증권의 콜시장 디폴트로 촉발된 은행 간 단기자금시장 경색은 타쿠긴 파산의 직접적 도화선이 되었지만 그 근저에는 이미 장기간 누적된 구조적 부실이 자리 잡고 있었다. 당시 타쿠긴의 대출 구조는 크게 세 가지 치명적인 결함을 안고 있었다.
첫째, 리스크 관리 체계의 부재이다. 타쿠긴은 자산 가격이 지속적으로 상승할 것이라는 낙관적 전망에 의존하여 차주의 실질적인 상환 능력이나 경기 변동 위험을 충분히 고려하지 않았다. 이로 인해 자산 가격이 하락하자 담보 가치가 급격히 훼손되었으며 이는 대출의 안전성 역시 한순간에 무너질 수밖에 없는 구조를 가지고 있었다.
둘째, 지역 편중과 무리한 외연 확장이라는 구조적 한계이다. 타쿠긴은 영업 기반이 홋카이도에 집중된 지역은행으로서 지역 경기 변동에 극도로 취약한 구조를 가지고 있었다. 특히 관광·리조트 개발 사업의 실패는 담보 가치의 급락으로 직결되면서 대출 채권의 부실이 심화되자 타쿠긴은 이를 타개하기 위해 본토의 대형 부동산 시장에 공격적으로 진출했다. 하지만 신규 투자 역시 특정 산업군에 편중된 탓에 실질적인 리스크 분산 효과는 거두지 못했다. 오히려 자산 간 상관관계가 높아지며 동일한 경기 변동에 취약해졌고 이는 결과적으로 포트폴리오 전체의 변동성을 더욱 키우는 결과를 초래했다.
셋째, 부실을 의도적으로 은폐한 편법적 회계 관행이다. 자산 건전성이 악화되었음에도 불구하고 타쿠긴은 손실을 즉각 반영하지 않고 인식을 의도적으로 지연시켰다. 상환 능력을 상실한 차주에게 신규 대출을 제공해 기존 채무를 상환하도록 하는 이른바 ‘돌려막기식’ 대출 연장(Evergreening)이 반복되었고 미지급 이자를 주식으로 전환하거나 실질적 현금 유입이 없는 장부상 이익을 계상함으로써 부실을 은폐했다. 이러한 회계 관행은 외부에서 은행의 실제 재무 건전성을 파악하는 것을 어렵게 만들었으며 결과적으로 공식 통계에 반영되지 않은 대규모 잠재 부실을 누적시키는 결과를 초래했다.
손실 인식의 지연은 단기적으로 재무 건전성이 유지되는 듯한 착시를 일으켰으나 이는 도리어 내재된 부실을 키워 자산 구조를 회생 불능의 상태로 몰아넣었다. 이후 은행에 대한 시장의 신뢰가 무너지자 수면 아래 은폐되었던 위험들이 일시에 분출되었고 이는 위기의 전개 속도와 파급력을 폭발적으로 키우는 결정적인 계기가 되었다.
이러한 구조적 결함 하에서 타쿠긴의 자산 건전성은 1994년부터 1996년 사이 급격히 와해되었으며 부실채권 비율이 리스크 관리 체계의 통제 범위를 상회하는 수준에 도달하였다. 이 시기 경영의 본질은 수익 창출에 기반한 정상적 은행 운영이 아닌 회계적 편법과 임시적 조치를 통한 손실 은폐에 국한되어 있었다. 즉 타쿠긴은 ‘지속 가능한 경영’의 궤도에서 이탈하여 자생적 회복 능력을 상실한 한계 금융기관의 양상을 보이고 있었다.
이로 인해 타쿠긴은 외부 충격을 방어할 재무적 완충력을 사실상 상실했다. 이미 고착화된 부실은 자구적 노력에 의한 수익성 개선을 가로막았고 이는 곧 유동성 고갈과 위기 대응력의 약화로 이어졌다. 실제로 1996년 말 부실채권 규모가 1조 엔을 돌파하면서 문제는 개별 자산의 차원을 넘어 구조적 악순환의 단계로 진입하였다. 이는 부실이 수익성을 저해하고 낮아진 수익성이 다시 자본 확충을 저해하여 부실을 더욱 심화시키는 악순환의 궤도에 진입했음을 의미한다. 결과적으로 이 시점의 타쿠긴은 독자적 존립 기반이 완전히 붕괴된 실질적 파산 상태에 처해 있었던 것으로 평가된다.
잠재돼 있던 취약성이 한꺼번에 표면화되기 직전의 상황에서 타쿠긴의 몰락을 촉발한 결정적 계기는 1997년 11월 발생한 산요증권의 파산이었다. 산요증권의 채무불이행은 단기 자금시장 전반의 신뢰를 붕괴시키며 금융시장의 유동성을 급격히 경색시켰고 이는 타쿠긴의 자금 조달 경로를 사실상 차단하는 결과로 이어졌다.
마지막 보루로 추진되던 자본 확충 계획마저 시장 불안 속에서 무산되자 타쿠긴은 자력으로 위기를 수습할 동력을 완전히 상실했다. 결국 1997년 11월 17일 자금 고갈로 정상 영업이 불가능해진 타쿠긴은 영업 양도를 결정하며 사실상 파산을 선언하기에 이르렀다. 이는 일본 대형 도시은행 가운데 최초의 파산 사례로 금융위기가 개별 기관의 부실을 넘어 금융시스템의 핵심부로 확산되었음을 보여주는 역사적 전환점이었다.
타쿠긴의 파산은 단순한 경영 실패를 넘어 분식으로 연명하던 회계 장부와 이미 와해된 자산 건전성 사이의 극심한 괴리를 적나라하게 드러낸 사건이었다. 이러한 모순을 가장 역설적으로 보여주는 지점은 도산 불과 8개월 전인 1997년 3월 결산에서 타쿠긴이 흑자를 기록하며 배당금까지 지급했다는 사실이다.
주오대학의 호리우치 아키요시에 따르면 당시 타쿠긴의 BIS 자기자본비율은 9.34%로 표면적으로는 도시은행 중에서도 양호한 수준이었다. 그러나 이 수치는 은행의 재무 구조의 건전성을 정확히 반영하지 못했고 오히려 시장에 왜곡된 신호를 제공함으로써 위험을 과소평가하게 만드는 결과를 낳았다.
이 같은 괴리는 당시 일본 금융권이 공시 제도를 방패 삼아 부실을 구조적으로 은폐해 왔음을 보여주는 결정적 증거이기도 하다. 실제로 도산 직전 공시된 자본금은 2,976억 엔에 달했지만 파산 이후 실시된 정밀 조사(1998년 3월 기준)에서는 자본이 오히려 마이너스 1조 1,725억 엔에 달하는 것으로 드러났다. 불과 1년 사이에 확인된 1조 5,000억 엔 규모의 자본 공백은 단순한 회계상의 착오로 설명될 수 없는 수준이었다. 이는 일본 금융시스템 전반에서 부실채권이 장기간 은폐·누적되어 왔으며 시장의 감시 기능과 회계 규율이 사실상 마비된 상태에 이르렀음을 보여주는 상징적 사례였다고 볼 수 있다.
타쿠긴의 파산은 전후 일본 금융사에서 대형 시중은행이 공식적으로 도산한 최초의 사례였다. 이는 그동안 수면 아래 잠복해 있던 시스템 리스크가 관리 범위를 이탈하여 표면화되었음을 보여주며 일본 금융시스템이 구조적 파국 시점에 도달했음을 입증하는 사건이었다.“대형 은행은 파산하지 않는다”는 이른바 ‘대마불사’의 신화는 타쿠긴의 몰락과 함께 붕괴되었다. 이는 단순히 개별 은행의 실패를 넘어 정부가 모든 금융 리스크를 통제하고 책임질 것이라는 ‘묵시적 전면 구제’에 대한 시장의 신뢰마저 근본적으로 뒤흔든 사건이었다.
사태가 긴박해지자 정부는 기존의 보호 기조를 철회하고 부실 금융기관의 시장 퇴출을 허용하는 방향으로 정책 노선을 선회하였다. 그러나 이러한 조치는 금융시스템의 시장 규율(Market Discipline)을 확립하기보다는 정부의 '최종 구제자' 역할에 대한 강한 의구심만을 증폭시켰다. 그 결과 금융기관 간의 상호 신뢰에 기반했던 자금 거래 구조가 와해되었으며 이는 통제가 불가능한 유동성 위기로 확산되었다. 국가가 보장하던 보호 장치가 사라진 시장에서 금융 불안은 개별 기관의 문제를 넘어 시스템 전체로 전이되었으며 이로써 일본 금융위기는 걷잡을 수 없는 전면적인 확산 국면으로 진입하게 되었다.
이러한 충격은 일본 국내에 머물지 않고 글로벌 금융시장으로 즉각 파급되었다. 특히 역외 시장에서 일본계 은행들의 외화 조달 비용을 의미하는 ‘재팬 프리미엄(Japan Premium)’이 1997년 가을 이후 급등했는데 이는 일본 금융권 전반에 대한 대외 신용도가 사실상 붕괴되었음을 알리는 신호탄이었다.
무엇보다 타쿠긴의 몰락은 동남아시아에서 시작된 아시아 금융위기로 가뜩이나 긴장이 고조되어 있던 국제 금융시장에 그야말로 기름을 부은 격이 되었다. 일본발 금융 불안이 세계 금융시스템의 새로운 뇌관이 될 수 있다는 공포가 확산되면서 국제 금융시장은 유례없는 경계 국면에 진입했다. 결국 타쿠긴의 파산은 개별 국가의 위기가 국경을 넘어 전 세계적 연쇄 폭락으로 이어지는 시스템 리스크의 위험성을 여실히 증명한 사건으로 기록되었다.
대내외적 불안이 동시에 고조되는 가운데 타쿠긴의 정리 문제는 금융 시스템 안정을 최우선 과제로 삼은 재무성과 일본은행의 주도로 급박하게 논의되기 시작했다. 당국의 핵심 과제는 파산의 충격이 시장 전반으로 전이되는 것을 막기 위해 예금자 보호를 전제로 한 ‘질서 있는 정리(Orderly Resolution)’를 추진하는 데에 있었다.
이에 따라 정부와 일본은행은 민간 금융기관을 통한 인수·합병 방안을 최우선적으로 모색했다. 타쿠긴의 우량 자산과 부채를 분리하여 대형 은행에 승계시킴으로써 시장의 충격을 완화하려 했던 것이다. 그러나 미쓰비시은행과 다이이치간교은행 등 주요 시중은행들은 정밀 실사 과정에서 드러난 타쿠긴의 부실 규모가 당초 예상을 압도한다는 사실을 확인하고 재무 건전성 악화를 우려해 잇따라 인수 의사를 철회했다.
결정적으로 1997년 11월 초 마지막 대안이었던 홋카이도은행과의 합병안마저 무산되자 시장의 신뢰는 회복 불가능한 수준으로 추락했다. 민간 차원의 자율적 구제가 사실상 불가능하다는 인식이 확산되면서 대규모 예금 인출 사태는 걷잡을 수 없이 가속화되었고 타쿠긴은 유동성을 유지할 수 있는 마지막 수단마저 상실하며 파국을 맞이하게 되었다.
사태의 심각성을 인식한 일본은행은 타쿠긴이 지역 경제에서 차지하는 비중을 고려해 자산과 부채가 제3의 기관으로 이전되기 전까지 금융 서비스가 중단되지 않도록 긴급 유동성 지원에 나섰다. 그러나 이 조치는 어디까지나 ‘제3자에 의한 인수가 성사될 것’을 전제로 마련된 임시방편에 불과했다.
인수자를 찾는 작업이 난항을 겪는 동안 타쿠긴의 자금 사정은 급속히 악화되었다. 결국 11월 14일(금요일) 은행 간 시장에서 차입을 위한 적격 담보가 고갈되고 법정 지급준비금마저 충족하지 못하는 상황에 이르면서 유동성 위기는 통제 불능 상태로 치달았다.
절체절명의 국면에서 일본은행은 그 주말 동안 타쿠긴 자산 규모의 5분의 1에 불과했던 호쿠요은행을 설득해 인수 의사를 이끌어냈다. 호쿠요은행이 업무 인수를 공식화하면서 최소한의 정리 틀이 마련되었다. 이에 따라 타쿠긴은 11월 17일 결국 파산을 선언하게 되었다. 일본은행은 즉시 구 일본은행법 제37조에 근거한 최종대부자 기능을 발동해 2.6조 엔에 달하는 무담보 자금을 긴급 투입함으로써 뱅크런이 금융 시스템 전반으로 확산되는 것을 차단하고자 했다.
파산 이후 타쿠긴의 영업 부문은 지역별로 분리·이관되었다. 홋카이도 지역의 영업망은 호쿠요은행이 역외 지점은 중앙신탁은행(현 미쓰이스미토모신탁은행)이 각각 인수함으로써 최소한의 금융 서비스 연속성은 유지되었다. 반면 타쿠긴 몰락의 직접적 원인이 되었던 막대한 부실채권은 정리회수은행(Resolution and Collection Corporation, RCC)으로 이전되어 별도로 처리되었다. 이는 부실 자산을 금융 시스템으로부터 격리함으로써 파산의 충격이 다른 금융기관으로 확산되는 것을 차단하려는 사후적 안정화 조치였다.
그러나 이러한 조치만으로는 이미 붕괴 조짐을 보이던 시장의 신뢰를 회복하기에는 역부족이었다. 특히 일본 정부가 공적자금 투입이라는 근본적 처방을 주저하면서 금융 불안은 오히려 장기화되었는데 그 배경에는 다음과 같은 구조적 제약이 존재했다.
첫째, 부실 금융기관에 대한 공적자금 투입에 극히 부정적인 사회적 여론이 형성되어 있었다. 1992년 미야자와 기이치 총리가 부실채권 정리를 위해 공적자금 투입을 제안했으나 방만한 경영을 일삼은 금융기관을 세금으로 구제할 수 없다는 여론의 거센 반발에 부딪혀 무산된 전례가 있었다. 이러한 반감은 1995년 부실 주센 처리 과정에서 정점에 달했다. 당시 정부가 6,850억 엔의 공적자금을 투입하며 최대 채권자였던 농협 계열 금융기관들의 손실 분담을 대폭 경감해주자 특혜 논란과 함께 금융당국에 대한 불신이 폭발했다. 이 경험은 공적자금 투입을 사실상 금기시하는 사회적 통념을 고착화시켰으며 정책 당국에게는 이를 단행하는 것이 사실상 '정치적 자살 행위'를 의미한다는 강력한 경고로 작용했다.
둘째, 위기 상황에서 대규모 공적자금을 신속하게 집행할 법적·제도적 장치가 전무했다. 자금 투입의 요건과 절차 그리고 손실 분담 원칙이 명확히 정립되지 않은 탓에 정책 결정은 매번 소모적인 정치적 논쟁으로 번졌다. 제도적 뒷받침이 없는 상태에서 공적자금 투입은 지연될 수밖에 없었으며 이는 금융위기 확산을 막을 ‘골든타임’을 놓치는 결정적 요인이 되었다.
셋째, 정책 당국의 안이한 정세 판단이 화를 키웠다. 당국은 당시 상황을 금융 시스템 전반의 구조적 결함이 아닌 일부 기관의 일시적인 유동성 문제로 오판했다. 그 결과 근본적인 구조조정 대신 단기 유동성 지원에 의존하는 임시방편적 대응에 머물렀으며 이는 오히려 부실을 누적시키고 시장의 불신을 증폭시키는 결과를 초래했다.
이러한 정책적 공백 속에서 발생한 산요증권의 콜시장 채무불이행과 뒤이은 타쿠긴의 파산은 잠복해 있던 위기를 단숨에 폭발시킨 기폭제가 되었다. 특히 금융기관 간 단기 거래의 핵심인 콜시장에서조차 상대방의 상환 능력을 신뢰할 수 없게 되자 시장을 지탱하던 ‘무위험·고신뢰 거래’라는 암묵적 규범은 순식간에 와해되었다.
국가 차원의 명확한 지급 보장이나 신뢰할 만한 안전망이 부재한 상황에서 시장 참여자들은 극도로 위험 회피적인 태도로 급변했다. 금융기관들은 신규 대출과 자금 중개를 전면 중단하고 기존 자금의 회수에만 몰두했으며 그 결과 신용도에 따라 자금 흐름이 급격히 차단되는 전형적인 신용 경색(Credit Crunch) 현상이 심화되기 시작했다.
이는 단순한 유동성 부족의 문제를 넘어 금융시장의 본질적 기능인 자금 배분 메커니즘 자체가 마비되는 결과로 이어졌다. 결국 위기는 개별 기관의 부실 차원을 넘어 금융 시스템 전체의 기능적 와해로 확산되기에 이르렀다.
김성민 교수(전. 카이스트 금융전문대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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