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연수기사 모아보기 한컴 대표가 ‘한글과컴퓨터’라는 오랜 간판을 내리고 ‘한컴’으로 새출발을 선언했다. 이번 사명 변경과 비전 선포는 단순한 브랜드 리뉴얼을 넘어, 창립자 체제 그림자를 지우고 ‘김연수 독자 경영 체제’ 확립을 공식화하는 구조적 독립 선언이라는 분석이 지배적이다.‘김상철 리스크’ 선 긋기
22일 한컴에 따르면 회사는 글로벌 ‘소버린 에이전틱 운영체제(OS)’ 기업으로의 전환을 앞두고 사명을 한글과컴퓨터에서 한컴으로 변경했다. 1989년 창립 이후 36년 만이다.
36년간 회사를 지탱해 온 안방 시장 중심의 성공 문법을 과감히 파기하고, 글로벌 AI 시장이라는 대양으로 나아가겠다는 김연수 대표의 대담한 승부수가 본격 가동됐다.
그러나 사명 변경이라는 화려한 무대 뒤편에는 한컴그룹이 오랫동안 마주해 온 무거운 그림자가 자리 잡고 있다. 바로 창립자인 김상철 회장을 둘러싼 ‘오너 리스크’다.
지난 21일 수원지법 형사항소8-1부(김유진·백주연·이경민 부장판사)는 자본시장법 위반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김상철 회장의 항소심에서 김상철 회장과 검찰의 항소를 모두 기각하고 벌금 2000만 원을 선고한 1심 판결을 유지했다.
김상철 회장은 지난 2019~2020년 사이 지인을 통해 계열사인 한컴위드 주식 3억 원 상당을 15회에 걸쳐 차명 거래하는 과정에서 보유 지분이 1% 이상 변동했음에도 이를 금융위원회에 신고하지 않은 혐의로 2024년 11월 재판에 넘겨진 바 있다. 사건 당시 김상철 회장은 “주가가 너무 떨어졌는데 직접 살 수 없으니 주가 유지를 위해 사놓으라”며 지인에게 매수 비용을 보낸 것으로 조사됐다.
이 같은 창립자의 사법 리스크 잔혹사는 그간 한컴 주가 상단을 막아온 고질적인 디스카운트 요인이었다. 이에 김연수 대표는 간판을 바꾸는 초강수로 과거 체제와의 거버넌스 분리를 선언하며 대주주 흔적 지우기에 속도를 내고 있다.
3개월째 갇힌 주가, ‘내수 탈피·과금 혁신’으로 저평가 끊는다
그룹 오너십을 둘러싼 법적 잡음이 계속되는 와중에, 정체된 주가 역시 김연수 대표가 해결해야 할 당면 과제다. 최근 3개월간 한컴 주가는 2만 원 안팎의 박스권에 갇혀 있다. 지난 2월 23일 장중 최고가인 2만4150원을 기록한 이후, 시장 피로감과 지배구조 우려가 맞물리며 현재는 1만9000원 선에서 긴 횡보를 이어가는 상태다.
증권가에서는 대주주 사법 리스크 외에도, 관공서와 교육 시장에 의존하는 ‘내수용 문서 소프트웨어 기업’이라는 편견이 주가 재평가를 가로막아 왔다고 분석한다. 김연수 대표가 오피스 헤리티지와의 단절을 선언한 것도 내수 한계 극복 기조와 맞닿아 있다.
김연수 대표는 이번 사명 변경과 함께 소버린 에이전틱 OS라는 카드로 양대 파고를 정면 돌파하겠다는 의지를 분명히 했다. 조직 내부 데이터와 외부 AI 모델을 안전하게 통제하는 시스템을 앞세워 보안을 중시하는 글로벌 틈새시장을 공략하겠다는 전략이다.
구체적인 주가 부양 카드로 김연수 대표는 먼저 ‘한컴오피스 연식제(패키지 발매) 폐지’라는 배수진을 쳤다. 박스 형태로 소프트웨어를 한 번 팔고 끝내던 기존 구조를 상시 업데이트 방식의 ‘클라우드 AI 플랫폼 구독제’로 전면 전환한 것이다. 구독제 모델은 고객 사용량이 늘어날수록 마진율이 기하급수적으로 높아지는 구조인 만큼, 과금 모델 혁신을 통해 체질을 완전히 바꾸겠다는 구상이다.
동시에 국내를 넘어 약 10~14조 원 규모로 추산되는 소버린 에이전틱 OS 글로벌 유효시장(SAM) 진출을 구체화하고 있다. 첫 공략지는 전 세계 소버린 AI 인프라 수요의 34.2%를 차지하는 최대 시장 ‘유럽’이다. 유럽은 강력한 개인정보보호법(GDPR)과 유럽연합 AI법(EU AI Act)이 도입되면서 데이터 주권 확보가 생존 과제로 떠오른 지역이다.
한컴은 현재 폴란드 등 현지 유력 AI 및 시스템통합(SI) 파트너사 3곳과 전략적 협력(MOU) 체결을 완료했거나 앞두고 있다. 시장이 요구하던 ‘내수 탈피’의 증거를 가장 까다로운 유럽 시장에서의 파트너십으로 입증해 보이고 있는 셈이다.
실적으로 증명한 성장세, 자사주는 ‘인재 락인’ 위한 보상 칩
김연수 대표가 추진하는 과금 혁신과 글로벌 영토 확장 행보에 시장이 신뢰를 보내는 이유는 숫자로 기록된 재무 성과에 기인한다.
한컴 지난해 별도 기준 매출은 전년(1591억 원) 대비 10.2% 증가한 1753억 원을 기록했다. 주목할 점은 전체 매출 증가분 162억 원 중 AI 솔루션이 기여한 금액이 54.6%에 달한다는 사실이다. 이 중 순수 AI 패키지 매출만 약 89억 원으로 전체 매출의 5% 비중을 차지하기 시작했다.
성장세의 밀도는 분기별 흐름에서 더욱 도드라진다. 한컴 AI 부문 매출은 지난해 3월 기준 누적 1900만 원 수준에 불과했으나, 같은 해 12월에는 89억1300만 원으로 수직 상승을 이뤄냈다. 이어 기세를 몰아 올해 1분기 누적 실적만 이미 52억1200만 원을 달성하며 지난해 전체 AI 매출의 절반 이상을 3개월 만에 채웠다. 올해 들어 한컴의 AI 매출 규모는 당초 수립한 사업계획 대비 월평균 200%를 웃도는 초과 달성 행진을 이어가고 있다.
AI 성과를 지속 가능한 도약으로 이끌기 위해 김연수 대표가 마주한 다음 과제는 ‘글로벌 탑티어 인재 확보’다. 소버린 AI와 에이전틱 OS 시장에서 미국 빅테크와 경쟁하기 위해서는 최고 수준의 개발 인력을 확보하는 것이 필수적이기 때문이다.
김연수 대표가 인재 유치를 위해 꺼내 든 핵심 카드는 바로 ‘자사주 활용법’이다. 한컴은 과거 2022년 매입, 2023년 200억 원 규모의 자사주 전격 소각으로 강력한 주주환원 궤적을 그려왔으며, 지난해 11월에도 100억 원 규모의 자사주 취득 신탁계약을 체결한 바 있다.
적극적인 소각과 처분을 거쳐 현재 한컴이 보유한 자사주 비율은 올해 3월 기준 1.79% 수준이다. 사법 리스크를 겪는 대다수 대기업이 자사주를 대주주 지분율 방어 등 경영권 수단으로 쌓아두는 것과 달리, 한컴은 이를 철저히 ‘임직원 보상과 기업 성장을 연동하는 인센티브 메커니즘’으로 활용하며 차별화를 꾀하고 있다.
특히 한컴은 이번에 확보한 자사주를 임직원의 주식매수선택권(스톡옵션) 행사 대응 및 AI 사업 성장을 이끌 핵심 인재 확보를 위한 보상 재원으로 활용하겠다고 명시했다. 글로벌 시장 공략에 박차를 가하는 상황에서 자사주를 인재 결속을 위한 실리적 카드로 던진 것이다. 가파르게 성장하는 실적을 바탕으로 자사주를 인재에 투입해 기술력을 고도화하고, 이를 통한 기업가치 제고로 주주에게 환원하겠다는 정공법으로 풀이된다.
김연수 대표는 “데이터 주권과 AI 실행 환경을 완벽하게 통합 제공하는 소버린 에이전틱 OS 기업으로서 한컴의 새로운 36년을 힘차게 열어가겠다”고 밝혔다. 그의 대담한 독자 노선이 박스권에 갇힌 한컴의 차트를 우상향으로 돌려세울 수 있을지 시장 이목이 집중되고 있다.
정채윤 한국금융신문 기자 chaeyun@fntime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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