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법 개정 이후 대기업들이 잇따라 자사주를 태우면서 국내 증시의 대표적 저평가 요인으로 꼽혀온 ‘지주사 할인’이 흔들리고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12일 금융투자업계에 따르면 올해 1분기 상장사들이 발표했거나 예정된 자사주 소각 규모만 약 20조원 수준에 달한다. 지난달 상법 개정안 통과 이후 약 2주 동안만 해도 40여개 상장사가 약 7조원 규모의 자사주 소각 계획을 발표했다.
증권가에선 이같은 흐름이 단순한 주주환원을 넘어 국내 지주사 가치 재평가의 신호로 해석하고 있다.
‘지주사 할인’ 구조 흔들리나
국내 증시에서 지주사는 대표적 저평가 업종이다. 지주사 주가는 보유 자회사 지분 가치의 합계인 순자산가치(NAV) 대비 큰 폭으로 할인된 가격에서 거래되는 경우가 많다. 시장에선 이를 ‘지주사 할인’이라고 부른다.증권업계에 따르면 국내 주요 지주사의 순자산가치(NAV) 할인율은 30~60% 수준에 달한다. 반면 일본 등 주요 선진국 지주사의 할인율은 10~20% 수준에 그친다.
국내에선 지주사 할인이 크게 나타난 이유로 자회사 중복 상장, 복잡한 지배구조, 낮은 배당 및 주주환원 정책, 자사주 활용을 통한 지배력 강화 구조 등이 꼽힌다. 특히 자사주 장기 보유 관행은 지주사 할인 요인으로 꾸준히 지적돼 왔다. 기업이 자사주를 장기간 보유시 사실상 대주주의 지배력 확대 수단으로 활용된 탓이다.
상법 개정이 촉발한 ‘자사주 소각 경쟁’
이 같은 구조에 변화의 계기가 된 것이 자사주 소각 의무화를 포함시킨 상법 개정이다. 개정안에 따르면 상장사가 신규 취득한 자사주는 원칙적으로 1년 이내 소각해야 한다. 기존 보유 자사주 역시 일정 기간 내 소각하거나 별도의 보유 계획을 주주총회에서 승인받아야 한다. 사실상 자사주를 장기간 보유하는 ‘금고주’ 관행에 제동이 걸린 것이다.법 시행을 앞두고 기업들이 선제적으로 자사주 소각에 나서는 분위기다. SK의 경우 최근 보유 자사주 약 1469만주를 소각하기로 결정했다. 발행주식의 약 20%에 해당하는 규모다. 평가액은 약 5조원 수준이다.
한화도 최근 자사주 445만주 소각 계획을 발표하면서 지주사 중심의 자사주 소각 흐름에 합류했다. 삼성전자 역시 상반기 중 약 16조원 규모의 자사주 소각을 진행할 예정으로, 상장사 전반으로 자사주 소각 기조가 확산되는 분위기다.
지주사 주가 ‘즉각 반응’
시장도 즉각 반응하고 있다. 자사주 소각 발표 이후 주요 지주사 주가는 상승 흐름을 보이고 있다. 투자심리도 빠르게 개선되는 분위기다. 최근 SK와 한화 등 주요 지주사의 주가가 강세를 보인 것도 이같은 기대감이 반영된 결과다.증권가에선 자사주 소각이 지주사 가치에 직접적 영향을 준다고 보고 있다. 자사주 소각은 발행주식 수를 줄여 주당순이익(EPS)과 주당순자산가치(BPS)를 높이는 효과가 있다. 지주사의 경우 자회사 지분 가치가 핵심 자산이다. 따라서 자사주 소각은 순자산가치(NAV)의 할인 축소로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
최관순 SK증권 연구원은 “지주사의 경우 자사주 활용 구조가 할인 요인 중 하나였던 만큼 이번 제도 변화는 재평가 계기도 된다”며 “증시 변동성이 이어지는 상황에서 지주사의 상대적 투자 매력도는 높아질 수 있다”고 분석했다.
최근 행동주의 펀드와 글로벌 투자자들이 지주사의 낮은 기업가치와 주주환원 정책을 문제 삼으면서 ‘코리아 디스카운트’ 해소 요구가 커진 것도 자사주 소각 확대의 배경으로 꼽힌다.
3월 주총이 분수령 되나
증권가에선 3월 정기 주주총회가 지주사 재평가의 중요한 분기점이 될 것으로 본다. 상법 개정 후 기업들이 어떤 수준의 자사주 소각 및 주주환원 정책을 내놓느냐에 따라 지주사 할인 해소 속도가 달라질 수 있기 때문이다.정해창 대신증권 연구원은 “시장 관심은 이제 법적 의무 여부보다 기업들이 얼마나 실질적 주주환원 정책을 내놓느냐로 이동한다”며 “주총 시즌과 이후 분기 실적 발표 과정에서 기업별 자사주 소각 계획과 주주환원 정책을 확인해야 한다”고 말했다.
증권가에선 자사주 소각이 확산될 경우 국내 지주사들의 순자산가치(NAV) 할인율이 중장기적으로 10~20%포인트 축소될 가능성도 제기된다. 이번 상법 개정이 오랫동안 지속돼 온 ‘지주사 할인 구조’를 실제로 흔드는 계기가 될지 자본시장의 시선이 집중되고 있다.
김희일 한국금융신문 기자 heuyil@fntime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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