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빛 바랜 골목, 그리고 어둠의 숲...이방인의 눈으로 길어 올린 풍경

장종회 기자

jhchang@fntimes.com

기사입력 : 2026-05-08 14:34 최종수정 : 2026-05-08 21:07

김정아 개인전 〈푸른 골목의 안쪽〉
5.20~6.7 서울 인사동 토포하우스

[한국금융신문 장종회 기자] 오는 20일부터 6월 7일까지 서울 인사동 토포하우스 제3전시실에서 김정아 작가의 18번째 개인전 〈푸른 골목의 안쪽〉전이 열린다. 회화 20여 점으로 구성된 이번 전시는 서울 변두리의 낡은 골목과 거제도에서 보낸 25년의 시간이 빚어낸 '장소'에 대한 탐구를 한 자리에 모은 것이다.
김정아 작 '기다림-바람2' 65x80cm 캔버스에 아크릴릭 2014

김정아 작 '기다림-바람2' 65x80cm 캔버스에 아크릴릭 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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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북 전주 출신인 김정아 작가는 서울대 서양화과를 거쳐 같은 대학원에서 판화를 전공했다. 그가 처음 눈길을 고정한 곳은 대학시절을 보낸 관악구 봉천동과 신림동, 개발연대에 급조된 건물들이 빼곡히 들어선 서울의 변두리였다. 마감재 없이 그대로 드러난 콘크리트, 투박하게 덧댄 모서리, 빛 바랜 벽체. 지방 출신 이방인의 눈으로 도시 주변부를 응시하며 그는 그 쓸쓸함을 화폭에 받아 적었다. 그가 장소성(placeness)을 탐구한 시발점이었다.

'익숙한 소외' 낯설게 하기

2000년대 초 조선 전문가인 남편을 따라 거제도에 정착하면서 그 감각은 더 깊어졌다. 서울과의 교류가 끊기고, 낯선 사람들 사이에서 다시 어린 시절의 고립감이 살아났다. 그는 작가노트에서 이렇게 고백한다. "나는 그 '익숙한 소외'를 '다시 보기'로 낯설게 하고 싶었다. 이러한 시선은 거제에서의 25년이라는 시간 속에서 더욱 깊어 졌다." 이방인의 눈은 섬의 쇠락한 건물과 구석진 장소를 들여다보기 시작했고, 그것은 곧 삶의 터전이 되었다.
김정아 작 '오후' 80x234 cm 캔버스에 아크릴릭 2018.2023.

김정아 작 '오후' 80x234 cm 캔버스에 아크릴릭 2018.2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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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제도는 김 작가에게 회화만이 아닌 또 다른 작업의 무대이기도 했다. 그는 해변에서 직접 수거한 플라스틱 해양 쓰레기를 오브제로 삼아 지구 생태의 위기를 화면에 펼쳐 온 작업으로 널리 알려져 있다. 지난해 메디치상 수상 역시 예술과 환경 문제를 잇는 이 행보에 힘입은 바 컸다. 캔버스 안팎을 넘나드는 색 바랜 플라스틱 덩어리들, 생태 시계를 형상화한 혼합매체 작업은 그의 이름 앞에 늘 따라붙는 또 하나의 얼굴이었다.

그러나 이번 토포하우스 전시에서는 그 얼굴을 뒤로 물렸다. 해양 쓰레기와 관련한 작품은 전시에 포함되지 않는다. 대신 장소와 공간을 탐미해 온 회화 작업만을 온전히 내세운다. '환경 작가'라는 수식 너머, 오랜 시간 화폭 안에서 묵묵히 쌓아 온 그의 또 다른 결인 장소의 기억, 풍경의 감각이 집중적으로 걸린다.

영원한 시간이 깃든 장소 '밤의 숲'

이번 전시에서 가장 눈에 띄는 것은 코로나 팬데믹 시기에 집중적으로 그려진 '밤의 숲' 연작이다. 어둠 속 수직으로 솟은 나무들, 희미하게 새어 드는 빛, 그리고 화면 어딘가에 조그맣게 난 계단. 작가는 숲을 고대 그리스 신전처럼 영원한 시간이 깃든 장소로 다뤘다. "깊이를 알 수 없는 어둠 속의 숲은 묵묵히 옆을 지켜주는 친구처럼 존재할 뿐이었다. 그 무한한 깊이를 표현하기 위해 그리고 덮고, 다시 그리기를 반복했다." 그가 수십 번 계속한 붓질이 쌓인 화면에는 이미 거쳐 간 존재들의 유령이 어른거린다.
김정아 작 '밤의 숲’ 72x194(cm) 캔버스에 아크릴릭 2020.

김정아 작 '밤의 숲’ 72x194(cm) 캔버스에 아크릴릭 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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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 작가의 회화에서 환영(illusion+phantom·幻影)은 공간을 성립시키는 조건으로 작동하고, 환상(fantasy·幻想)은 그 공간이 하나의 세계로 수렴되는 것을 막는다. 시선은 화면 안으로 이끌리지만 끝내 안착하지 못하고 떠돈다. 화면은 도달할 수 없는 장소-아포리아-에 대한 감각으로 남는다. 이 긴장감이 김정아 회화를 단순한 풍경화와 갈라 놓는 지점이다.

김 작가의 화폭은 언제나 버려지고 낡고 비어 있는 것들을 향해 나간다. 화려함을 걷어낸 자리, 사람들의 시선이 비껴간 모퉁이, 그곳에서 그는 누군가의 시간이 응축된 흔적을 건져 올린다. 이번 전시에서 관람자들은 지나간 25년을 거제도의 바다와 숲 사이 경계 지점에서 살면서 갈고 닦은 김 작가만의 독특한 감각을 느껴볼 수 있을 것이다.
김정아 작가 개인전 포스터

김정아 작가 개인전 포스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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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종회 한국금융신문 기자 jhchang@fntime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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